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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116]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6-02 06:25:00

선관위 썩은 건 둘째 치고 대법원 하는 짓 봐라. 판결문 요지는 이거잖아. 증거는 많이 나왔으나 원고가 범인을 특정하지 못했으니 원고 청구를 기각한다는. 이게, 이게 말이냐, 방귀냐. 재판하는 이유가 뭔데! 증거가 나왔으면 선거무효 판결을 내야지. 범인을 특정하는 건 수사기관이 하는 거고. 대법관이 하늘이야? 대법관이 아니라 하면 아닌 거냐고, 세상에 어느 나라 대법관이 뭉개진 투표지가 천 장 넘게 나왔는데 유효표로 인정하냐고. 에이! 나라 꼬라지 하고는…. 남편은 유튜브를 보다가 화가 나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요즘 뉴스를 보다가 분을 못 참고 TV를 꺼 버리는 일이 잦았다. 화날 만하다. 모임에서 고등학교, 대학교 동기들을 만나도 정치에 대한 이견이 드러나면 감정만 상해서 돌아오기 일쑤였다. 이 사회에 상식이 없어졌어, 원칙이 있고 규범이 있는 거잖아. 그걸 깨뜨리는 인간들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한 지붕 아래서 사냐고! 남편의 분노엔 이유가 있었다. 인간관계가 점점 진영 싸움으로 구분되는 현실이었다.

네 편 내 편으로 갈라 내 편이면 무조건 뭘 해도 눈감고 네 편이면 작은 것도 부풀려 문제 삼고. 이게 무슨 민주적인 태도냐고! 3·15 이기붕 부정선거로 이승만이 책임지고 물러났고 내무부 장관이 사형당했다고. 그 당시 그 사건으로 4·19가 발발했잖아. 근데 이게 뭐냐고, 증거가 나왔는데도 유효표로 인정하는 사법부나, 이를 대서특필 안 하는 언론이나! 남편은 “얼어 죽을 민주” 소리치며 베란다로 나갔다. 분이 안 풀렸는지 베란다를 서성거렸다. 엄마들 모임도 그랬다. 주의는 하고 있지만 어떤 이슈든 결국 누굴 지지하는지 누굴 혐오하는지 정치색이 드러났다. 지지와 혐오는 빠르게 관계 단절을 결심하게 했다.

정치는 어느덧 국민의 인간관계에까지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다. 남편이 화를 참지 못하는 대상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국민을 이용하는 악질 정치인이었다. 혹세무민하는 정치인들이 나라를 혼탁하게 하고 질서를 허문다고 분통 터뜨렸다.

“국민 알기를 얼마나 우습게 알면 범죄 경력이 있는 놈이 국회에 진출하지 않나, 대권에 도전하질 않나. 국민 의식 수준이 이 정도인 줄 몰랐어. 그런 놈을 공천하는 당이나, 국회의원으로 뽑는 지역 주민이나!” 남편은 언제부터인가 혼잣말이 늘었다. 승연이 대꾸하거나 말거나 혼자 묻고 대답한다. 남편의 푸념은 계속됐다.

“암튼, 갈수록 나라가 이상해져. 의혹투성이인 놈들이 특권 뒤에 숨어서 활개 치고 돌아다니는데도 조용한 거 보면 희한해, 진짜 저런 놈들을 뽑았단 말야? 누가 돼도 상관없는 거야? 집단 최면에 걸리지 않고서야! 무분별·무지성·무지·무식·무뇌, 이게 무슨 나라냐고! 거, 옷 로비 사건 기억 안 나? 검찰총장 부인 그룹회장 부인, 장관 부인들 연루됐다고 검찰과 언론이 대서특필했던 거. 그 난리 치고 앙드레김이 김봉남이란 것만 밝혀졌지. 생각해 보면 별 대수롭지 않은 사건인데도 당시엔 나라가 무너질 것처럼 난리 쳤다고.”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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