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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27일이면 정전협정 72주년이 된다. 그러니 마침 국방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얘기가 나온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안규백 후보자가 “현 정부 임기 중 전작권 전환을 목표로 한다”고 하자 대통령실에서 “후보자 개인 의견일 뿐”이라며 재빨리 선을 그었다.
후보자로선 돌발 발언이 아닌, 소속 진영의 ‘뼈대 있는’ 관점에 기반한 대답이었으나 중국이 사실상 미국의 ‘주적’인 시대, 주한 미군의 역할까지 재조정되는 마당에 분위기 파악을 못 한 셈이긴 하다. 현 국제정세 속에선 ‘전작권 전환’이라 하면 ‘미국과의 거리두기’로 읽힌다.
미 의회가 내년도 국방수권법에서 주한 미군 및 전작권의 변화를 금한 것 또한 이것들이 갖는 대(對)중국 억제력의 의미가 증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작권을 ‘자존심’ ‘주권 문제’로 몰아간 세력의 가스라이팅에서 깨어나기 위해 일단 유튜브 ‘이춘근의 국제정치 374회’(전작권 논점 정리)를 강력 추천하고 싶다.
1978년 창설돼 전작권이 부여된 한미연합군사령부(CFC)에서 부사령관은 한국군 대장이며 참모진 절반이 한국군이다. 한국군이 지휘 계통에 본격 개입할 수 있게 된 지 오래인데 ‘미군 예속’ 운운하는 것은 넌센스다.
1950년 7월14일 이승만 건국대통령이 전시작전지휘권(인사권 포함)을 유엔군사령관으로 한반도에 부임한 더글러스 맥아더 미 극동군사령관에게 위임했다. 전쟁 발발 약 3주 시점에서 이는 불가피하고도 합리적 선택이었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로 보는 입장에선 미군 주도 전작권에 비판적이다. 미국을 분단의 원흉으로 여기는 시각이 근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역사관의 문제이므로 한반도 내 자유공화국과 인민공화국 어느 쪽의 정통성을 인정하는가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1994년 김영삼정부 때 평시작전통제권(평작권) 개념이 만들어져 한국군에 귀속됐다. 전작권의 경우 휴전 이후 공식화되었으므로 이후 “전시가 발생하지 않아 행사한 바 없으니 반환할 것도 없다”는 미국 측 주장을 인정해 전작권의 변화를 ‘전환’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전작권 전환 논의가 노무현정부 때 본격화된 것은 정권 지지층이 당시 386으로 불리던 운동권 출신 중심이었던 점과 무관치 않다. 2006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2012년 4월까지 전작권을 전환하기로 했으나 이명박정부 때 2015년 12월로 미뤄졌으며, 박근혜정부 들어 “조건이 충족될 때”라는 단서가 달려 무기한 연기된 것이나 다름 없어졌다. 2017년 노무현정부 2기라 할 만한 문재인정부 시절엔 2022년 전환 목표를 언급했지만 미국이 거부했다.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이미 중국을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작권 전환 시 제한적 핵무장 필요성’에 관련된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해 안 후보자가 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없이 핵무장은 힘들다고 답한 것은 전작권 전환이 한미동맹 약화로 직결된다는 본질을 희석시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주한 미군의 역할마저 중국의 태평양 진출 견제 쪽으로 재조정된 가운데 전작권을 독자 행사하겠다니, “우리는 중국과 함께하겠다”고 외치는 꼴이다.
안 후보자가 ‘주적이 북한’이라며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해선 안 된다”고 말한 대목에서 생각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로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회고록에 나오는 이야기다.
폼페이오 국장이 중국에서 그러는데 주한 미군이 철수하면 북한에서 기뻐할 거라고 하더라 하자 김정은은 책상을 내리치며 웃더니 “중국은 거짓말장이”라고 한마디로 일축했다. 이어서 “한반도를 신장·티베트처럼 만드는 게 그들의 꿈”이라며 “주한 미군이 나의 안전장치이기도 하다”고 대꾸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트럼프로선 중국 견제에 북한이 더 유용하리라는 판단을 하지 못할 것도 없다. ‘중국의 붉은 별’ 등으로 접한 공산혁명의 낭만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한 남한 지식인들이 행세할수록 남북한의 운명은 뒤바뀔 가능성이 높아진다.
유엔군사령부(유엔사)가 한반도 정전 체제 관리자라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해 주둔 중인 주한 미군의 ‘전장’(戰場)은 한반도를 넘어 태평양 지역 전체다. 조약에 준한다면, 미군과 함께할 한국군의 활동 영역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외국 군대의 존재가 남침·북침을 다 막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한반도 문제에서 하루빨리 발을 빼고자 했던 미국이 맥아더 장군의 중국 본토 공격 주장, 북녘 동포 해방을 외치는 이승만의 북진통일 고집에 부딪혀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 맥아더 좌천과 ‘(이승만 축출) 에버 레디’ 작전이었다. 후자는 구상에 그친 덕분에 미국이 오늘날 ‘불침(不沈)의 항공모함’을 동맹국으로 가지게 됐다.
1953년 6월18일 새벽 2700여 명의 반공포로를 전격 석방한 것은 포로 교환이 이뤄져야만 전쟁이 수습된 것으로 여기는 강대국들을 뼛속까지 놀래킨 사건이었다. 이승만의 이 승부수가 최강대국과 최빈 약소국 간 ‘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 냈다.
1951년 7월10일부터 2년 이상 끈 정전협상 내내 이승만이 직접 나서지 않은 채 막후에서 미군 사령관을 움직인 것은 ‘분단 상태의 휴전 결사반대’ 명분 세우기이기도 했다. 자연히 서명 당사자가 아니기에 한국은 ‘종전 선언’을 주창할 법적 자격이 없다. 이승만은 유엔의 깃발 아래 구성된 유일무이의 유엔사 해체와 미군 철수로 이어질 ‘종전 선언’을 근본 봉쇄해 둔 셈이다. 따라서 한미동맹을 흔들 나머지 비책은 전시작전권 전환 요구뿐이며 그 끝은 ‘중국 품에 안기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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