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 헤드라인 뉴스

 지하철로 보는 상권|빌딩|재건축 뉴스

뒤로 리스트 인쇄
news only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

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우리 역사 최대의 엑소더스 사건

부여기마족의 엑소더스는 일본열도의 축복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4-05 18:20:56

▲ 정재수 작가
엑소더스(exodus)는 '대량 탈출'이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모세가 히브리민족을 이끌고 애굽(이집트)을 탈출하여 홍해를 건넌 사건은 너무나도 유명한 엑소더스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게도 이에 버금가는 엑소더스가 있다.
 
궁월군과 120현민의 실체
 
때는 399년이다. <일본서기> 응신기 기록이다. ‘14년, 이 해에 궁월군이 백제로부터 내귀하여 고하길 “신이 120현의 인부를 이끌고 귀화하려 하는데 신라인이 방해를 하여 모두 가라에 머물고 있습니다”고 했다. 이에 갈성습진언을 보내 가라에 있는 궁월군의 인부를 불렀다.[應神天皇十四年是歲弓月君自百濟來歸因以奏之曰“臣領己國之人夫百廿縣而歸化然因新羅人之拒” 皆留加羅國爰遣葛城襲津彦而召弓月之人夫於加羅]’
 
궁월군(弓月君)과 120현의 인부(人夫)가 나온다. 어림잡아 수십만 명의 삼한백성이다. 지도자는 궁월군이다. 이들이 일본열도로 건너가기 위해 한꺼번에 경남 남해안에 집결한다. 그런데 신라가 방해를 해서 일본열도로 건너가지 못하고 모두 가라(임나-부산)에 머무른다. 야마토 응신왕은 급히 갈성습진언(葛城襲津彦)을 보내 엑소더스를 돕게 한다.
 
《광개토왕릉비》는 당시 상황을 상세히 기록한다. 경남 남해안에 수십만의 삼한백성이 일본열도로 건너가기 위해 한꺼번에 모여든다. 흡사 6.25 한국 전쟁 때 부산에 모여든 피난민과 유사하다. 사람이 차고 넘치니 자연스레 신라 국경을 범하게 되고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신라 내물왕(17대)은 급히 고구려 광개토왕에게 SOS를 보낸다.
 
이듬해인 400년 광개토왕은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 군사 5만명을 급파한다. 《광개토왕릉비》기록이다. ‘영락10년(400년) 경자, 교시를 내려보기 5만을 보내 신라를 구원하였다. 이때 남거성에서 신라성까지 왜가 가득하였다. 관군이 도착하자 왜적이 물러갔다. □□□□□□□ 급히 뒤를 추적하여 임나가라 종발성에 이르자 그성은 즉시 귀부하였다. 안라인 술병을 두었다.[十年庚子敎遣步騎五萬往救新羅從男居城至新羅城倭滿其中官軍方至倭賊退 □□□□□□□ 自倭背急追至任那加羅從拔城城卽歸服安羅人戍兵]’ 광개토왕은 내친 걸음으로 임나가라 종발성(부산진구초읍동)까지 내려가 궁월군의 삼한 백성을 모두 제압한다.
 
다만 광개토왕의 군사활동은 대규모 살상을 동반한 ‘도륙(屠戮)’행위는 아니다. 상대는 비무장의 삼한백성이다. 『고구려사략』은 ‘평정(平定)’의 단어를 쓴다. 광개토왕의 군사활동은 삼한 백성의 소요 사태를 진압하는 정도다. 광개토왕은 삼한 백성의 항복을 받고 안라(아라가야-경남함안)인을 중심으로 술병(戌兵-수비병)을 편성해 배치하고 회군한다.
 
삼한백성의 엑소더스 완결
 
그렇다면 광개토왕의 평정으로 후궁월군과 삼한백성은 어떻게되었을까. 일본 열도로의 엑소더스는 성공했을까, 실패했을까. 이후의 상황이『일본서기』에 나온다. 때는 삼한백성 평정 이듬해인 401년이다.
 
야마토 응신왕은 갈성습진언이 궁월군의 삼한백성 엑소더스(渡倭)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자 평군목토(平群木菟)와 적호전(的戶田)에게 군사를 주어 추가로 파견한다. 이에 평군 목토는 군사를 이끌고 신라 국경에 이르고 당황한 신라왕은 복죄하며 삼한백성의 엑소더스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신라왕의 복죄는 무엇일까. 복죄는 죄를 인정하는 행위이다. 신라왕의 죄는 삼한백성의 엑소더스를 방해한 행위이다. 방해의 실체는 명확하지 않으나 결과적으로 신라 내물왕은 야마토의 군사적 압박에 굴복한다.
 
이는 이듬해인 402년 내물왕의 뒤를 이은 실성왕(18대)이 미사흔왕자를 야마토에 볼모로 보내며 삼한백성의 엑소더스는 완결된다.
 
