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산의 울림] 출근 첫날 아내는 왜 통곡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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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으로의 망명 이야기 <5>

김태산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1-24 06:31:00

하나원을 수료한 후 아내는 교회에 계속 다녔다. 얼마 후 아내는 목사님의 주선으로 영어 교육 전문회사에 방문교사로 채용되어 15일간 본사에서 진행하는 연수를 받고 돌아왔다. 본사에서는 우리가 사는 곳이 서울 양천구여서 양천지부에 배속시켜 주었다.

그런데 부자 동네라고 알려진 목동에 자리 잡은 양천지부에서는 아내를 교사로 채용할 수 없다고 했다. 본인에게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탈북인이라 반대하는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아내는 잘할 수 있다고 빌었지만 그들은 아내를 북한에서 온 무식한 꽃제비 취급을 했다.

창피를 당하고 집에 온 아내는 밥도 안 먹고 서럽게 울기만 하는데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이틀 동안 누워 있던 아내는 그래도 힘을 내어 본사로 찾아갔다. 이미 보고를 받아서 다 알고 있던 본사에선 자기네가 구인을 강요할 수는 없다면서 다른 구역으로 가 보라고 했다.

다른 구역 지부에 가니 그곳에서도 탈북인이 정말 영어를 잘할 수 있겠는가 하여 면접 삼아 나름대로 유능한 교사들을 모아 놓고 아내에게 영어 듣기와 발음·문법 등을 테스트했다. 사실 아내의 영어 실력은 그곳에 모인 교사들을 훨씬 능가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면접시험을 통과하자 지부장은 마침 퇴직하는 교사가 한 사람 있으니 다음 날 그 교사에게서 학생들을 인계받으라고 했다. 다음 날 지부로 나가니 퇴직하는 교사가 자신이 학부모들에게 다음 날부터 새로운 교사가 갈 거라고 통보를 해 놓았다며 70명의 학생 명단을 넘겨주었다.

학생 명단을 받아 집에 온 아내는 기뻐하며 밤새 아이들의 이름과 집 주소를 달달 외워서 들뜬 기분으로 다음 날 출근했다. 그런데 지부 사무실 분위기가 무섭게 냉랭함을 느꼈다. 누군가와 전화를 하며 미안하다고 사죄를 하던 지부장이 전화를 끊으며 아내에게 첫마디부터 선생 때문에 우리 지부가 문을 닫게 생겼다고 달달 볶아댔다.

아내가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하고 묻자 지부장이 하는 말이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퇴직하는 교사가 학부모들에게 퇴직 인사를 하면서 내일부터는 탈북인 교사가 아이들을 맡아서 교육하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학부모들이 서로 자기네끼리 떠들다 못해 지부에 전화를 해서 교사를 바꾸지 않으면 당장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통지를 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 집이 70명 중에서 무려 50명이 넘는다고 했다. 무식한 탈북인에게 아이들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 학부모들이 말하는 근본 원인이었다. 특히 군인 가정과 경찰·공무원 가정에서는 자신들의 집에는 절대로 탈북인을 들일 수 없다고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아내를 무식쟁이를 넘어 간첩 취급을 했다.

지부장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하는 아내가 안돼 보였는지 당장 대신할 교사도 없으니 남은 아이들이라도 잘 가르쳐서 더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 집에 돌아온 아내는 더는 살고 싶지 않다며 통곡을 했다. 한국으로 오지 않겠다는 아내를 끌고 온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어서 술만 퍼마셨다.

그래도 아내는 용케도 다음 날부터 책가방을 메고 집집마다 교육을 다녔다. 아내는 항상 자신을 향한 학부모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경멸 같은 것을 등 뒤로 느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지옥 같은 순간들을 참고 견뎠다.

그렇게 보름이 가고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지부장은 아내가 어떻게 하는가를 학부모들에게 전화로 물어보면서 계속 지켜보았다. 아내에게 아이들 교육을 맡겼던 학부모들도 아내의 교육 방법과 능력을 계속 지켜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하늘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우선 어린 학생들이 나이 많은 아내를 싫어할 법도 한데 외려 선생님이 좋다고 했다. 또 대학 교육을 다 받아서 영어를 좀 아는 학부모들이 아내가 교육하는 모습을 몰래 지켜보고는 아내에게 좋은 점수를 주었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특히 아이들의 영어 성적이 오르니 아무리 탈북인이라 해도 부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입심 강한 학부모들의 입소문에 떨어져 나갔던 50명의 학생들이 2개월 만에 거의 모두 돌아왔다. 6개월이 지나자 멀리서도 찾아와서 학생 수가 100명을 넘어서니 아내가 혼자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부에서는 다른 교사들에게 더 할당하고도 남아서 교사를 더 보충해야 했다.

그때부터 아내가 속한 지부는 학생 수가 계속 늘어나고 본사의 연말 총화(실적평가)에서 계속 1등을 했다. 지부장은 아내를 보고 보배덩이가 굴러들어 왔다며 좋아했다. 그리고 그 경험이 훗날 우리가 영어학원을 차려서 성공하게 된 밑천이 되었다.

아내가 학원가에서 소문이 나자 탈북인이라고 홀대하던 양천지부에서는 아내에게 집에서 가까운 양천지부로 다시 돌아오라는 제안을 수차례 해 왔다. 하지만 아내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지금도 말한다. “한국 사람들의 인간에 대한 편견은 유럽의 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더 지독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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