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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식의 ‘대고구리’…반도사관 정착시킨 무녕왕릉

반도사관 정착시킨 ‘무령왕릉’을 향한 의혹

지석에 새겨진 백제사마왕 문구…삼국사기 기록과 달라 의문 증폭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6-03-16 18:37:06

 ▲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스카이데일리
1971년 7월 초 충남 공주에서 백제 25대 무령왕의 무덤이 발견되자 당시 온 나라가 흥분에 휩싸여 떠들썩했다. 왕릉 발굴은 17시간 만에 끝나버린 졸속 발굴의 극치였지만, 당시기록으로만 존재했던 삼국시대 왕릉 중에서 유일하게 피장자의 신원이 밝혀졌다. 출토된 유물이 모두 108종 2906점에 이 중 국보급 유물이 12점이나 되는 엄청난 발굴이었다.
 
연도 입구에는 동발(銅鉢)과 청자육이호(靑磁六耳壺), 왕과 왕비의 지석(誌石) 2매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으며 그 위에 오수전(五銖錢) 한 꾸러미 얹혀 있었다. 지석에는 피장자의 신분을 알 수 있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는데, 주인공은 백제 사마왕으로 62세 되던 계묘년(523년)에 붕어해 을사년(525년)에 모셔졌으며, 병오년(526년)에 돌아가신 왕대비는 일단 서쪽 땅에 모셔졌다가 기유년(529년)에 개장해 묘를 조성했다고 돼있었다.
 
지석 뒤에는 돌로 만든 짐승(石獸)이 남쪽을 향해 서 있었으며, 묘실의 관을 올려놓은 대위에는 왕과 왕비의 관을 만들었던 나무 조각이 가득 놓여있었다. 왕의 관은 동쪽에 왕비의 관은 서쪽에 놓여 있었는데, 관의 재질은 수령 300년 이상 되는 금송(金松)으로 만들어졌다. 금송은 매우 단단하고 습기에 강해 최고의 관자재로 여겨져 지배계층만의 불단이나 무덤의 꽃으로 사용되는 재질로 일본 큐슈지방이 주산지이고 일본인에게 신성한 나무로 여겨진다고 한다.
 
▲ 발굴 당시 연도 입구를 재현한 모습. 청자와 동발이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 [사진=필자제공]

목관의 판재 밑에서는 왕과 왕비가 착용했던 장신구와 부장유물들이 출토됐다. 금제관식, 금제이식, 금·은제 허리띠, 금·동장신발, 은제 팔찌 등의 장신구와 왕의 허리에서는 왕권을 상징하는 ‘용봉문 환두대도(龍鳳文環頭大刀)’가 출토됐다. 그 밖에 왕과 왕비의 베개 및 발받침대가 목관 안에 놓여 있었으며, 그 외 청동거울과 은제 탁잔 등이 출토됐다.
 
반도사관을 정착시킨 무령왕릉
 
그런데 문제는 무령왕릉으로 인해 백제가 한반도 서남부인 충청·전라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일제식민사학계의 반도사관이 확실하게 정착될 수 있었으며, 백제 도읍인 웅진(熊津)이 충남 공주였다고 굳혀지게 됐다. 게다가 대륙백제를 주장하는 재야사학자들의 이론을 무력화시키는 결정적인 유물적 증거로 활용된다.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이 대륙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재야사학자들 중 일부는 무덤 내부에 있던 유물이 많이 엉클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무덤이 발굴되기 전 누군가가 미리 내부에 침입했음이 분명하다고 하면서 그 때 위작된 가짜 지석을 만들어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등 많은 의혹들이 제기됐다. 하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결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이론대결로 진척되지 못하고 결국 의혹 제기로만 그치고 말았다.
 
▲ 발굴 당시 내부를 재현한 모습에 유물이 흩어져있어 처녀분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진=필자제공]

참고로 민족사학자들의 두 가지 의혹제기를 간략하게 인용한다.
 
1) ‘삼국사기 초기기록’의 저자 송종성 선생은 “(중략) 이런 위사를 뒷받침하기 위해 물증까지 위작해 넣어 놓은 것이 무령왕릉 지석인 것이다. 사마(斯麻)라는 이름은 8세기 초에 ‘일본서기’ 저자들이 지은 이름인데, 어찌하여 6세기 초의 무령왕릉에서 그것이 새겨진 지석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라고 주장했다.
 
2) ‘한단고기’ 주해서를 쓴 임승국 교수는 국회국사청문회 속기록 내용 중에 있는 아래 ‘무령왕릉의 묘제는 백제의 대륙진출을 입증한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철저한 삼국의 대륙진출론자답게 백제와 양나라의 묘제가 똑같다는 것은 아예 백제가 양나라에 진출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했으며, 무령왕릉에 대한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으나 역시 근거 부족으로 설득력을 잃었다.
 
