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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덕 무형문화재 화각장 전수교육조교
[人스토리] 쇠뿔에 꽃핀 예술혼… 전통의 맥을 잇다
적·청·황·녹·백 5色으로 완성하는 전통의 아름다움 탄성
전통이 중요해도 시대와 호흡해야… 창조적 장르 도전
첨단 엔지니어에서 변신… 가업 계승 20년 ‘우보만리’의 삶
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0-05 00:13:13
 
▲ 한기덕 화각장 전수교육조교가 예올 강연회에서 화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유이 기자
 
한 나라의 전통문화에는 그 나라 사람들의 DNA가 잠재되어 있다. 그들이 오랫동안 선호해 온 것들이 전통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전통에는 다른 사람들이 흉내 내기 힘든 그 지역 고유의 향기가 담기게 된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세계화·평준화의 물결 속에서 전통을 지켜야 하는 것은 전통이야말로 우리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화각(華角) 공예란 쇠뿔을 각지로 만든 후 그 위에 도안을 그리고 채색하여 가구 등에 부착하는 전통 공예기법이다.
 
예올에서 올해의 장인으로 선정
 
923일 막을 내린 ‘2023 예올 X 샤넬 프로젝트에서 올해의 장인으로 선정된 한기덕(48) 전수교육조교는 대를 이어 화각공예의 맥을 잇고 있다. 그의 스승이자 부친인 고 한춘섭 옹은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9호 화각장 보유자였다.
 
전수조교라는 말이 낯설다.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일까?
 
전수조교는 국가무형문화재 전승 체계에서 소위 인간문화재로 불리는 기·예능 보유자와 이수자 중간에 있는 이들입니다. 전수자가 학부생이라면, 이수자는 대학원생, 전수조교는 박사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죠. ”
 
전통공예의 길은 그만큼 멀고 험하다. 기능보유자가 되었다고 해서 만사형통은 아니다. 그의 아버지도 기능보유자였지만 가족들이 10년 넘게 무보수로 그의 일을 도왔다.
 
어머니는 화각에 그림을 그리셨어요. 저도 아버지가 시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했습니다. 거의 모든 공정에 참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전통을 잇는다는 것은 거룩한 일이지만 그 바탕에는 가족들의 철저한 희생과 봉사가 있었던 것이다.
 
생활가구로 화각공예의 외연 확장
 
▲ 한기덕 전수조교가 새롭게 해석한 작품(위)과 전통적인 화각공예품. 임유이 기자
 
한 작가는 대학을 졸업한 뒤 공장자동화 설계를 하는 엔지니어로 일했다. 첨단 직업군에 속했던 그가 화각으로 돌아선 것은 2002년의 일이었다. 그가 29세 되던 해였다. 언젠가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이왕이면 빨리하자고 시작한 일이다.
 
제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화각을 시작하겠다고 하자 부모님은 선뜻 동의해 주지 않으셨어요. 볕도 잘 들지 않는 어두운 반지하 공방에서 쇠뿔을 갈고 다듬어 온 아버지로선 당연한 반응이었죠.”
 
20년간 이 일을 하면서 그가 한 번도 회의를 품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동료들이 승진을 하거나 사회에서 자리 잡아 가는 것을 보면 슬며시 부러움이 일기도 했다.
 
한 작가는 화초문갑·경대 등 작은 가구에 주로 활용되던 화각공예를 스툴·조명과 같은 생활가구들로 외연을 넓힌 공로가 크다. 또한 옻칠 마감을 더해 사용성을 높여 화각공예의 위상을 한 단계 올리기도 했다.
 
서울 북촌에서 열렸던 예올 X 샤넬 프로젝트’에는 김동준 도자공예가와 함께했다. 이 프로젝트의 주제는 우보만리: 순백을 향한 오랜 걸음이다. 느리지만 우직하게 걸어 만 리를 가는 소처럼 덜어 내고 깎아 내며 순수함을 지켜 온 화각과 백자의 가치를 드러내는 자리로 마련됐다.
 
쇠뿔 본연의 자연스러운 색감을 찾아
 
▲ 화각공예의 제작 과정을 보여 주는 자료. 임유이 기자
 
이번 프로젝트에서 한 작가는 문양과 색을 다 덜어 내고 쇠뿔 본연의 자연스러운 색감과 질감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
 
나무를 보면 수종에 따라 혹은 성장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른 색감과 질감을 갖습니다. 마찬가지로 쇠뿔도 자라면서 자기만의 문양과 질감을 갖죠. 어떤 것은 짙은 먹색을, 어떤 것은 옅은 갈색을 띠는데 그 순수한 성장통의 흔적을 그대로 살려 고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게 이번 전시의 목표였습니다.”
 
