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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법명 톈진 갸초)가 환생에 의한 후계자 제도 고수의 뜻을 분명히 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그는 90세 생일을 나흘 앞둔 2일, 이날부터 망명지인 인도 북부 다람살라 인근 사원에서 사흘간 열리는 고위급 티베트불교 종교회의에 참석해 성명을 통해 이렇게 밝히며 환생자를 인정할 권한은 제도의 전통과 명백 유지를 위해 설립한 ‘가덴포드랑 재단’에만 있다고 천명했다. 한 때 자신이 마지막 달라이 라마가 될 수도 있다고 한 것의 공식 번복이자 중국 정부 원칙과 정면 충돌한 셈이어서 향후 글로벌 정치·종교적 논쟁 중심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아울러 달라이 라마는 “(재단이) 과거 전통에 따라 환생자 탐색과 인정을 위한 절차를 수행해야 한다, 이 문제에 간섭할 권한은 다른 그 누구에게도 없다”고 선언했다. 두 살 때 전생의 징조로 인지돼 1940년 라싸에서 즉위(좌정)한 그는 후계자가 중국 아닌 자유세계에서 환생할 것이며 중국이 지명한 인물을 거부해야 한다고 전부터 말해 왔다. 심지어 여성으로 태어날 가능성도 언급한 바 있다. 여기서 전통이란 예언·유언-신탁(信託) 관찰-해당 아동 찾기-유물 식별 등 직감 테스트-고승단 협의 및 승인-공식 발표-교육·즉위로 이어지는 방식을 말한다.
고령의 달라이 라마 후계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들은 “우리 국가주권에 속한 문제” “미국의 ‘종교 정치화” “중국 내정 개입 의도”라며 “결연히 반대한다”고 반발했다. 청나라 때 생긴 ‘금병제’와 중앙정부 승인 필요성이 이번에 재확인된 상태다. 금병제란 황금항아리에 후보자들 이름을 넣어 추첨하는 방식으로 1792년 청나라 건륭제가 티베트 통제를 위해 도입했다. 다만 실제 적용된 것은 9대 달라이 라마뿐으로, 청나라 힘이 빠지면서 11·12대 때엔 ‘추인’에 그쳤고 13대(1876~1933)부터는 티베트가 자치 운동을 벌이며 금병제를 거부했다.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2일 발언에 대해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달라이와 판첸의 환생 인정은 금병제를 거쳐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종교의 중국화’ 비판을 반박했다. “종교의 중국화란 종교의 제약이 아니다. 모든 종교의 생존과 발전이 국가의 사회 환경 및 문화적 전통과 서로 적응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티베트 불교가 중국에서 탄생했으니 중국의 특징이 있다는 의미” “종교 그 자체가 중국화의 모범”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목은 역사적 사실과 어긋나며 특히 7~9세기 토번왕국으로 번성한 티베트로선 수용 불가능한 해석이다.
티베트는 당나라 수도 장안을 일시 점령(763)할 만큼 위협적이었으나 불교국가화 하면서 중앙집권적 군사 체계가 해체됐다. 11세기 이후 라마(고승) 체제 성립 후 달라이 라마 중심의 승정(僧政)통치 및 승려 지배 사회가 된 것이다. 대승불교와 밀교의 완전한 보존·통합 등 불교사에선 독보적 위상의 ‘티베트 불교’로 우뚝 섰으나 전쟁이나 군대를 ‘악업의 원천’으로 보는 불교적 가르침 아래 수백년에 걸쳐 비무장 공동체가 됐다.
그래서 한반도에 대규모 파병으로 6·25전쟁 전황을 뒤집던 1950년 10월, 티베트에 진주한 소수의 중공군 앞에서조차 무력했다. 달라이 라마도 자서전과 인터뷰에서 “우리 티베트인들은 너무 순한 존재들이었다. (세계사의 흐름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불교적 이상에 따른 비폭력주의와 현실 정치의 괴리를 인정한 표현이기도 하다. 달라이 라마는 평화·비폭력·인권의 상징으로 198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며, 2011년 모든 정치적 권한을 선출된 총리(시쿵)에게 이양한 이래 종교·학술 교류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한편 미국에선 2018년 12월 ‘티베트 상호접근법’(RATA), 2020년 12월엔 ‘티베트 정책 및 지원법’(TPSA)이 발효했다. 미·중 갈등 속에서 티베트를 중대한 정치적 카드로 활용 가능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달라이 라마의 후계자 결정은 전적으로 티베트불교 공동체의 문제이며 중국 정부나 외부 정치 세력의 간섭이 허용돼선 안 된다는 게 서방의 일관된 입장이다. 유럽연합 외교부(EEAS) 역시 중국의 종교 자유 억압 사례에 달라이 라마 후계자 문제를 매번 포함시켰다. 특히 TPSA에선 달라이 라마 후계자 결정에 중국이 개입할 경우 관련자 제재까지 시사했다.
티베트 문제는 미·중 밀월 시대엔 수면 하에 잠복해 있다가 무역 분쟁이 본격화한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첫 임기 시절 국제정치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티베트인들에게 천운이 다가온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하지만, 티베트를 포기한 순간 신장(위구르)·대만·내몽골 등의 분리운동이 거세질 터라 중국 측 방어 태세 또한 완고하다. 티베트의 지정학적 의미가 워낙 지대하기 때문이다. 해발 4000~5000m의 고도는 그 자체로 군사방어선이다.
또 티베트는 중국을 먹여살려 온 주요 강들의 수원지이며 희토류 등 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도로·철도·공항 등 군사·민수 겸용 인프라가 최근 대대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정부가 타민족 이주를 꾸준히 추진해 현지 인구 약 365만 명 중 12% 이상이 한족이며 티베트인은 약 313만6000명(2020년 기준), 중국에 편입된 이래 탈출한 티베트인까지 통틀어 770만 명을 헤아린다. 파룬공과 함께 해외 반중운동의 주역들인 티베트 디아스포라(교민)가 중국과 미국 등 서방의 대결 국면에서 어떤 지렛대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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