엑소더스는 일본열도의 축복
 
401년 엑소더스 주체는 일본열도로 망명한 부여백제(야마토)를 뒤따라간 삼한 백성이다. 396년 광개토왕에게 깨져 급히 한반도를 탈출한 여휘왕(응신왕)이 선발대라면 궁월군과 수십만의 삼한백성은 본진인 셈이다. 『삼국사기』<백제본기>는 이때 수많은 백제 백성이 신라로 도망쳐 호구수가 줄었다고 기록한다.[多奔新羅戶口衰滅減]
 
일본 열도로의 엑소더스는 한 차례 더 이루어진다. 403년 아지사주(阿知使主)가 이끄는 대방(황해도) 백성 17현민이다. 『일본서기』응신기 기록이다. ‘20년(403년) 9월, 왜 한직 조상 아지사주와 그의 아들 도가 사주가 17현민을 이끌고 돌아왔다.[二十年秋九月倭漢直祖阿知使主其子都加使主並率己之黨類十七縣而來歸焉]’
 
『속일본기』에는 이들 대방백성이 백제와 고구려 사이에서 거취를 정하지 못하다가 응신왕의 부름을 받고 일본열도로 망명한 것으로 나온다.
 
▲ 일본열도 엑소더스 진행과정 [출처=필자제공]
 
이후 궁월군의 삼한 백성과 아지사주의 대방 백성은 야마토 정권으로부터 각각 하타(秦)씨와 아야(漢)씨의 성씨를 하사받는다. 하타씨는 오사카 일대, 아야씨는 나라현 이마키(今來)군에 정착하며 토목과 양잠기술, 행정관리 체제 등 선진화된 문물과 문화를 일본열도에 전파한다. 이들 두 집단은 신천지 일본 열도에 도래한 ‘뉴커머(new comer)’이다.
 
우리가 잘 아는 문자와 학문을 전한 왕인박사도 이 시기 일본 열도로 건너간다. 일본열도는 이들 엑소더스 집단으로 인해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일본 사회는 국가 체제를 갖추고 급성장하기 시작한다. 가히 역사의 신(神)이 일본 열도에 내린 축복 중의 축복이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은 광개토왕의 <병신년대원정>인 잔국(부여백제) 정벌(396년)이 출발점이다. 그 결과로 일본 열도에 급히 야마토가 건국되고(397년), 이를 뒤따르려던 옛 잔국의 삼한 백성(궁월군120현민)이 일본 열도로 건너가기 위해 한꺼번에 경남 남해안에 집결한다399년).
 
광개토왕은 5만 군사를 보내 삼한 백성의 소요 사태를 진압하고 신라를 구원한다(400년). 이후 야마토는 군사를 파견해 신라를 압박하고 또한 협상을 통해 삼한백성의 엑소더스를 완결한다(401년). 다만 이 과정 속에 한성 백제는 옛부여백제(잔국)의 삼한 땅을 얻기 위해 전지태자를, 신라는 삼한 백성의 엑소더스를 보장하기 위해 미사흔 왕자를 각각 야마토에 볼모로 보낸다. 약소국의 설움이다.
 
4세기 후반~5세기 초반의 동아시아는 말 그대로 펄펄 끓는 용광로이다. 모두 고구려 광개토왕의 남진 정책(병신년대원정)으로 촉발된 역사의 분화이자 진화이다. 한반도 부여 백제의 소멸, 일본 야마토의 성립, 그리고 수십만의 한국인이 일본 열도로 건너가 일본인으로 재탄생한 격동의 30년이다. 엑소더스는 부여 기마족의 대장정이다. 대륙에서 출발해 한반도를 거쳐 일본 열도로 건너간 부여 기마족의 위대한 역사이다.

  • 좋아요
    33

  • 감동이예요
    6

  • 후속기사원해요
    11

  • 화나요
    0

  • 슬퍼요
    0

<저작권자 ⓒ스카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타의 집&빌딩

'문태곤' 강원랜드 대표이사의 집이 있는 동네의 명사들
김동현
대명건설
문태곤
강원랜드
전현무
SM C&C
뒤로 리스트 인쇄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독자의견 총 0건의 댓글이 있습니다.
등록하기

스카이 사람들

more
“발달장애인이 꿈의 직장 찾도록 돕고 있죠“
발달 장애인의 성공적 진로 설계·직업 교육 지...

미세먼지 (2020-05-29 05:00 기준)

  • 서울
  •  
(좋음 : 26)
  • 부산
  •  
(양호 : 37)
  • 대구
  •  
(좋음 : 29)
  • 인천
  •  
(좋음 : 18)
  • 광주
  •  
(보통 : 41)
  • 대전
  •  
(양호 :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