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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난 가족’(2003)은 자신의 삶을 찾겠다며 마음대로 행동하다 오히려 가족이 해체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남편과 아내, 나이든 시어머니가 모두 바람을 피운다는 설정도 엽기적이지만 더욱 경악할 장면은 입양한 아들이 남편이 일으킨 교통사고에 원한을 품은 범인의 손에 떠밀려 숨지는 장면이다. 범인은 공사 중인 고층건물에서 어린이를 밀어서 떨어뜨려 숨지게 만든다. 일말의 주저함이나 양심의 가책 따위는 없다. 한국영화는 물론이고 외국영화에서도 나온 적이 없는 모습이다.
나는 이 장면을 지금까지 나온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잔혹하고 엽기적인 사례로 꼽는다. 해당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을 실제로 해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최고 연출 목적은 모든 장면이 사실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란 점에서 관객은 그것을 진짜라고 여기게 된다.
어린이는 어떤 이유로든 학대하거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불문율이자 심의나 검열 규정이 있는 나라들에서 지켜지고 있는 공통된 규범이다. 영화에서도 그럴진대 실제 정치 현장에서도 물론 이는 금기다.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후쿠시마 핵 오염수 불법 해양 투기 저지를 위한 아동·청소년·양육자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미래 세대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명분으로 6세부터 10세 사이의 ‘어린이 활동가’ 7명을 부모와 함께 참석케 했다. 참석한 어린이들을 대표해 8세 A양은 “영상으로 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안은 아주 끔찍했다”며 “거기서 나온 위험한 물을 바다에 버린다니 무지 놀랐다”고 발언했다. 이 대표는 “미래 세대 활동가의 말을 잘 들었다”며 “총력 단결해서 대책을 강구하고 저지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맞장구치는 모습을 연출했다.
나이 어린 어린이를 ‘활동가’라고 치켜세우는 것도 그렇지만 정치 선전에 어린이를 버젓이 동원하는 후안무치함과 잔인성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 자리에 참석한 정치인들이나 어린이를 데리고 나타난 부모들이나 정상이 아니기는 마찬가지로 보인다. 광우병 시위 때 유모차를 끌고 군중 속에 섞인 부모들 이후 이런 부모들이 간단없이 나왔다.
올해 2월 서울 숭례문 일대에서 촛불행동이라는 좌파 단체가 주최한 집회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얼굴 사진을 부착한 인형에 장난감 활쏘기, 윤 대통령 부부 등의 사진이 붙은 풍선 샌드백 두드리기 등의 이벤트를 벌였고 어린이들도 제한 없이 참여시켰다. 참여한 어린이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누구에게 이용당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놀이하듯 방망이를 휘둘렀다.
2016년 말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집회’에서도 주최 측이 박 전 대통령 얼굴 모형을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이를 타격하도록 했고, 지난해 광화문 광장에서 이적단체 출신 인물이 주최한 집회엔 ‘중고생들은 교복을 입고 나오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어른들의 정치 선동, 그것도 폭력을 조장하는 행사에 어린이‧청소년까지 들러리를 세운 것이다.
어린이나 청소년을 정치 선전이나 선동에 동원한 사례로는 히틀러 집권 시대의 독일청년단 유겐트, 그리고 마오쩌둥 집권기의 문화혁명 시절 홍위병이 떠오르지만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어린이를 반정부 시위에 동원하고, 전교조가 현장 수업이라며 김일성 찬양 따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민주당이 정치 선전에 어린이를 이용하는 사례는 그에 못지않다. 특히 야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어린이를 앞세운 것은 경악할 일이다.
중국의 ‘문화혁명’(문화적이지 않은데도 왜 그 이름을 사용하는지 납득할 수 없지만)은 실제로는 마구잡이로 파괴하고 부수고 전통을 뒤집는 폭력만이 가득한 광기의 시기였다. 지금 우리나라에선 선거로 지도자를 뽑고 누구나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시대라고 하면서 거짓과 선동이 난무한다. 폭력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고 타인의 권리를 해칠 수 없다는 사회의 기초 규범은 쓰레기통에 버려진 운동화 꼴이 됐다.
미성년자를 등장시켜 만든 폭력적 포르노 영상을 가리켜 스너프 필름이라고 부른다. 이런 영상들은 실제로 사람을 해치거나 폭행한다. 스너프 필름의 제작·유통·소지는 모두 중범죄에 속한다. 어린이를 앞세운 정치 선동은 ‘정치 스너프’나 다름없다. 단순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이고 고의적이라는 점에서 더욱 악질적이다. 시민단체가 그런 일을 하더라도 비난받아야 하지만 사회에서 벌어지는 옳고 그른 다양한 일들을 선도하고 계도해야 할 공당의 대표가 해서는 안 될 일에 오히려 앞장서다니 경악하는 것이다. 야당 정치의 끝장 드라마다. 그저 비난만 하고 지나갈 일이 아니라 아동학대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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