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문의 영화세상] 새로운 전기 맞은 5·18 진실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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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8-03 06:31:25

‘리틀 빅 히어로’(1993)라는 영화에는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영웅과 자기가 한 일이라며 가짜 영웅 행세를 하는 사기꾼이 등장한다. 비행기 추락 사고가 일어나고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부랑자 버니는 부상당한 승객을 구해 내지만 비가 내리는 어두운 밤이라 누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도움을 받은 당사자조차 자기를 구해 준 인물이 누구인지 모른다.

버니는 우연히 만난 존이란 건달에게 자신이 겪은 무용담을 이야기해 주고 구조 상황에서 잃어버린 구두의 남은 한짝을 건네준다. 이것이 단서가 되어 존은 비행기 추락 현장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승객의 생명을 구한 영웅 대우를 받는다. 그래도 존에게는 최소한의 양심은 남아 다른 사람의 공적을 가로챘다는 것과 언젠가는 진실이 드러날 것이란 두려움에 시달린다.

5·18특별법은 김영삼정부 시절 여야 합의로 만들어졌지만 정치적인 필요에 따라 급조된 측면이 강했다. ‘소요 사태’가 ‘민주화운동’으로 재규정됐지만 실체적 진실까지 모두 가려낸 것은 아니었다. 민간인이 경찰 무기고를 습격하고 무장을 한 것이 정당한지, 총상을 입고 숨지거나 다친 사상자의 몸에서 나온 카빈 소총 탄환이 계엄군이 사용했던 M-16 소총 탄환과 다른 이유는 무엇인지, 계엄군이 무고한 시민에게 일방적으로 총격을 가한 것인지, 정말로 북한군 또는 북한의 지시를 받은 세력들의 개입은 없었는지 등의 의문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연구자 중에는 북한군의 개입이 있었다고 주장하다가 구속되는 경우도 있었다. 북한과의 연계를 주장하는 탈북인 증언자나 정치인·학자·언론인이 여전히 있지만 ‘합리적 의문’이라 하더라도 공개적인 논의를 해서는 안 된다며 법으로 틀어막고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는 ‘표현의 자유’가 5·18 앞에서는 예외다.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반민주적인 폭거가 대한민국에서 보란듯이 자행되며 새로운 증거나 증언이 못 나오도록 막고 있다.

그럼에도 5·18 유공자에 대한 의문과 불신은 가시지 않고 간단없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1월, ‘5·18가짜유공자척결투쟁위원회’라는 시민단체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19년 기준 5·18 서훈자 1만5180명을 전수조사 해 가짜 5·18유공자를 가려내 달라”고 요구했다. 그동안 5·18 가짜 유공자 이야기는 다른 단체에서는 간헐적으로 나왔지만 진짜 유공자들이 직접 가짜 유공자 척결을 주장한 건 처음이다. 기자회견에는 ‘가짜 색출 척결! 끝까지 간다!’는 현수막과 ‘이××를 내가 인우보증 해 줬다! 양심선언 당사자 정××’ ‘허위 인우보증 및 부정 수급자 전수조사 하라’ ‘민주당은 5·18 명단을 공개하라’ ‘가짜 5·18 유공자 전수조사 및 예우 박탈’ 등의 푯말이 등장했다.

지난 몇 주 동안 스카이데일리 신문은 정치인·교육자·문화예술인 등 각 분야별로 정리한 4296명의 유공자 명단을 분석해 그 내용을 공개했다. 산발적으로 오가던 유공자 관련 의혹을 향한 충격적인 직격이었다. 현장에 있다가 죽거나 다친 경우처럼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도저히 공적을 인정받을 수 없는 가짜 유공자들의 수도 상당했다. 무슨 이유로 유공자가 되었는지 내용을 밝히지 않은 경우도 많았고 당시에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인물이 유공자 명단에 포함된 사례도 있었다. 옥석이 구분되지 않은 상태로는 정당한 유공자도 제대로 평가를 받기 어렵고 평가를 새로 해야 한다는 논란만 계속될 뿐이다. 유공자 선정 절차나 방식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으며 증거도 확보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유공자 공적에 관한 관리를 광주시가 움켜쥐고 있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국가 예산으로 보상은 물론 각종 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데도 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5·18이 특별관리를 받아야 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 끼리끼리 나눠먹기 한다는 의혹과 불신을 만드는 것은 광주의 아픔을 치유하고 통합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다양한 문제제기와 토론을 억누른 채 무조건적인 성역화가 진행되는 것은 오히려 광주의 명예를 격하시킬 뿐이다. 1980년의 광주 사건은 온 국민이 역사 속에서 함께 아픔을 공유하고 극복해야 할 문제이지 특정 지역만을 위한 훈장이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출범한 ‘민간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발생한 희생을 기리고, 가짜 유공자를 색출해 진정한 5·18 유공자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를 밝히고 있다. 영화에서는 가짜 영웅이 양심의 가책을 느낀 끝에 진실을 밝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만 현실의 5·18 논란은 산 넘어 산이다. 진짜 유공자는 분노하고 가짜는 침묵하고 있다. 광주는 끝난 게 아니라 현재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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