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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다. 시상식의 꽃이자 배우 최고의 영예인 남우주연상은 아일랜드 출신 배우 킬리언 머피(‘오펜하이머’ 주연)에게 돌아갔다. 영화 ‘28일 후’ 첫 주연 이래 ‘배트맨 비긴즈’ 등 여러 흥행 영화에 출연하며 강한 인상을 남겨 온 배우이지만 상복은 없었다.
시상식에서 머피는 제일 먼저 “크리스토퍼 놀란(감독)과 엠마 토마스(제작자)에게 감사드린다”며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이상의 큰 빚을 졌다. 오펜하이머 모든 제작진과 출연자께 감사드린다. 오늘 밤 이 자리에 선 아일랜드인으로서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는 머피 생애 최초의 아카데미상 후보 지명이자 첫 수상이다. 첫 수상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저력을 각인시킴으로써 주연급 배우의 입지를 공고히 한 셈이다. 향후 작품 활동에 선택의 폭이 대폭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의 출연작 중 추천할 만한 것들을 추려 봤다.
머피는 1996년 데뷔 후 여러 단역을 거치다 2002년 데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에서 처음 주연을 맡았다. 분노바이러스에 감염된 인류가 좀비화하면서 사회 붕괴로 이어진다는 설정의 이 영화에서 가능성을 보여 준 이후 여러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
‘28일 후’에는 굼뜨고 무기력한 기존의 좀비 대신 분노바이러스에 감염된 빠르게 달리는 좀비가 등장한다. 속도감 있게 전개되며 새로운 종류의 좀비물을 개척한 영화로 평가받았다. 속편은 머피 없이 만들어졌으나 5월 촬영에 들어갈 새로운 후속편 ‘28년 후’에선 머피가 주연할 예정이다.
머피는 놀란 감독의 2005년작 ‘배트맨 비긴즈’에서 악당이자 정신병원 의사인 스케어크로우(조나단 크레인 박사)로 출연해 감독의 눈에 띄었다. ‘배트맨 다크나이트’(2008) ‘배트맨 다크나이트 라이즈’(2012)에 스케어크로우로 연속 출연하며 놀란 감독과 인연을 쌓았다. 다크나이트 라이즈 때는 몰입을 위해 각본을 미리 보지 않고 배역의 역할과 동기만 확인한 채 촬영에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머피가 출연한 켄 로치 감독의 2006년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작품성을 인정받아 200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났다. 아일랜드 독립 전쟁과 내전 속 형제 갈등을 리얼하게 그린 영화로, 해방 직후 나라 만들기를 둘러싸고 유사한 비극을 겪은 한국인들에게 남다른 감흥을 안겨 주는 작품이다. 머피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 데이미언 역할을 맡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10년작 ‘인셉션’에서 머피는 에너지 회사의 후계자이며 주인공 도미닉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팀의 표적인 로버트 피셔 역할을 맡았다. 타인의 꿈에 침입해 정보를 캐내고 생각을 조작한다는 설정의 인셉션은 영화 팬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명화로 꼽힌다.
놀란 감독의 2017년작 ‘덩케르크’에는 뒤집힌 배 위에서 떨며 구조를 기다리는 군인 역할로 출연했다.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덩케르트 철수 작전을 소재로 삼은 영화다. 머피의 생생한 필사적 연기가 몰입감을 더해 준다.
머피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다. 머피가 원자폭탄을 개발한 천재 과학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박사를 연기했다. 그의 복잡미묘한 내면 연기와 실감나게 연출된 핵폭발 장면 등이 압권이다.
이 외 그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국 드라마 시리즈 6부작 ‘피키 블라인더스’도 흥미롭다. 1919년 영국 버밍엄을 배경으로 주인공 토마스 쉘비의 쉘비 가문이 악명 높은 범죄 조직 피키 블라인더스를 이끌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잘 묘사된 시대상과 시나리오·연기력이 어우러져 6편의 시리즈를 단숨에 몰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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