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문의 영화세상] ‘애국심’이 폭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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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7-20 06:31:00

애국심인가, 집단 괴롭힘인가? 20년이 넘는 유승준에 대한 국민적 분노의 정체가 긍금하다. 이탈리아 영화 ‘말레나’(2001)에는 동네 여자들에게서 미움을 받는 여자 말레나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는 장면이 나온다. 머리를 쥐어뜯고 옷을 갈갈이 찢는다. 독일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독일군과 가까이 지내며 호의호식했다는 것이다. 동네 여자들에게 나쁜 짓을 하거나 잘난 척하지도 않았다. 혼자 사는 여자 말레나는 그저 살기 위해 독일군에게 웃음을 팔았을 뿐이다. 동네 여자들은 그게 마땅치 않았다. 주는 것 없이 괜히 미운 것이다.

옛날 영화를 떠올리는 것은 유승준(미국명 스티브 승준 유) 때문이다. 미국 영주권자였던 그는 2002년에 미국 시민권을 얻었는데 그것이 병역을 기피하기 위한 국적 세탁이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과 함께 그는 인기있는 아이돌에서 순식간에 나라를 배신한 역적으로 몰렸다.

다시 한국에 돌아오려던 그는 대한민국 입국이 거부되자 2015년 재외동포 비자(F-4) 발급을 놓고 LA총영사관과 소송전을 시작했다. 최근 서울고법 행정9-3부는 유씨가 주 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를 상대로 낸 여권·사증(비자) 발급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수년을 끌던 기나긴 재판의 반전이다. 이 재판은 유씨가 비자 발급을 거부당하자 주 LA 한국 총영사를 상대로 낸 두 번째 불복 소송의 항소심이다. 법원이 유씨의 입국을 허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은 일반인의 정서적 판단과 법률적 판단이 같을 수 없다는 방증이다.

입대할 시기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선택한 그의 행동은 국민감정을 건드리는 배신행위로 비쳤지만 그로서는 고심 끝에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실망스러울 수는 있지만 범죄는 아니다. 그럼에도 팬들이 받은 충격은 컸다. ‘우리편인 줄 알았더니 결정적인 순간에 팬들을 버리고 도망을 치다니 이럴 수가 있는가’라는 배신감이었다. 그는 이 선택으로 혹독한 댓가를 치렀다. 가수 활동도 할 수 없었고 여기저기서 나오던 광고도 모두 취소되았다. 입국비자 발급이 거부되어 한국에도 돌아올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선풍적 인기를 끌던 스타는 순식간에 국민적 배신자로 낙인찍혀 모든 걸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의 입국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그가 이미 대한민국을 버렸는데 다시 돌아오면 가수 활동을 하지 않겠느냐며 열을 낸다. 유씨가 왜 한국에 다시 오겠다며 기나긴 법정 다툼을 계속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 오고 싶다는 것인지 가수 활동을 재개하겠다는 것인지 본인이 아닌 다음에야 정확한 속내를 알 수 없다. 가수 활동을 재개한다 하더라도 팬이 외면하면 아무 성과가 없다.

입국비자 발급에 대해서는 그가 미국 국적을 가진 외국인의 신분이 된 이상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협할 인물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외국인 입국 기준에 맞는 적법한 규정을 적용하면 그만이다. 유명인이라 해서 특혜를 주는 것도 정당하지 않지만 ‘국민감정’이란 것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것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국민감정’을 건드린 사례는 국가 지도자들에게서 더 많이 나왔고 여파도 더 컸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그놈의 헌법’ ‘대통령 못 해 먹겠다’ 따위의 막말로 국민적 공분을 샀다. 국가를 이끄는 수반으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군의 통수권자이면서도 ‘젊은이를 청춘의 황금기에 군대에서 3년씩 썩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군복무가 국가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쓸데없이 젊은 시기를 허비하는 기간이라는 뜻이다. 법률적 책임으로 보나 국가지도자의 품격으로 보나 상상할 수도 없는 끔찍한 표현을 서슴지 않고 입에 담았다. 개인의 일탈과 비교할 수 없는 막말이고 국가에 대한 무시였다. 군복무 중이거나 복무를 마친 모든 군인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사기가 떨어질 말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했던 말은 세월이 지나며 흐지부지 잊혀져 버렸다.

문재인 대통령 재임 때는 더했다. 국군의 전력을 높이고 비상시에 대비하는 훈련은 이런저런 이유로 축소되거나 사라졌다. ‘삶은 소대가리’라는 말을 들어도 눈만 꿈벅거릴 뿐 못 들은 척 반박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공무원이 북한군에게 사살되어 시신이 불태워져도, 북한이 미사일을 쏴대도 북한 편들기에 열심이었다. 오죽하면 ‘북한 대변인’이라는 말을 들었을까.

‘국민감정’에 손상을 준 것으로 따지면 어느 쪽이 더 심각한가. ‘애국심’이라는 막연한 국민감정이 누군가를 필요 이상으로 차별하는 폭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조희문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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