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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쓰는 역사 [7] 목련꽃 그늘 아래서 읽는 베르테르의 편지
괴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4-14 20:00:53
▲ 이른 봄 탐스럽게 피어나는 목련화는 늘 ‘젊은 베르테르’를 연상케 한다. 윤상구 사진작가
 
꽃송이가 유난히 탐스럽고 새하얀 목련꽃을 볼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단어는 우아함이다. 이파리도 없이 꽃부터 힘차게 피워올린 그 매력적인 목련을 보노라면 그를 그려낸 여러 작가의 시와 노래가 저절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로 시작되는 ‘4월의 노래’(박목월 시, 김순애 곡)를 들으면 목련화가 활짝 핀 화사한 교정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이 노래는 1953년에 발표되었는데, 박목월 시인은 625전쟁의 참화를 겪은 우리 청소년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자 이 가사를 지었다고 한다.
 
젊은 베르테르를 연상케 하는 목련꽃
 
▲ 꽃송이가 탐스럽고 새하얀 목련꽃은 ‘우아함’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린다. 윤상구 사진작가
 
목련꽃의 아름다움을 기리는 많은 시가를 제치고 특히 이 노래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베르테르라는 고유명사 때문이다. 물론 ‘4월의 노래전체 내용은 베르테르와 별 관련이 없다. 이 이름은 단지 풍부한 감성의 상징으로 쓰였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른 봄 탐스럽게 피어나는 목련화는 늘 젊은 베르테르를 연상케 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독일의 문학가 괴테가 쓴 소설로, 전반부는 주인공 베르테르가 친구 빌헬름에게 쓴 편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후반부에 베르테르에 관한 정보를 토대로 재구성한 사건 설명도 실렸지만 소설의 주요 부분은 거의 베르테르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질풍노도운동에 앞장선 괴테
 
괴테가 살았던 18세기 중반과 19세기 초반, 서양 세계는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괴테는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사이의 7년전쟁·미국독립전쟁·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를 겪었다. 나폴레옹의 지배와 몰락, 그리고 프랑스 혁명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랑스 중심의 빈 체제까지 경험했다.
 
과학이 급속히 발전하며 종교의 절대성은 힘을 잃고 기존 질서와 권위가 잇달아 무너지는 시대였다. 그때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에서 벗어나 자연적 개성·감정·개인주의를 강조하는 새로운 문학 운동이 등장했다. 바로 괴테와 실러가 앞장선 질풍노도운동이었다. 세찬 바람과 성난 파도라는 의미의 질풍노도개념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확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중 상당 부분은 괴테 자신이 실제 경험한 일로 이루어져 있다. 20대에 베츨라 고등법원에서 일했던 괴테는 법관의 딸 샤를로테를 짝사랑했다. 하지만 샤를로테는 이미 케스트너라는 외교관과 약혼한 사이였다. 괴테는 괴로워하면서도 두 사람과 교류를 계속 유지했다.
 
그러던 중 친구 예루잘렘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다른 친구의 부인을 흠모했던 예루잘렘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해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런데 예루잘렘이 자살에 사용한 권총은 괴테가 실제로 사랑했던 샤를로테의 남편 케스트너 소유의 권총이었다.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런 얄궂은 상황들을 바탕으로 창작되었다.
 
베르테르 효과라는 자살 전염 현상
 
이 작품은 발표되자마자 기성 사회와 낡은 전통에 대한 반항심으로 가득 차 있던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런데 문제는 이 소설의 중심 단어가 슬픔을 넘어 자살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수많은 젊은이가 소설 속 베르테르를 모방하여 파란 연미복에 노란 조끼를 입고 부츠를 신은 채 책상 앞에 앉아 권총으로 목숨을 끊었다.
 
제발 베르테르 흉내를 내지 말라고 괴테가 독자들에게 호소도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이 때문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한동안 이탈리아·독일·덴마크 등에서 금서가 되었다. 심지어 자살의 전염 현상을 일컫는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까지 생겨 났다.
 
소설 속 베르테르는 죽기 전 하인을 시켜 빌린 돈을 갚고 빌려준 책을 받아 오게 하며 금전적 지원을 해 주던 가난한 이웃에게 두 달 치 돈을 보내 주었다. 이를 봤을 때 베르테르는 무척 침착하고 이성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자신의 목숨을 끊기 위해 사랑하는 여인 샤를로테 남편의 권총을 빌리고 샤를로테는 불길한 예감으로 벌벌 떨며 권총을 내준다. 베르테르의 계산된 행동으로 진행되는 소설 속 설정은 실제 일어난 일보다 훨씬 더 잔혹하다.
 
물론 잔혹하지 않은 자살은 없다.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성직자는 한 사람도 따라가지 않았다이다. 베르테르의 유해를 운구하는 장면에 나온 설명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베르테르는 영혼조차 위안을 얻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한창때 목련이 워낙 우아하고 고고한 자태를 뽐내서일까, 땅에 떨어져 갈색으로 변해 버린 꽃잎은 유난히 더 처연해 보인다. 누군가는 목련이 꽃 중에서 가장 처참한 모습으로 진다고도 한다
 
아직은 싱싱해 보이는데 땅에 떨어져 버린 목련 꽃잎을 보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수많은 베르테르가 연상된다. 그래서 목련의 낙화가 더욱 안타깝다. 생명의 가지를 붙잡고 버티기 위해 조금 더 안간힘을 쓸 수는 없었던 걸까?
 
[글 황인희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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