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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맛있는 동네산책’

새롭게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노포 식당

원조 인정 낙원동 ‘옛날집 낙원아구찜’‧삼각지 ‘원대구탕’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3-22 13:58:30

▲ 유성호 맛 칼럼니스트
 “서울미래유산을 아시나요?”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중에서 미래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모든 것을 말한다. 문화재로 등재돼 있지 않은 것 중에서 소유주의 동의를 얻어 지정하는 것으로 조례를 통해 지정‧보존‧활용 방안이 명시돼 있다.  
 
서울시는 미래유산 정의에 대해 ‘서울 사람들이 근현대를 살아오면서 함께 만들어온 공통의 기억 또는 감성으로 미래세대에게 전할 100년 후의 보물’이라고 정하고 있다. 근현대라는 시간 공간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공간, 이념 대립으로 인한 전쟁과 분단, 산업화와 민주화, 세계화를 기치로 발전하고 있는 현재 등 다양화 시대를 아우른다.
 
서울시는 2004년 ‘근대문화유산 목록화 및 보존활용방안 연구’를 통해 미래유산 사업의 돛을 올렸다. 당시 서울시 근대문화유산 710건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홍난파, 이상 등 근대인물과 관련된 문화유산 상당수가 사라지거나 훼손된 것을 확인했다.
 
문인 박목월, 현진건의 옛집과 생가가 멸실됐고 자연 재해에 의해 김수영 가옥이 부서졌다. 서울시는 당시 조사를 통해 근대문화유산 중 24건을 사적문화재, 18건을 시도지정문화재, 14건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아울러 미래세대와 공유하고 미래의 창조적 자산이 될 근현대 문화유산이 잊혀지거나 사라지고 있는 것에 대한 보존 필요성을 느끼고 2012년 6월 ‘근현대 유산의 미래유산화 기본구상’을 만들게 됐다.
 
역사적 인물의 생가나 묘지, 근대기 외국인 유적, 근대화 경제 성장 과정의 구로공단·창신동 봉제공장이나 달동네의 시민 생활상 등 격동하는 근·현대사의 무대였던 서울의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현장, 인물의 발자취나 생활상 등을 체계적으로 발굴·보존·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미래유산은 문화재와는 달리 상향식 발굴
 
▲ 서울미래유산 로고 [사진=필자제공]
 
미래유산은 외형적 특성에 따라 문화적 인공물, 문화적 행위·이야기, 배경으로 구분한다.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지정 혹은 등록된 문화재가 아닌 것 중에서 시민들의 공통된 기억과 감성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을 대상으로 한다.
 
지정 기준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또는 도시·건축의 역사에 있어 중요한 인물이나 사건 등을 이해하는데 현저하게 도움이 되는 것 △특색 있는 장소 또는 경관으로서 서울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 △서울을 소재 또는 배경으로 하는 작품 또는 서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기념물 △서울의 생활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 현저하게 도움이 되는 것 등이다.
 
문화재보호법 상 문화재는 전문가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역사적·예술적·학술적·경관적으로 보존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을 선별하는 과정을 통해 지정·보존·활용된다. 이와는 달리 미래유산은 시민 스스로가 그들이 공유하고자 하는 기억이나 감성이 담긴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발굴하는 시민주도형 제도다.
 
서울시는 “서울미래유산 보전 사업은 문화유산의 획일적 보전을 위한 규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한 개별적 특성을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한 보전 방식을 제시한다”며 “장기적 안목에서 미래유산을 보전하기 위한 과정을 시민사회의 참여와 함께 고민해 최적의 미래유산 보전 방식을 도출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미래유산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선정하기 위해 주제별 특성에 따라 5개 분과로 나뉜다. 정치역사분과는 근현대 사회의 변천과 기록에 관한 유산을, 산업노동분과는 재화나 서비스를 창출하는 각종 생산 활동에 관한 유산을 대상으로 한다.
 
시민생활분과는 시민들이 생계나 살림을 꾸려가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유산, 도시관리분과는 도시의 성장과정과 기록에 관한 유산이나 건축·토목 관련 유산을 말한다. 문화예술분과는 사회로부터 얻어져서 공유되고 전달되는 행동양식이나 생활양식에 관한 유산과 아름다움을 표현한 인간의 활동 및 작품에 관한 유산을 아우른다.
 
정치역사분과는 세부 선정 기준에 따르면 당시 흔적이 모두 사라지고 터만 남아 있는 경우 미래유산 선정보다는 표지석, 지도 표시 정도로 기념한다. 동상, 탑, 기념물의 경우 인물에 대한 평가보다는 예술적 가치만을 고려한다. 분묘의 경우 가옥에 비해 보존 중요도가 낮고 인물 평가에 따른 논쟁을 우려해 미래유산 선정에서 제외한다.
 