“무령왕릉에 관한 말씀도 했습니다만, 중국 땅에 가보면 무령왕릉과 꼭 같은 양나라 묘제가 많이 있는데 무령왕릉의 묘제는 이상하게도 그 묘제와 꼭 같습니다. 그렇다면 양나라와 백제는 어떤 관계가 있었던 것이 거의 틀림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과거 같으면 흔히 이렇게들 생각했어요. 즉 ‘묘제가 같으니 아마도 양나라 쪽에서 백제를 쳐들어 왔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러나 반대로 ‘백제가 양나라에 진출했을 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중략)”
 
그 외 재야사학계가 주장했던 ‘공주에서 발굴된 사마왕(斯麻王)에 대한 지석(誌石) 연구’란 제목으로 무녕왕릉에 대해 의혹 제기한 것은 다음과 같다.
 
1. 백제왕릉으로 보기에는 크기가 작다.
 
발굴무덤이 과연 강성했던 백제 무령왕의 부부합장능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크기가 너무 작다는 것이다. 1976년 평남 덕흥리에서 발견된 고구려 유주자사 진의 무덤에 비해서도 그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덕흥리 고분은 전실과 내실 2개의 석실로 구성돼있고 내부공간이 48.3㎥인데 반해, 무령왕릉은 부부합장릉임에도 불구하고 단칸인데다가 내부공간이 33.5㎥로 덕흥리고분의 70%에 불과하다.
 
2. 왕릉 옆에 다른 무덤을 쓸 수 있나?
 
보통의 경우 왕릉 주위에 다른 무덤을 쓰려면 반드시 일정거리 이상 떨어뜨리는 게 상식인데 왕릉에서 약 20m 떨어진 곳에 두개의 무덤이 나란히 위치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특이한 현상이라 하겠다. 실제로 거의 붙어있는 것과 다름없는데, 진짜 백제왕의 능이라면 이게 가능이나 한 일인가.
 
▲ 조잡한 글씨체의 무령왕릉 지석에 새겨진 斯麻王의 나라는 백제인지 의문스럽다. [사진=필자제공]

3. 조잡한 지석의 글씨체
 
무덤 안에서 발견된 지석에 새겨져 있는 글씨체가 마치 어린 학생이 졸필로 새긴 조잡한 글씨체이다. 대왕의 지석이란 당연히 당대 국가 최고명필이 쓰는 것이 상식 중의 상식 아니겠는가? 그런데 지석의 글씨체는 성의를 다해 정교하게 조각했다기 보다 대충 날카로운 것으로 긁어서 글자를 새긴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를 백제왕의 지석으로 보기에는 미흡하다는 의견이다.
 
4. 휘인 사마의 마(麻)자가 ‘삼국사기’와 다르다
 
지석에는 백제사마왕(百濟斯麻王)이라는 문구가 있다. 사마가 존호였던 왕이 역사상 없고, 휘(이름)가 사마인 왕도 기록상 무녕왕 뿐이기 때문에 피장자는 당연히 무녕왕일 것이다. 그런데 사마(斯麻)의 麻자가 ‘삼국사기’에 기록된 사마(斯摩)의 摩자와는 다르고 ‘일본서기’와 같다는 사실이다. 일개 귀족의 무덤에도 오자가 없어야 하거늘, 하물며 국왕의 이름에 오자를 새겼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5. 斯麻가 시호인지 또는 휘인지 의문이다
 
지석에 새겨진 사마왕(斯麻王)은 시호가 아닌 휘인 것으로 보이나, 광개토태왕의 비문에서도 보듯이 대체로 왕릉에는 ‘휘’를 기록하지 않고 ‘시호’를 기록해 능을 조성했다. ‘양서’의 기록에 무녕왕의 휘는 여융(餘隆)이라고만 돼있지 사마라는 휘는 아예 언급이 없다. 따라서 지석에 있는 사마왕은 휘가 아닌 시호로 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는 의문이다.
 
즉 1971년 공주에서 발굴된 무덤은 백제 무녕왕의 무덤이 아니라 아래 ‘수서’에서 왜국의 위치에 대해 설명하면서 백제에서 왜국으로 가는 중에 있다는 사마국 왕의 무덤이 아니겠느냐는 강한 의혹이 제기되곤 한다.
“倭國度百濟行至竹島 南望聃羅國經都斯麻國 逈在大海中 又東至一支國 又至竹斯國 又東至秦王國 其人同於華夏以為夷洲 疑不能明也 又經十餘國 逹於海岸 自竹斯國以東皆附庸於倭”
 
6. 아들이 묘효·존호 대신 이름자를 사용할 수 있나?
 
무령왕의 장례는 분명 아들 성왕이 치렀을 것이다. 그런데 자식이 지석에 묘호·존호를 정해 올리지 않고 아버지의 이름을 함부로 썼다는 것은 참으로 해괴한 일이다. 부왕이 죽으면 묘호·존호를 정해 올리는 것이 자식의 당연한 도리다. 일개 서민도 부친의 이름자를 함부로 부르지 않거늘, 지석에 부왕의 이름자를 함부로 썼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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