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석칼럼] 비리 경영 반복해 온 KT 이번엔 달라질까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데스크칼럼

고동석 편집국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3-28 00:02:40

KT는 대표이사 교체기 때마다 권력의 입맛에 맞춘 코드인사라는 비판이 있어 왔다. 또한 외풍에 흔들린 경영진의 최후는 늘상 범죄 혐의와 비리 경영으로 내쫓기듯 퇴진하는 것이었다.

KT는 이동통신사 3사 중 유일하게 지배주주가 없는 기업으로 그나마 국민연금공단이 대주주로서 이사회 의결권을 주도한다.

국민연금은 줄곧 대표이사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 결과 국민연금이 힘을 실어 주는 후보가 어김없이 그 자리에 올랐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정권의 손짓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모순적인 구조를 여전히 떠안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공식 취임한 대표이사는 책임 경영보다는 권력의 입맛에 따라 눈치보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탓에 과거 전임 대표들은 인사청탁을 받았다가 수사를 받기도 했고 심각한 경영 부실을 초래하거나 통신 사고를 터뜨리고도 사과문 몇 마디로 책임을 회피하는 등의 행태를 보여 왔다. 한마디로 고위 경영진으로서의 위기의식 자체가 부재했다는 얘기다.

KT 지주사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올해 2월 공시에 따르면 2023년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4% 줄어든 약 1조6498억 원이다. 당기순이익도 전년 약 1조3876억 원에서 9887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부채는 매년 불어나는 추세다. 주인이 없는 기업이다 보니 KT 조직 내부는 자리 보전을 위한 파벌 간의 이전투구로 심각한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

KT는 전신인 ‘한국통신공사’에서 2002년 8월 민영화된 이후 기업지배구조센터로부터 기업지배구조 우수기업으로 평가를 받았던 적이 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남중수 전 KT 사장은 협력업체들로부터 매달 3억여 원의 뒷돈을 정기적으로 상납받은 것이 들통나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뒤이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KT의 대표이사 사장을 지내고 대표이사 회장을 역임한 이석채 씨 역시 비리 경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는 KT 최고경영자(CEO)로 재직 시 국회의원과 고위 관료의 취업 청탁을 받고 8명을 채용한 비리 혐의로 구속됐다.

이 전 회장의 임기 중에 있었던 최악의 사건은 아무 문제 없던 위성과 관제 시설을 해외 기업으로 헐값에 팔아먹은 무궁화 위성 매각 건이다. 이 사건은 KT의 부실한 지배구조가 본격적으로 도마 위에 오르는 계기가 됐다. 그 후 2014년 주주총회에서 관료 출신을 배제하고 기업인 출신으로 선임한 KT 회장 황창규 씨도 2019년 정치권과 고위 공무원·군과 경찰 출신 등을 상대로 자문료라는 명목으로 고액의 로비 자금을 뿌렸다는 의혹을 받고 검찰 수사선상에 오르기도 했다.

검찰 수사로 세간의 비판에 휩싸였던 황 회장이 떠난 자리에는 2019년 12월 KT 출범 이후 처음으로 내부 인사인 구현모 대표가 선임됐다. 구 대표는 취임사에서 “KT그룹을 외풍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지만 끝내 국민연금의 외압을 이기지 못해 연임되지 못했다. 그 배경에는 2014년 5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상품권을 매입한 뒤 되팔아 현금화하는 이른바 ‘상품권 깡’ 방식으로 11억5000만 원 상당의 비자금을 조성해 이 중 4억3790만 원을 19·20대 여야 국회의원 99명에게 불법 후원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와 업무상 횡령혐의로 기소된 사실이 있는데 이것이 그의 연임 발목을 잡았다. 구 대표는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가 항소 법정에선 최종 7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구 전 대표가 KT를 떠나기 직전의 연봉은 30억7300만 원으로 여기에 퇴직금 19억3500만 원을 더해 모두 50억 원이 넘는 돈을 챙겨 떠났다. 사건에 연루된 그의 측근들도 수십억 원의 보수와 퇴직금을 받고 물러났다.

현재 대표이사는 김영섭 씨다. LG에서 40여 년간 근무한 정통 LG맨이다. 그는 작년 초 LG CNS 대표를 퇴임하고 8월 초 KT 대표이사 후보자로 내정돼 그달 30일 임시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아 취임했다.

KT가 세간의 비판과 조롱거리로 전락한 것은 민영화 출범 이후부터 줄곧 되풀이돼 온 경영진 관련 흑역사 때문이다. 이는 KT가 걸어온 한 치도 숨겨질 수 없는 기록이다. KT 조직 내부에서도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세력을 키우는 사내 정치가 만연하다는 비판들이 흘러나온다. 김영섭 대표이사는 내부 조직의 이합집산 속에 외부 영입 인사라는 허약한 입지 때문에 사실상 회사를 이끌 리더십이 부재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가 최소한의 리더십을 붙잡아 보려는 방식은 겨우 ‘책임경영의 일환’이라며 개인적으로 자사주 5천300주를 매입하며 안간힘을 쓰는 정도다.

외부 주주들이 지배권을 행사하는 KT의 경우 나름대로 이사회 구성과 운영을 잘해 왔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사외이사 비율이 높고 감사위원회가 존재해도 KT 내부 비리를 적발하는 데에는 한계를 보여 왔다. 기업 경영 구조상 대표이사의 일탈과 일상적인 부실경영을 감시하고 적발하기는 쉽지 않다. 경영진의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나도 연임만 꺾을 수 있었을 뿐 비리와 범죄 혐의가 있는 대표들을 경질하거나 잘라 낼 수 없었다.

이러한 경영 감시의 한계로 KT의 오늘은 겉으로 아무 일 없는 듯 보이나 속으로는 또 다른 비리의 싹이 파생되고 있을 수 있다. 아니 어쩌면 내부 암투로 이미 곪아 터져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는 의지가 없는 이상 KT의 미래는 없다.

고동석 편집국장 kds@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