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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15 : 7>
“우리 의견에 따르지 않으면 누구든지 우리의 적(敵)으로 간주하겠다. 내 주장은 옳고, 네 주장은 틀리다’ 방식의 논리가 20대 국회를 뒤덮었지만 그 논리의 방식이 21대 국회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우려는 그나마 4년전에는 범진보와 범보수 간 구도가 팽팽했던 반면 이번 총선에서 범진보 쪽으로 쏠림 현상을 보이면서 제기됐다. 구도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점에서 자기주장에 이견을 말하는 상대를 적으로 간주했던 진영 논리가 어떤 형태로 변이될지에 대해 총선을 치룬 유권자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우려가 현실로 다가온 것 같다. 여야가 총선 후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심사 지연을 놓고 공방전을 이어갔다. 급기야는 국회가 추경 안 심사 일정을 잡지 못하는 등 이달 내 처리가 불투명해지면서 대통령이 나서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여야가 합의를 하지 못할 경우 긴급 발동 권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빚을 져서라도 지급을 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을 보면서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 당시 ‘국민들과의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며 충청도표(票)를 의식, 이명박 정부와 심지어는 야당에서까지 포기한 세종 시 건립을 무리하게 추진 많은 역효과를 가져온 과정이 생각난다. 아무리 국민과의 약속이라 해도 그 길이 낭떠러지라면 멈추고 갈 수 없는 길임을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예산이 없어 국채를 발행하면서까지, 말은 기부라 하지만 강제성이 있는 기부를 강요하면서까지 전 국민에게 지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당장은 좋은 것 같지만 결국 그 채무는 국민들이 갚아야 할 빚이다. 당장 순간의 어려움을 면하기 위해 국민들을 빚쟁이로 만들 것인가.
항간에서는 “나중에 빚을 갚더라도 당장 살기위해선 문 대통령이 잘하는 건데, 야당은 무조건 반대만 한다”는 볼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나중에 그 빚을 우리가 갚아야 하는데, 전 국민보다는 정부에서 말하는 대로 70%만 혜택을 줬으면 한다. 왜 당장을 위해 자식들을 빚쟁이로 만드나?”라고 불쾌감을 나타내는 국민들도 많다. 한 마디로 ‘빚 좋은 개살구’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대선을 노려 여당이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설(舌)도 떠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 국민 지급·고소득자 기부를 골자로 한 당정 합의안이 마련됐는데도 미래통합당이 심사를 미루고 있다고 비난했고 통합당은 재원 문제 등을 언급하며 정부와 여당을 향한 공세 수위를 높였다.
여당은 총선에서 국민들과의 약속이니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고 야당은 예산을 감안 정부안(案)대로 70%만 지급하자는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젠 “국민에게 긴급지원금을 줘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를 보더라도 나라 곳간의 사정과 논리가 통하지 않고 전문가조차 기가 꺾이니 복지 근본주의가 창궐하는 꼴이 돼 버렸다. 그저 돈만 뿌리려고 한다.
경제 회복을 위해서 돈을 확 푸는 걸 뭐라고 탓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긴급 지원금으로 해결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지? 다른 방법은, 혹 국채를 굳이 발행하지 않고도 병행 할 수 있는 정책은 없었을까?
결국 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되 고소득자로부터 자발적 기부 형식으로 준 돈을 다시 걷어 들이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또한 공무원들의 자발적 기부도 원했다. 정부 여당이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를 둘러싼 갈등을 봉합 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봉책이란 인상도 든다. 이는 지원금을 받을지, 말지의 여부를 국민의 선택에 맡긴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절충안의 맹점은 재정건전성에 대한 당정의 온도차가 그대로라는 것이다. 소득 하위 70%에 100만원(4인 가구 기준)씩 지급하자는 기획재정부 원안에 비해 3조3400억원이 추가로 더 소요되는데도 구체적 재원 조달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부족한 1조원 가량의 재원을 기부금으로 충당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조세법정주의 어긋나는 것은 고사하고 새끼도 낳기 전부터 돼지를 세는 우매한 짓거리를 하고 있다. 혹여 기부를 거부하는 국민, 고소득층을 비난의 제물로 삼아 관권을 빌미로 관제 기부를 유도하려는 발상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일부 공무원들도 아무리 자발적 기부라고 하지만 정부가 그렇게 유도하면 거부 할 공무원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불평을 털어 놓았다.
