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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대만 라이칭더 총통이 취임 1주년을 맞는다. 민주진보당(민진당) 소속 세 번째 국가원수이자 ‘대만독립파의 적자’라 할 만한 그가 집권하면서 양안(대만·중국) 관계는 새 단계에 진입했다. ‘양안=한집안’ 기조를 끝내기 시작한 것이다. 대만에게 지난 30여년 탈냉전과 미국·중국 밀월기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수준의 경제력과 대의민주주의제를 실현시킨 과정이었다. 미·중 대결 구도 아래 이것의 지속을 위해선 새로운 선택이 절실해졌다.
양안관계는 남북한 관계처럼 미·중 관계의 부분집합이다. 한반도 군사분계선과 함께 대만해협이 양대 패권의 충돌점으로 부상했다. 라이의 집권 첫해에 대해 ‘여소야대 국내정치’와 ‘트럼프2기 미국 정부에 의한 대외적 불확실성의 고충’만 주목하는 등 국내외 주류 매체들 시각엔 중국 측 심기를 의식한 논조가 강하다. ‘중국의 패권 추구’와 ‘탈냉전 종식’ 등 세계사적 격변 속에 사활을 건 대만의 지정학적 판단이라는 측면이 간과돼 있다.
작년 1월 라이는 40.05%를 득표해 친중 성향인 중국국민당(국민당) 허우유이 후보를 누르고 중화민국 제16대 총통에 당선됐다. 전임자 차이잉원의 두 차례 선거(2016년 56.12%·2020년 57.13%) 성적에 크게 못 미쳤고 입법원(의회) 제1당 지위마저 국민당에 내줬으나 4개월 후 취임 메시지가 명쾌했다. “중화민국(대만)과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 서로 예속되지 않을 것”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고 현상을 유지할 것”으로 요약된다. ‘현상 유지’야말로 정치 성향을 초월해 대다수 대만인들의 속내다.
여기서 ‘현상 유지’란 ‘번영된 자유민주국가 유지’를 뜻한다. 중국은 라이 총통의 ‘상호 불예속’ 천명을 ‘독립 주장’으로 몰아 취임 사흘 후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이며 사실상 무력시위를 했다. 관세 감면을 중단해 압박했고 대만의 12개 수교국을 더 줄이려는 외교적 고립 전략도 강해졌다. 라이 총통 역시 대(對)중국 강경파를 안보 책임자로 기용하고 중국 견제에 공감한 미국·유럽연합(EU)·일본 등과 밀착한 자세로 대응했다.
특히 3월 라이 총통이 중국 세력의 대만 군부 및 사회 침투 상황을 선포하며 이들을 ‘역외적대세력’이라고 규정해 내외에 놀라움을 안겼다. 1990년대 이래 발전해 온 양안 기조의 완전 종식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양안교류 통제와 대만 내부 감시 강화가 골자인 ‘대만이 당면한 5대 국가안보·통일전선 위협 및 17개항 대응 전략’(라이17조)은 대중국 노선의 근본적 변화를 상징한다. ‘군사법원 복원’ ‘중국·홍콩·마카오 출신자들 체류기준 강화’ 등 안보 조치도 발표됐다.
중국이 “양안 평화의 파괴자” “위협을 초래하는 자”로 맹비난하자 라이 총통은 스파이활동 증가를 지적하며 받아쳤다. 중국이 “대만의 자유를 이용해” “대만 내부로부터 분열·파괴·전복”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작년 중국스파이 혐의로 기소된 64명 대부분 전현적 군인이며 2021년 대비 3배 늘어난 수치임을 강조하며 경각심을 촉구했다. 민진당이 의회 제1당이던 전임 천수이볜·차이잉원 정부 시절에도 없던 강경한 ‘반중국’ ‘탈중국’ 행보다.
중국은 대규모 ‘대만 포위’ 훈련으로 긴장감을 높였고 대만에선 군·정치권 등 사회 각계각층을 상대로 ‘간첩 색출’이 진행됐다. 결국 대만은 ‘트럼프의 미국’을 살아갈 지정학적 선택 즉 트럼프 진의를 파악한 셈이다. 트럼프 퇴임 후에도 트럼프주의는 최소 한 세대 계속될 것이며 중국봉쇄가 미국의 초당적 원칙이라는 점, 미·중을 대동소이한 패권국으로 바라볼 수 없는 이유를 인식한 것이다. 대만 등 중국 주변국이 미국 51번째 주가 될 가능성은 없지만 미국을 놓치면 중국의 일부나 위성국으로 전락한다.
대만 국내 상황이 순조롭진 않다. 제1당 국민당은 52석, 제2야당 민중당 8석이 캐스팅보트다. 작년 5월 입법원·입법위원(의원)의 권한 확대, 의회의 ‘정부 견제’ 기능을 강화한 의회개혁법(일명 총통견제법) 통과를 계기로 여야가 물리적으로 충돌해 작년 12월까지 난투극과 시위을 벌였다. 민진당은 야권의 정부 예산안 삭감에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야당 의원 파면(주민소환) 운동을 추진했으며, 야권은 올해 들어 내각 총사퇴와 총통 파면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총통 지지율이 하락세인 것 또한 사실이다. 대만 ‘미려도전자보’ 여론조사 추이에 따르면 취임 초기 53%였던 총통 신임도가 지난달 집권 이래 최저치(48.6%)를 보였다. ‘불신임’ 응답이 43.0%로 최고치, ‘집권 만족도’는 지난달 처음 ‘불만족’(47.3%)이 ‘만족’(47.1%) 응답을 웃돌았다. 이런 가운데 대중 강경 드라이브가 반대파들을 ‘친중’으로 몰아가며 트럼프와 보조 맞추기를 부각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야당 의원 파면 운동이 의석수 변동으로 이어질 경우 차기 대선·총선 2028년 1월 전에 여소야대 구도를 뒤집을 수 있다. 6석만 더 확보하면 민진당 단독 과반이다.
한편 2월 미 국무부 홈페이지에서 “대만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 문구가 삭제됐으며, 비슷한 시기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후 공동성명엔 “대만이 적절한 국제기구에 유의미한 참여를 하는 것을 지지한다” 문구가 추가됐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대만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게 미국의 오랜 입장”이라고 답한 바 있다. 같은 달 관련 질문엔 즉답을 피한 트럼프가 3월 TSMC 투자 발표식에선 “(중국의 대만침공은) 재앙적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트럼프 언행은 늘 ‘실질적 이익을 노린 전략적 모호성’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대만방어 의지를 임기 중 다섯 차례나 표명한 전임 민주당의 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방식이 확실히 전혀 다르다. 이번 제네바 미·중 무역협상에서 드러났듯 중국 측 체면치레용 도발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무릎꿇리는 것, 시진핑을 항상 ‘좋은 친구’로 언급하는 게 트럼프 특유의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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