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수장의 한 박자 늦는 뒷북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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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옥 논설실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0-04-03 00:02:37

세계적으로 확산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코로나·코로나19)에 대응하는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행보가 연일 구설에 오르고 있다. 인류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국제기구의 수장에게 거는 기대에서 벗어나는 그의 언행 때문이다.

유엔 전문기구인 WHO에는 현재 194개 국가가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WHO는 그 목적이 “모든 사람들이 가능한 최상의 건강수준에 도달하도록 하는 데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기구의 직무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국제적인 보건사업에 대하여 지휘하고 조정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회원국 간의 기술 원조를 장려하는 일이다.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이 WHO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자격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WHO의 첫 번째 책무와 관련된다. 우한코로나 사태 발생초기부터 한 박자씩 늦은 그의 대응 태도는 ‘국제적인 보건사업을 지휘하고 조정’해야 하는 WHO의 직무수행 방식과 거리가 멀다. 현실은 바이러스가 빠르게 기하급수적으로 확산해가고 있는데 그의 느긋한 대응은 한가롭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WHO는 우한코로나가 이미 세계 110여개국으로 확산된 시점인 지난달 11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당시 세계 우한코로나 감염자는 12만명, 사망자는 4300명을 넘어섰다.

뒤늦은 팬데믹 선언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팬데믹은 가볍게 쓰는 말이 아니다”면서 자칫하면 “비이성적인 공포”를 불러일으켜 고통을 초래할 수 있다는 말로 늑장대처라는 지적에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미국 CNN은 WHO가 팬데믹 선언을 내리기 이틀 전 자체적으로 팬데믹을 선언했다. WHO가 선제적으로 사태를 지휘하기는 커녕 언론을 뒤따라가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의 답답한 행보는 1일 조만간 세계 확진자 수가 100만명을 넘기게 될 것이고 사망자가 5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은 브리핑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우한코로나가 발생한지 4개월째 들어선 시점에서 “급속한 증가와 전 세계적 확산이 깊이 우려된다”면서 “WHO가 지속적으로 마스크의 사용에 관한 증거를 수집하고 (그 효과를) 평가할 것이다”고 밝혔다.

WHO는 그간 건강한 사람의 경우, 우한코로나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을 돌볼 경우에만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해 왔다. WHO의 권고에 따라 문화적으로 마스크 착용에 거부감을 갖고 있던 미국 등에서 감염자가 폭증했다. 반면 이미 지난달 18일 유럽에서 처음으로 공공장소에서 의무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한 체코에서는 주민들이 헌 옷 등을 활용해 마스크를 만들어 서로 나누어 쓰고 있는 덕분에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현저히 낮은 감염 발생률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WHO는 이제서야 마스크의 효과를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또 2월 초 우한코로나가 급격히 세계적인 확산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발원국인 중국봉쇄가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모든 국가들에 “(중국에 대한 여행·교역 제한을 반대하는) WHO의 결정을 이행할 것을 요청한다”고 강력히 요구했다.

마스크 사용을 권고하지 않고 팬데믹 선언을 주저했으며 중국봉쇄에 반대한 WHO의 입장표명으로 인해 많은 국가들이 무방비 상태로 우한코로나에 희생됐고 이는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미국 최대 청원사이트로 잘 알려진 체인지닷오알지(change.org)에는 올해 1월 23일 국제보건비상사태 선포를 기각한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의 사임을 촉구하는 청원이 올라와 있고 목표인 50만명의 동의를 넘어서 다시 100만을 목표로 진행 중에 있다. 2일 기준 68만명 이상이 청원에 서명했다.

청원자는 게브레예수스가 WHO 사무총장의 역할에 전혀 맞지 않다고 주장하며 그가 당장 해임되기를 청원한다고 썼다. 특히 청원자는 “WHO가 정치적인 중립을 지키지 않아 대단히 실망했다”고 썼는데 이는 WHO의 우한코로나 대응 태도가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청원자는 바로 3일전, 최초 청원 게시물에 추가 자료를 올려 게시 내용을 업데이트했다. 캐나다 국적의 브루스 아일워드 WHO 사무부총장이 홍콩의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대만의 WHO 가입을 고려할 것인가”를 묻는 말에 소리가 안 들리는 듯한 체스처와 함께 명백히 질문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이는 동영상이었다.

대만 관련해서는 중국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문제다.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 뿐 아니라 WHO가 중국 눈치를 보느라 방역을 정치와 혼동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 이유다. (방역과 외교를 혼동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전 세계에서 죄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목숨을 잃고 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인류가 앞으로 얼마나 더 큰 희생을 치러야 할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예측불허의 상황이 불안하다.

박선옥 논설실장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