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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94] 뜨거운 사막을 알몸으로 걷는 여자
불임클리닉 대기실에서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5-22 06:30:10
 
 
하지만 투쟁할 이유도 없었고 혁명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다만, 하운은 늘 목이 말랐다. 오백 밀리 생수병을 언제나 들고 다녔다. 물을 많이 마셔서 피부가 좋은가 봐, 사람들이 말할 때 웃었지만 갈증은 그녀를 무척 고통스럽게 했다. 흡연자가 줄담배를 피우듯, 담배를 끊으면 금단현상이 일어나듯, 하운은 끝없이 물을 원했다. 물을 마시는 동안에도 목이 말라 죽을 것 같았다. 몸의 모든 세포가 아우성치며 원하는 건 오직 물이었다. 물을 갈망해서 제 몸을 온통 물로 채워 버린 식물처럼 밥 대신 하루 종일 물만 마시는 날도 많았다.
 
뜨겁게 내리쬐는 사막을 알몸으로 끝없이 걷고 있는 것 같았다. 몸엔 늘 열이 나고 목은 타들어 갔다. 체중도 조금씩 빠졌다. 흩뿌려 놓은 사막의 모래가 굴러다니는 것처럼 두 눈은 서걱거리고 따끔거렸다. 가끔은 초점도 맞지 않아서 아무리 눈을 비비고 쳐다보아도 신기루처럼 세상이 아른거렸다. 흰자위는 자주 선인장꽃처럼 새빨갛게 충혈되었다.
 
건강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병원을 찾아가 검사를 받았지만 염려할 만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수분 섭취량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체내 삼투압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며 의사가 주의를 주었다. 정신적 압박에서 비롯될 수 있으니 상담 치료를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정신과 연락처를 건넸다.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만 진료실을 나온 하운은 명함을 휴지통에 던져버렸다.
불임클리닉만은 꾸준히 다녔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하운은 동우에게 전화했다. 동우의 목소리를 기다리며 맞잡은 두 손, 불러온 임산부의 배, 배를 쓰다듬는 남자의 손, 상담실에 함께 들어가는 부부들을 부러운 듯 바라보았다. “병원에 왔어.” 하운이 말하면 .” 하고 동우가 짧게 답했다.
 
맞은편에 앉은 여자가 남편의 귀에 대고 속닥거렸다. 하운의 배처럼 여자의 배도 납작했다. 남자가 여자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하운은 그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음엔 같이 오면 좋겠어라는 말을 삼키고 “점심 먹었어?” 하고 물었다. 다시 하고 대답한 동우는 나 지금 바빠말한 뒤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맞은편 부부가 소리 내어 웃었다. 여자가 남자의 손을 깍지 끼워 잡았다. 그들이 쳐다보는 것 같아서,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라고 비웃는 것 같아서 하운은 쉽게 전화기를 귀에서 떼지 못했다.
 
우리 애가 포르노 잡지와 플라스틱 컵에서 나왔으면 좋겠어? 왜 갑자기 서두르는 거야? 솔직히 말할게. 자연스럽지 않은 방법은 싫어. 아이는 부부가 같이 원해야 하는 거잖아. 왜 너 혼자 조급해졌는지 이해가 안 돼.”
 
배란일에 함께 병원에 가야 하는 스케줄을 벌써 두 번이나 펑크 냈던 동우는 한 번만 더 기회를 가져 보자고 설득하는 하운을 향해 언성을 높였다. 그렇게 화를 내는 건 처음이었다. 의사도 남편과 좀 더 이야길 해 보고 결정하라 했지만 동우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시기에 맞춰 인공수정을 할 수 있도록 하운은 다시 병원과 일정을 맞췄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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