산업노동분과는 개별 건조물보다는 산업 활동 간 상호 유기적 관계를 갖는 단지 전체를 대상으로 선정한다. 도시산업사에서 상징성이 높은 건물은 개별 선정이 가능하다. 공산품의 경우 최초 제품이라는 상징성이 있어야 하고 동상·탑·기념물인 경우 예술적 가치만을 고려 대상이다. 서울의 산업화와 노동현실을 다룬 문학작품도 지정 대상이다.
 
시민생활분과 세부선정기준에 따르면 사업자등록증 상 개업 연도가 1970년 이전인 소매업종 중 최초 또는 대표성이 있는 것, 가업전승, 장소의 연속성 유지, 독특한 이야깃거리, 변경된 적 없는 상호 등 시민들이 공유할 가치를 한 가지 이상 갖고 있어야 한다.
 
집합주택일 경우엔 지어진 지 최소한 40년 이상 되면서 최초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거나 독특한 주거 특성을 담고 있어야 한다. 특화거리는 형성된 지 30년 이상 경과한 곳 중 독특한 지역 경관과 생활사적 가치가 있으면 미래유산으로 지정할 수 있다.
 
도시관리분과는 지어진 지 40년 이상 된 건조물로서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중 특히 근대 건축 특성이 잘 나타나 있거나 훼손·멸실 가능성이 높은 건물 위주로 선정한다. 서울의 도시 발전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건조물이나 흔적도 미래유산으로 지정할 수 있다. 이름난 건축가의 건축물 중에서는 시대별 대표작이나 인지도가 높은 작품이 대상이다.
 
문화예술분과는 서울 문화예술사에 한 획을 긋는 주요 인물의 가옥이나 작업공간을 미래유산으로 선정할 수 있다. 주요 인물이라 함은 생전에 서울에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사후 20년이 지났거나 1930년대 이전에 출생한 사람이어야 한다. 또 작품 제작에 관련된 구체적 장소들이 지속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상징성이 높은 작품도 선정 대상이다. 음악, 문예, 연극, 영화, 팬터마임, 무용 등은 무형의 예술적 가치를 따져서 정한다. 회화, 조각, 공예품은 순수 창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장소나 건조물의 경우 40년 이상 역사를 지녀야 한다.
 
이런 선정 조건 아래 올해는 51건이 미래유산보존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소유자가 동의한 16건이 최종 선정됐다. 올해는 특히 화랑 분야를 특화해서 통인화랑·예화랑 등 미술문화의 대중화에 기여해온 화랑이 집중적으로 발굴됐다.
 
1970년대 지하철 개통 당시의 서울 모습을 담은 하근찬의 소설 ‘전차구경’을 비롯 근현대 풍경을 담은 나도향의 ‘어머니’, 최서해의 ‘전아사’ 등도 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470개의 미래유산을 선정했다.
 
시민들이 즐겨 찾는 음식점 두 곳도 미래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종로구 낙원동 아귀찜 골목 일대와 용산구 삼각지 대구탕 골목에서 각각 가장 오래된 점포인 ‘옛날집 낙원아구찜’과 ‘원대구탕’이 선정됐다.
 
원조 논란 잠재운 서울 아귀찜 첫 집
 
▲ 1977년 문을 연 아귀찜 첫 집인 ‘옛날집 낙원아구찜’. 창업주 전낙봉 씨(왼쪽)와 부인 윤청자 씨가 현업을 지키면서 대물림을 완성하고 있다. [사진=필자제공]
 
옛날집 낙원아구찜은 1977년 개업해 2대째 가업을 이어 운영 중이다. 종로3가 낙원상가(아파트) 일대 아귀찜 거리에서 첫 번째로 문을 연 원조가게다. 42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키면서 일대를 아귀찜 명소 골목으로 견인했다. 이집은 원조를 앞세우지 않고 ‘처음집’이라고 했다. 아마도 이 동네서 아귀 요리를 처음 시작했다는 뜻일 것이다. 미래유산 지정으로 이 동네 원조 경쟁은 일단락 됐다고 보면 된다.
 
낡은 타일외벽 건물 1층 절반과 2, 3층을 모두 점포로 쓴다. 아귀찜 나오기 전에 맛본 깍두기가 시원하니 일품이다. 아귀찜 맛은 점포별로 큰 편차는 없다. 아귀살을 얼마나 충실하게 쓰느냐가 관건이다. 그래도 음식은 손맛이다. 오랫동안 사랑 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창업주인 전낙봉 씨(92세)는 언제나 점포 앞에서 손님을 맞았다. 부인인 윤청자 씨는 지금도 여전히 주방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맛은 기억’이란 말이 있다. 창업 때와 지금의 맛이 크게 달라질 이유가 없는 곳이라 단골이 꾸준한 집이다.
 
