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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명소산책] 감성의 시인이자 정치인 라마르틴과 부르제 호수
낭만주의 시의 보석 ‘호수’의 탄생지
프랑스 최대의 아름다운 자연호수
최인숙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2-28 15:23:46
▲ 최인숙 문화칼럼니스트·정치학박사
호수야! (...)/ 사랑하는 이가 찾던 강가/ 그리운 그 물가에/ 보아라, 그녀가 앉았던 바위 위에/ 이제 나 홀로 앉아 있구나// 그날도 뿌리 깊은 바위 아래서 너는 노래했고날카로운 바위를 치며 부서졌지네 안에서 일던 파도의 물거품은/ 바람에 실려 고운 네 발을 적셔 주었지.”
 
알퐁스 드 라마르틴(Alphonse de Lamartine)호수의 일부다. 낭만주의 시의 보석인 이 작품은 프랑스 사부아 산맥의 부르제(Bourget) 호수가 무대다. 1816, 스물여섯의 라마르틴은 한가로운 젊은 귀족이었다. 문학을 좋아해 시부터 비극까지 폭넓은 독서와 글쓰기를 즐겼다. 하지만 여자와 모험을 좋아했던 그는 빚더미에 쌓였다. 이런 그를 그의 아버지는 군 보디가드로 취직시켰다. 그러나 그는 얼마 못 가 그만뒀다. 우울과 큰 불안에 시달리던 라마르틴은 그해 10, 병을 치료하기 위해 호수가 있는 엑스 레뱅으로 떠났다. 강렬하면서도 차분한 이 온천도시에서 그는 평온과 휴식에 빠져 들었다.
 
어느 날 라마르틴은 오트콤브(Hautecombe) 수도원 근처에서 보트를 타고 항해를 즐겼다. 그러나 강한 바람이 호수를 가로질러 몰아쳤다. 이때 해안 가까이에서 위태로운 상태의 보트 하나를 발견했다. 보트 안에 있던 여인은 위험에 처했다. 라마르틴은 즉시 그녀를 구하러 갔다. 그날 밤 이들은 한 어부의 집에 머물렀다. 라마르틴은 폐허가 된 수도원으로 가서 이 아름다운 낯선 여인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다
 
이른 새벽 간신히 깨어난 여인은 구세주에게 감사했다. 그 후 이들은 호수 주변을 자주 산책했다. 여인은 32세의 쥘리 샤를(Julie Charles). 약혼자가 있었지만 이때 처음으로 사랑에 눈떴고 라마르틴도 마찬가지였다. 시인은 어제 나는 물에 빠진 젊은 여자를 구했고, 그녀가 오늘 내 하루를 채우고 있다라는 글을 남겼다.
 
▲ 부르제호수 전경. 위키피디아
 
쥘리는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했다. 하지만 곧 자신이 살던 파리로 돌아갔다. 라마르틴은 그녀와 함께 수도원을 조용히 산책하거나 살롱에서 그녀와 가졌던 짧은 시간들을 떠올렸다. 이들은 서로의 부재를 보충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편지를 썼다. 하루에 세 통을 쓰는 날도 있었다. 이 편지 중 네 통은 시인의 비밀 서랍에서 쥘리의 머리카락 한 올과 발견됐다.
 
그 이듬해 여름 라마르틴은 다시 엑스 레뱅을 찾았다. 쥘리는 건강이 안 좋아 함께 할 수 없었다. 연인의 부재를 한탄하며 시인은 그들 사랑의 유일한 증인인 부르제 호수로 향했다. 산천의 풍경, 모든 돌, 바람의 숨결, 물결의 파문이 그녀와의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시인은 곧 이를 호수에 써 내려갔다. 하지만 3개월 후 쥘리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시는 결국 영원한 부재라는 새로운 색조를 띠게 됐다. 사랑의 아름다움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행복한 기대를 완벽하게 반영했던 호수의 숨 막히는 아름다움은 죽음의 기억과 고통스러운 메아리로 변모했다. 따뜻한 빛이 반사되는 부르제는 오늘날 라마르틴을 사랑하는 애호가들의 순례지가 됐다.
 
젊은 낭만주의 근위병의 상징 라마르틴. 그는 유명한 시인임과 동시에 정치인이다. 17901021일 부르고뉴 지방 마콩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을 고향 근처 밀리 마을에서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공포의 대상이었고 돈에 집착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매우 온화하고 경건했다. 이런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가톨릭 교육을 받게 했다. 그는 신비주의자이자인 샤토브리앙을 열렬히 사모했다. 그래서일까? 문학과 정치라는 두 가지 열정에 사로잡혔다. 그는 시인으로 성공하기 이전 이미 스물한 살 때 밀리 시장이 됐다.
 
▲ 부르제 호수 북동쪽에 있는 오트콤브 수도원: 프랑스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위키피디아
 
그로부터 9년 후 라마르틴은 시집 시적 명상을 발표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젊은 시인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됐지만 그는 명성에 연연해하지 않고 정치참여를 계속했다. 18482월 혁명과 제2공화국 선포에 참여한 위대한 정치 연설가로 명성을 날렸고 대통령 후보가 됐다. 또한 그는 위험에 처한 프랑스 삼색기를 지켜내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다.
 
시인과 유력 정치인. 우리에겐 어색하게 들리지만 어찌 보면 딱 맞는 궁합이다. 정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호수와 같은 감성적 시를 쓴 라마르틴이 정치를 했기에 사람의 맘을 움직였는지도 모른다. 그가 쓴 호수는 지금도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그 무대가 된 부르제 호수는 프랑스에서 가장 큰 자연 호수다. 숲이 우거진 고양이 이빨처럼 생긴 산과 어우러진 거친 해안선이 일품이다. 청록색 물속에 잠긴 산들의 모습은 기막힌 절경을 이루고 있다. 호수 북쪽 끝 갈대밭에는 오리, 물 닭, 큰기러기, 쇠기러기, 왜가리 등의 서식지로 사비에르 운하를 따라 언덕과 포플러 숲이 펼쳐져 있다. 서쪽은 원시 해안(côte sauvage)이라 불릴 만큼 자연 그대로 보존돼 있다.
 
이 호수에서 절정은 라마르틴과 쥘리가 하룻밤을 보낸 오트콤브 수도원이다. 사보이 왕가의 천 년 왕조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는 이 수도원은 호수를 장엄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이 수도원에서는 사부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불꽃놀이가 벌어지고 이를 보러오는 사람들이 많다. 라마르틴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낭만의 밤축제가 열리는 계절 이곳으로 떠나 불꽃놀이를 즐기고 대자연의 호수를 만끽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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