쇠뿔이라고 해서 다 화각의 재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메리카들소로 불리는 버펄로나 동남아시아 물소의 뿔로는 화각공예를 할 수 없다. 뿔이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우 암소 뿔도 크기가 작고 휘어짐이 곧지 않아 화각의 재료가 될 수 없다. 오로지 우리 땅에서 성장한 황소의 뿔만이 화각으로 재탄생될 수 있다. 황소 뿔 중에서도 2~4년생의 크고 곧게 자란 고추뿔을 최고로 친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공예기법 또한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지만 쇠뿔을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만큼은 아버지 대와 달라진 게 없다. 가스버너에 뿔을 구워 1mm 두께가 되도록 얇게 갈아 내 그 위에 그림을 그리고, 화각을 백골에 붙이는 일까지 전부 사람 손을 거쳐야 한다.
 
화각 뒷면에 그림을 그리는 이면화법
 
▲ 이면화법의 탄생. 임유이 기자
 
화각은 회화 기법상 이면화법을 따른다. 이면화법이란 투명한 유리나 종이 뒷면에 그림을 그려 비쳐 보이는 효과를 내는 것을 말한다. 이집트에서 발생한 대모복채기법이 그 기원으로, 중국을 거쳐 신라에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대모란 바다거북의 등껍질로 우리나라에서 구하기 힘든 재료였기에 쇠뿔로 대체된 것이다.
 
화각에 들어가는 그림은 전사법을 이용한다. 기존의 도안을 그대로 대고 그리는데 일반 공예품에 널리 쓰인 십장생이나 궁중에서 애용하던 용·호랑이·봉황·모란 문양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화각공예에서 눈에 띄는 것은 화려한 색감이다. 울긋불긋 다채로운 색감이 언뜻 한국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화각공예란 게 그때나 지금이나 귀한 재료를 사용하다 보니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당시만 해도 화학적으로 색채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꿈도 못 꾸었고 자연에서 안료나 염료를 구해야 했다. 누구나 원하지만 능력 있는 귀족들만 향유할 수 있는 게 색깔이었다. 당시 권력층은 가구며 장신구에 한껏 색채를 사용하면서 부와 명예를 과시했던 것이다.
 
화각에는 적····5가지 색채가 사용됩니다. 음양오행 사상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이 다섯 가지 색은 단독으로 쓰일 때보다 어우러지면서 더 빛이 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화각이 단독으로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보니 화각공예에선 접착제가 더 없이 중요한 요소다. 화각을 백골(기물)에 붙일 때는 민어풀을 이용한다. 부레풀이라고도 하는 민어풀은 어교로 분류된다.
 
민어풀은 말린 부레를 물에 넣고 끓여서 만드는데 투명도가 뛰어나 단청 안료와 혼합해 쓰거나 기물에 나전이나 화각을 붙일 때 주로 사용했다. 동물 가죽에서 얻는 아교의 경우 접착력은 우수하지만 신축성이 없어 화각공예에는 잘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 예올 전시 때 선보인 작품 전부가 민어풀을 이용한 것입니다. 대체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더 뛰어난 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민어풀을 고수하는 것이죠.”
 
보는 공예에서 사용하는 공예로
 
이렇게 공이 많이 들어가는 귀한 공예품의 주 소비층은 누구일까? 국빈이 방문하면 화각공예품을 선물로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일반인이 구매해 가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국빈에게 화각공예품을 선물로 줄 경우, 가져가야 하는 문제도 있고 해서 작은 물건을 선호합니다. 우리나라에 수많은 전통공예품이 있다 보니 화각공예에만 차례가 돌아오는 게 아니어서 그렇게 수요가 많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간간이 기업체에서 선물용으로 구매하기도 하고, 많지는 않지만 매니아 층도 있죠.”
 
화각장이 경기도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목록에 이름을 올린 게 2015년이다. 지원금이라야 60만 원이 전부다. 정부 지원에만 기댈 수 없는 이유다. 결국은 실질적인 소비를 늘리는 데 화각공예에 생명이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전통이 소중하다고 해도 시대와 호흡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용적이지 않은 물건, 전시품으로만 소모되는 공예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번 예올·샤넬 프로젝트를 계기로 저희 화각공예도 더욱 새롭고 창조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생각입니다. 장르의 탄생이라고 해야 할까요?”
 
1930년대 민예연구자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의 공예품을 가리켜 이런 말을 했다.
 
조선의 물건은 인간이 만든 것인지 자연이 만든 것인지 알 수 없다. 그것은 만든다기보다 태어나는 것이다.”
 
아름다운 한국의 화각공예가 대중적으로도 큰 사랑을 받기를 기대해 본다. 그 중심에 한기덕 전수조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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