2018년 9월에 다녀 온 기록이 있다. 전 옹이 90세 때다. 동네 사람에 따르면 병치레 후 기력을 어느 정도 회복하시고 다시 문전에 섰다고 한다. 2층에 자리 있다며 손짓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아귀찜 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원조’집으로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미래유산으로 최종 선정됐다. 
 
삼각지 대구탕 골목 원조 인정
 
1979년 개업해 2대쩨 가업을 잇는 원대구탕집. [사진=필자제공]
 
삼각지란 이름이 훨씬 친숙한 용산구 한강대로 골목길에 있는 ‘원대구탕’집은 1979년 개업해 역시 2대째 가업을 이어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삼각지 대구탕 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곳으로 미래유산 지정으로 다시금 원조를 인정받았다.  
 
원대구탕에 관한 페이스북 친구들의 의견이 다양하다. 그 만큼 많이들 다녔다는 반증이다. 백곰막걸리 이승훈 대표는 “소싯적부터 가던 곳인데 이번엔(2017년 11월) 며칠 전 대가리탕이라는 신메뉴가 런칭 되었다고 해서 급 방문, 쓰린 속을 대구대가리의 칼칼하고 시원한 국물로 보듬어 줬다”면서 “갓지어 퍼 담은 집밥 같은 공기밥은 참 오랜만에 먹어 본다”고 소회를 적었다. 대중음식 애호가로 유명한 한 식객은 “평양집과 원대구탕 그리고 명화원은 삼각지의 마의 삼각지대”라며 “이곳에서 술 먹은 날은 제대로 걸어간 적이 없다”고 회상했다.
 
좋은 의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대문에서 가정의학과 의원을 하는 한 원장은 “오랜 만에 다시 찾은 맛집이 옛 같지 않을 때는 변심한 애인과 마주 앉아 식어버린 커피를 홀짝이며 어색함에 꼼지락 거리는 불편한 시간 같다”고 표현했다. 식당 메뉴는 고객의 100%를 만족시킬 수 없다. 입맛이 까다롭고 정확한 식객을 만나면 지적을 감수해야 한다. 그들은 이미 보편적 입맛의 기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옛날집 낙원아귀찜과 원대구탕의 공통점은 40년 이상 된 노포에다가 가업을 전승했다는 점이다. 식당이 속한 시민생활분과 세부선정기준은 개업 연도가 1970년 이전이어야 하지만 장소의 연속성과 가업전승 등 두 가지 공유가치가 있기 때문에 미래유산으로 선정될 수 있었다.
 
구절판‧불고기 등 서울 음식도 선정
 
▲ 구절판과 불고기, 조선요리법. [사진=필자제공]
 
이와 함께 구절판과 불고기(너비아니) 등 대표적인 서울음식인 두 종류와 조리서인 조선요리법이 미래유산이 됐다. 구절판은 9개의 칸으로 나뉘어져 있는 그릇에 채소·고기류 등 여덟 가지를 담고 가운데 담은 밀전병에 싸먹는 음식으로 조선요리법 (1939년)에도 소개되어 있고 서울의 한정식 요리점에서 선보이며 서울음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구절판은 음양오행이라는 동양 철학을 담은 음식으로써 영양과 맛의 측면에서 적절한 조화를 보여주면서 단기간에 서울 전통음식으로 자리 잡은 음식이란 점에서 보존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불고기는 조선시대 반가 조리서에 나오며 서울 반가에서 많이 해먹던 고기구이 음식으로 이후 불고기로 진화해 서울음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조선요리법은 1939년에 발간된 서울 반가음식을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서술한 조리서다. 당시 대중들에게 큰 호평을 받은 책으로 전해진다. 요즘말로 하면 베스트셀러였던 셈이다. 책은 각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와 분량을 세밀히 기술하고 있다. 제법을 단계별로 나누어 설명해 근대 조리서의 성격을 잘 보여 주는 한편 조선 말기 양반가 음식, 궁중음식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다. 특히 서울음식의 원형을 볼 수 있는 장점과 서울음식 조리법의 보고라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저자 조자호는 서울 반가 후손으로 순종비인 순정왕후 윤 씨와 이종사촌 자매간이다. 경성 가정여숙(현 중앙여고) 교사로 전통음식을 가르쳤다. 신문에 조선요리 및 시절음식 등을 연재했다. 1953년에는 국내 최초의 전통병과 전문점인 ‘호원당’을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자는 서문에서 “외국 문물 유입으로 변질되고 사라지는 우리 음식을 안타깝게 여기고 과거 집집마다 대물림처럼 전승되던 맛과 조리비법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이 책을 지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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