[조희문의 영화세상] 논란의 부산영화제 허세부터 줄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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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7-13 06:31:10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의 논란에 관련된 핵심 인물들이 모두 퇴진하면서 사태가 일단락되는 모습이다. 조종국 운영위원장은 해촉됐고, 이용관 이사장·오석근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 위원장은 각각 사의를 밝혔다. 당장 10월에 열릴 올해 행사를 무사히 치르는 게 시급한 과제가 됐다.

당분간 대행 체제로 치러야 하는 영화제가 끝나면 누가 운영위원회를 이끌게 될지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지겠지만 우선은 올해 영화제 개최가 당장 발등의 불처럼 다가온 것이다. 무사히 열릴 수 있을지를 염려하는 시선이 많고 주최 측에서도 나름 준비를 하겠지만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하기에는 후유증이 너무 커 보인다. 지켜보는 입장에서 바라는 점은 영화제의 규모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전보다 더 커야 한다거나 최소한 예전과 비슷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부산영화제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예고에는 당초 16개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이라고 홍보했지만 논란을 거치고 난 후에는 12개로 축소되었다가 현재는 그마저도 내리고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 올라와 있다. 제대로 열릴 수 있을지를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몇 개 프로그램을 운영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 칸영화제는 1968년 학생운동의 여파로 열리지 못했고,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도 1973년과 1978년에 열리지 못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도 1933년 대공황의 여파로 열리지 못한 적이 있고 흑인 인권운동가 킹 목사 암살사건이나 레이건 대통령 암살미수 사건 때는 행사가 연기되기도 했다.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릴 때는 세계 각국의 영화제가 열리지 못하거나 대폭 축소되기도 했다. 부산영화제도 온라인으로 대체해 열렸다.

지난해 제27회 행사는 대면 영화제로 열렸지만 거리두기가 적용돼 개막식을 비롯해 사람이 모이는 행사에는 일정한 사이를 띄워야 했다. 영화관 관람도 마찬가지여서 반쪽 행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계획대로 진행되면 천만다행이지만 이런저런 사정이 생기면 연기되거나 취소될 수도 있고 규모가 줄어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부산영화제는 겉으로 보면 성공한 영화제로 꼽히지만 이념화된 반정부·반국가적인 영화의 유통을 조장하고 이념화된 인력의 양성·배출을 위한 훈련 과정 역할을 하는 등 좌파 영화계의 진지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공로보다는 적폐가 더 컸다.

영화제의 성공을 과시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규모를 보여 주는 것이다. 해마다 영화제가 열릴 때마다 몇 개국에서 몇 편의 영화를 선보인다든지, 유명한 영화인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를 자랑하고 예매를 시작한지 몇 분 만에 매진되었다는 보도자료를 돌린다. 월드 프리미어 영화가 몇 편인지, 인터내셔널 프리미어가 몇 편인지 등 영화를 만드는 사람조차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말들을 쏟아낸다.

국제적으로 이름난 영화제는 기본적으로 월드 프리미어를 요구한다. 해당 영화제 외에는 세계 어디에서도 개봉한 적이 없는 영화라는 뜻이다. 칸·베니스·베를린 영화제 같은 경쟁영화제에서 수상하려면 영화제에서 선보이기 전에는 자국 내에서조차 공개 상영을 할 수 없다.

2018년 칸 영화제에 출품한 한국영화 ‘버닝’이 언론시사회를 하고도 보도는 영화제가 끝날 때까지 엠바고를 지켜 달라고 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언뜻 부산영화제의 월드 프리미어가 많다는 것이 영화제의 권위를 증명하는 표식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유수의 영화제에는 참가를 포기했거나 참가할 수 없는 영화를 불러들인 것이다.

세계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10여 개국 남짓하고, 그나마 영화제가 원하는 수준에 이르는 영화는 그중에서도 몇 편에 지나지 않는다. 손으로 꼽을 정도의 영화를 두고 영화제 간에도 유치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유명 영화제들의 월드 프리미어 영화 유치경쟁이 끝나면 나머지는 어디에서 상영해도 그만인 영화들만 남는다. 그 영화들을 부산영화제가 불러들이는 것이다.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는 영화인이나 초청 작품의 수를 늘려야 하지만 항공료·숙박비·수송비 같은 초청 비용도 비례해서 늘어난다. 관객의 눈길을 잡기 위해서는 신작 뿐 아니라 회고전이란 이름으로 지난 영화까지 끼워 넣어 구색을 맞추다 보면 영화제가 이것저것 갖춰 놓은 뷔페식당처럼 되어 특징이 무엇인지 모호해진다. 영화제 내용과는 상관없는 개막식이 영화제의 전부인 것처럼 화려하게 꾸미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소박한 규모로 열린 지난해 영화제가 오히려 더 차분하고 영화제 색깔도 드러났다는 평가는 아이러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서 관객을 위한 영화제를 만들겠다는 다짐이 필요한 대목이다. 규모가 크다고 성공한 영화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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