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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경 인문책방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공적’인 것
동물적 생명활동과 인공적 작업의 세계를 넘어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9-04-06 23:47:28
▲ 문화평론가 고태경
 오늘날의 시대를 지배하는 화두는 단연 노동이다. 청년 실업의 문제, 고령화시대 노년 빈곤의 문제, 나아가 성별 임금격차(‘유리천장’), 최저임금, 탄력근로제 등의 화두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근본적으로는 노동의 문제에 기반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노동에 대한 정의는 시대와 맥락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노동을 다른 인간활동으로부터 분리시켜 성격 규정할 때 초점이 되는 것은 생명유지를 위한 활동이라는 점이다.
 
노동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생물학적 존재를 유지케 하기 위한 활동을 통칭한다. 예컨대, 밭을 가는 것, 회사에서 임금을 받기 위해 일하는 것, 조리나 청소를 비롯한 여타의 노동 등 인간의 생명과 일상의 유지를 가능케 하는 활동들 일체를 우리는 노동이라 부른다. 20세기의 위대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생물학적 필요에 구속된 활동을 지칭한다.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는 노동(labor)으로, 이는 앞서 말한 바처럼 생물학적 필요에 구속된 활동을 지칭한다. 노동은 생존의 자연적 속성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인간적 변별성보다는 동물적 특성을 반영한다. 둘째는 작위(work, 작업), 집과 도로의 건축, 문화적 유산의 창조 등 생물학적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이 문명의 구축을 통해 종의 문명적 불멸성을 연장시키는 활동을 말한다. 문명이란 자연의 지배를 위해 자연 위에 인간이 구축해 놓은 작위의 세계다.
 
끝으로 행위(action)가 존재한다. 아렌트에 따르면, 행위는 사물(작업)이나 생물학적 필요(노동)의 매개 없이 오직 인간들 간의 관계에서 직접 나타나는 유일한 활동이다. 예컨대, 사람들은 토론을 통해 상대를 설득하고, 말과 문학적 표현들을 통해 누군가의 가치관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민들은 폴리스라는 광장에서 도시공동체의 운명과 훌륭한 삶의 가치에 대해 토론했다. 아렌트에 따르면, 우리가 공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행위다.
 
노동으로 만들어진 사회의 공적 영역
 
근대 자본주의와 함께 우리는 노동으로 매개된 시장사회의 등장을 목도하게 된다. 쉽게 생각해 보자. 우리는 직장을 갖길 원하며, 9시 출근 6시 퇴근의 출퇴근 리듬에 맞추어 일상을 만들어 나간다. 우리가 사는 상품들은 누군가의 노동을 통해 생산된 것이며, 오늘날의 시민사회와 자본주의 시장 역시 익명의 수천만 인구들의 노동이 연결되며 형성된 것이다.
 
이때 시장의 인간들 간 관계를 연결하는 핵심 중 하나는 이해관계경쟁이며,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면서도 생존의 문제에 있어서는 철저히 상호 고립되는 모습을 취한다. 근대의 시민사회의 역설은 수많은 익명의 관계들이 이처럼 서로 연결되면서도 철저히 개인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렌트는 자본주의 시장으로 대표되는 근대의 시장 영역을 사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이윤과 이해관계는 그 관계망의 범위와 무관하게 근본적으로 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적인 것은 어떤 것일까. 아렌트는 공적인 것을 크게 두 가지로 규정했다.
 
첫째, 공개성이라는 것이다. 모두에게 들리고, 모두에게 보이는 것. 좀더 정확히 말하면 나만의 세계가 아니라 타인이 함께 들어와 공존하는 세계가 공적 세계다. 이해관계의 장은 기본적으로 철저히 자신만의 세계만을 탐닉하는 사적인 영역일 것이다. 사생활화라고 번역할 수 있는 영어 ‘privation’의 다른 의미는 박탈인데, 이는 곧 타자의 박탈을 뜻한다.
 
둘째, 공적 영역은 이 세계를 구성하는 우리 모두에게 속하는 공간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존재하는 공간이 같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작위의 활동에 주목할 때 우리는 우리가 동일한 인간적 건축공간에 존재하는가에 주목하게 된다. 예컨대, 같은 국민국가에 속하는가, 같은 대학을 나왔는가 등등은 문명의 발달과 함께 우리를 따라붙는 집요한 질문들이다.
 
반대로, 행위의 세계에서 볼 때, 우리는 같은 공간에 거주해서가 아니라 서로가 주의를 기울이는 대상이 같을 때, 상이한 사고를 갖더라도 같은 것을 보고 서로가 같은 대상에 대해 논할 수 있을 때 공적인 장에 존재한다고 간주할 수 있다. 행위의 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발화, 즉 말하는 행위다. 타인을 설득하고, 타인과 교감하며 타인과 더불어 혼자서는 이룰 수 없던 것들을 창조해는 것이야 말로 공적인 것이며, 인간에 고유한 행위의 능력이다.
 
인간을 간혹 합리적 동물이라고 부르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인 그리스어 준 로곤 에콘’(zoon logon ekhon)의 잘못된 해석으로 파생된 것이다. 이 용어는 말할 줄 아는 생명체를 의미하는데, 이는 곧 인간을 말한다. 아렌트에 따르면, 공적인 장은 여러 다양한 생각을 갖는 이들이 어떠한 폭력의 매개도, 어떠한 생물학적 구속도 없이 토론하는 장을 말한다. 공적인 것에 반대되는 것이 사적인 것이라면, 행위에 반대되는 것은 바로 폭력이다. 폭력은 모든 말의 가능성을 없애는 것이며, 오직 폭력만이 침묵을 양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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