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문의 영화세상] 명분도 절박함도 감흥도 없는 ‘단식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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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9-07 06:31:00

아일랜드 영화 ‘헝거’(2008)는 1981년 아일랜드 공화주의자(IRA)들이 감옥 안에서 벌인 단식 투쟁을 다루고 있다. 마틴 허슨은 46일 째에, 키어른 도허티는 73일 만에 숨지는 등 10명의 사망자를 낸 이 사건은 세계적인 파문을 일으켰다. 영화는 핵심 인물인 보비 샌즈에게 초점을 맞춘다. 간단없이 이어지는 고문과 구타, 목숨을 건 단식에 이르는 과정은 처절한 비장미로 가득하다.

시위나 단식은 약자가 자신의 요구를 여론에 알리고 싶을 때 선택하는 마지막 수단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느닷없이 단식을 한다는 선언이 나오자 새로운 예능을 촬영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원내 과반이 넘는 168개의 의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대표가 단식이라니. 민주당은 ‘집권 야당’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국회 안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가진 다수당이다. 검수완박을 비롯해 체포동의안 가·부결 등 숫자로 밀어붙이는 일은 여론의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해치웠다. 이태원 압사사고의 책임을 묻는다며 행정안전부 장관을 탄핵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이 장관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기각결정을 내렸다. 그런데도 대국민 사죄 대신 오히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고 우겼다.

전두환정부 당시 김영삼 민추협 대표는 민주화운동으로 구속된 인사의 전원 석방, 보도지침 폐지 등 5개 요구조건을 걸고 단식 시위를 벌였다. 23일간 계속된 단식은 ‘야당 인사의 식사 문제’라는 이슈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세간의 관심을 모았고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전기가 되었다.

2018년 김성태 의원이 드루킹 댓글 사건의 특별검사 실시를 요구하며 9일간 단식농성을 벌인 사건도 기억할 만하다. 결국 특검이 이루어지고 김경수 경남지사가 책임자로 지목돼 구속되는 등 정국이 요동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장미를 풍기던 단식은 ‘과연 제대로 했는가’라는 의구심을 받으며 쇼로 둔갑하는 바람에 오히려 웃음거리가 되기 시작했다. 특히 곡기를 끊고도 100일을 버티는 절대 신공을 보여 준 승려 지율의 단식은 의사들도 놀랐을 정도다. 100일 단식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고 물과 소금을 먹는다고 해도 인간이 버틸 수 있는 생존의 한계를 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이라면 기네스북에 오르고도 남을 신기록이다. 현애자 민노당 의원의 27일, 천정배 열린우리당 의원의 25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24일도 손꼽히는 기록이다. 그런데도 다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곧 업무에 복귀했다. 특히 정청래 의원은 단식을 끝낸 후 담배를 피웠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쇠약해진 몸으로 담배를 피면 쇼크로 쓰러져야 정상인데 아무 일이 없었으니 단식을 과연 제대로 한 것이냐는 논란으로 이어졌다.

이재명 대표의 단식은 리모콘으로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우연히 눈에 띈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기분이다. 텀블러를 옆에 끼고 시간 맞추어 오가는 출퇴근 단식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튜브 생중계까지 하고 당무까지 본단다. 실제로 시위현장에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정도면 어쨌든 쇼의 구색은 제대로 갖추었다고 할 만하지만 요구 조건이 없는 것도 이례적이다. 결국 며칠 하다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여 줘서 검찰 조사나 재판을 피해 보겠다는 것인가. 고양이에게 쫓기던 닭이 꽁무니는 드러낸 채 대가리만 처박고 안심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 이전에도 검찰이나 법원에 출석할 때 휠체어나 앰뷸런스를 탄 채 나타난 정치인이 더러 있었지만 그 역시 같은 방법을 써 보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란 의구심이 넘친다.

단식을 하면서도 시간을 정해둔 채 출퇴근 하는 것은 낮에는 금식하고 해가 지면 음식을 먹는 ‘라마단 금식’을 흉내낸 것인가. 아니면 ‘황제 다이어트’라도 하는 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음식을 먹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관찰카메라라도 달아야 할 판이다. 왜 단식을 하는지보다 텀블러에 뭐가 들었을까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는 것은 본인도 예상 못했을 터이다.

그가 예전에 말했던 ‘당 대표의 단식은 저항 아닌 땡깡’이라는 직격과 ‘내가 단식한다니까 진짜 하는 줄 알더라’라는 비유도 떠오른다. 이재명 대표처럼 범죄 혐의를 많이 받는 경우를 본 적이 없고, 모든 것을 모른다거나 남 탓·검찰 탓으로 돌리며 악착같이 자리를 지키겠다는 후안무치함도 처음 보는 모습이다. 이재명 기획·연출·주연이지만 명분도 절박함도 감흥도 없고 타이밍도 맞지 않는 ‘단식 쇼’가 관객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조희문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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