어설프게 정책이 이뤄지다보니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고 문제가 생기는 거다. 무조건 호령만 하려 하니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최일선의 공무원들은 살아있는 권력의 힘에 눌려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정책의 모호함에 균열이 그 와중에 생기게 된다. ‘찍혀서 좋을 것 없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눈치 보기에다 결단력이 부족하지 않은데도 일단 유보하고 자신감을 상실하게 된다.
홍남기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당정청 회의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자는 민주당의 압박에 ‘기록에라도 반대의견을 남기겠다’고 한 것도 따지고 보면 면피를 위한 행동으로 비춰진다.
과거 박근혜 정부 때 그런 사례가 있어 애꿎은 공직자들이 구속된바 있다. 홍 부총리는 그동안 “소득상위 30%에게 지원금을 주기 위해 국가재정에 부담을 주는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건 맞지 않다. 소득하위 70% 지원 기준이 긴급성이라든가 효율성이라든가 형평성 그리고 재정 여력 등을 모두 종합 고려하여 결정한 사안이다”라는 입장을 계속해서 고수해 왔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총리가 고소득자 기부 제도를 전제로 모든 가구에 100% 지급하는 절충안을 내놓자, 홍 부총리는 여야가 합의하면 동의하겠다며 한 발짝 물러서듯 했지만 기획재정부의 입장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고 했다.
이에 앞서 더불어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당의 뜻에 따르지 않는 홍 부총리에 대해 퇴진까지 요구하는 등 압박을 가한 바 있다. 정 총리 역시 “국민에게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발언이 보도되는 건 적절치 않다”면서 “경제부총리는 기재부에 정확히 전달해 달라”고 이례적으로 공개 경고했지만 이는 완전 겁박수준이다.
정부 내 경제 전문가이자 경제 정책의 수장조차 여당의 힘에 눌려 기를 못 펴는 마당에, 일선 공무원이야 오죽할까? 맛보기식 얼버무린 정책은 결국 국가 경제에 커다란 상처를 내는 악순환 고리를 만들기 십상이다.
물론 전 국민에게 재난 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심정은 좋은 뜻에서 충분히 이해하고 싶다. 코로나 사태로 생계를 위협받은 국민을 향한 총선 공약이란 점에서다. 그러나 코로나 경제 충격파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지금 현재로는 가늠할 수 없다. 더 큰 쓰나미에 대비해 재정 여력을 확보한다는 기재부의 관점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홍 부총리가 긴급재난지원금을 모든 가구에 지급하자는 여당 요구에 반발해서 사의를 표한 것으로 MBC 취재 결과 확인됐으나, 사표 제출마저 맘대로 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여권 고위관계자는 MBC와의 통화에서 “홍 부총리가 최근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정세균 총리를 각각 만난 자리에서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진통 끝에 기재부는 지난 24일 오후 보도 자료를 내고 23일 당정이 합의한 대로 국채를 발행해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고, 지원금을 기부하면 세액공제를 하겠다고 밝히며 청와대와 여권에 무릎을 꿇었다.
재정부담 능력은 곳간 열쇠를 쥔 정부가 가장 잘 안다. 공약을 이행할 수 없을 정도로 재원이 모자란다면 국민에게 진솔한 양해를 구하면 된다. 그게 정도다. 이제 와서 국민과 약속한 공약을 내세우며 국채 발행까지 하면서 무리수를 두는 게 과연 바람직한 건지 모르겠다.
이미 우리는 악재에 악재가 더해진 칵테일 위기에 빠졌다. 달콤한 이념으로 버무린 독한 정책을 마신 상태에서 코로나바이러스까지 덮쳐 취할 대로 취해있는 것 같다. 문 대통령은 선거공약이라며 밀어붙일 게 아니라 기재부의 말을 들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최악의 국가적 재난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순간의 방심과 오만이 돌이킬 수 없는 화(禍)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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