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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

일제와 투쟁했던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신 여순 감옥으로 향하다

여순 감옥에서 순국한 항일투쟁가를 만나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6-23 16:21:17

▲ 이일걸 한국간도학회 회장
우리 일행은 조양시의 숙소에서 9시 경 출발하였다. 오늘 숙박 장소는 대련이라서 장시간의 버스를 타야 할 것 같다. 두 시간 후 부신(阜新) 부근의 사해(査海) 유적지를 관람하기 위해 들렸지만 공사 중이라서 입장할 수가 없었다. 유적지 입구에 서 있는 중화제1 기념물인 나신의 여신상 사진만 찍고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이미 12시였다.
 
한 시간 후 북진(北鎭) 휴게소에 들러 짧은 시간 휴식을 취하고, 다시 한 시간 후에 요하(遼河) 휴게소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출발하니 오후 3시가 다 되었다. 대련까지의 거리는 230km가 넘는다. 오후 7시 경에 대련시에 도착하였다. 우리 일행은 한국원(韓國園)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한정연쇄주점(韓庭連鎖酒店)에 짐을 풀었다.
 
이튿날 930분에 여순(뤼순) 감옥으로 출발하였으며, 10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여순 감옥시설들, 고문실의 고문기구, 수감방의 구조, 사형 집행 장소 등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관람객 중에는 중국인들도 많았다. 안중근 의사와 이회영 · 신채호 선생의 좌상이 같이 있어 사진을 동료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평소 존경했던 이 세 분의 동상에서 발길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모두 여순 감옥에서 순국하였으며, 유명한 항일투쟁가인 동시에 당시 대표적인 사상가로서의 공통점이 있었다.
 
안중근 의사는 19091026일 하르빈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척살하고 191032632세로 순국하였으며, 이회영 선생은 193211월 관동군 사령관 암살계획 추진 중에 일경에 피체되어 여순 감옥에서 심한 고문으로 66세 나이로 순국하였다. 신채호 선생은 항일투쟁자금 연루자로 피체되어 여순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는 중 1936257세로 순국하였다
 
신채호 선생은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였으며, 1923년 의열단의 조선혁명선언을 작성하였다. 1924년 집필한 조선상고사는 최초의 본격적인 근대역사방법론으로써, 과거 우리 역사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통해 우리 역사의 자주적 체계화를 시도했다.
 
특히 우리 역사 발전의 체계를 고조선 - 부여 - 고구려 - 발해 - 고려로 보았다. 기존의 신라 중심의 발전체계에 대한 수정을 가해 대륙중심민족사관형성에 기여하였다. 1928년 항일투쟁자금 문제에 연루되어 일경에 피체되어 10년 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는 도중인 1936년 순국하였다. 1921년 잡지 천고를 창간하여 예리한 필치로 언론독립운동전개하였는데, 이때 신채호를 지원했던 이는 심산 김창숙 선생이었다.
 
심산 김창숙 선생은 대구 형무소에서 가출소하여 울산 백양사에서 휴양하고 있던 차에 신채호의 부음을 듣고 만사(輓詞)를 지으며 애통해하였다. “도신단재채호(悼申丹齋采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들으니 군의 뼈를 금주(金州)의 불로 태웠다 하니, 군이 가니 청구(靑邱)의 정기가 거두었다. 옥루(玉樓: 천상의 옥황상제 집)의 수문(修文: 옥경의 글 담당 벼슬)으로 군은 잘 갔으되 예옹(蚋甕:파리)과 같이 뒤에 죽은 사람들 부끄러워 어찌하리오. 들으니 군의 영구는 청주로 돌아왔는데 오직 재 한 줌 뿐이라네. 수구(首邱)에 묻혔으니 말을 물어보게. 군의 혼백도 따라 돌아오셨는가. 군은 아무래도 보로(溥老, 溥齋: 항일투쟁가인 이상설의 아호)를 따라 놀 터이지.
 
김창숙은 신채호를 애도하면서 1917년 연해주에서 사망한 항일투쟁의 동지였던 이상설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였다. 신채호도 화장하여 한 줌의 재로 고향에 돌아왔지만 이상설은 광복을 보지 못하고 죽기 때문에, 동지들에게 우수리스크부근의 수빈강에 자신의 유골을 뿌려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또한 국권을 탈취당한 후 우당(友堂) 이회영 6형제의 만주 이주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노벨레스 오블리주(상류층 신분의 도덕적인 책무)를 실천한 이회영 일가는 통화 합니하 부근에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 전신)를 세워 광복군을 양성하는 등 전 재산을 희사하였다.
 
안중근 의사는 1879년 해주에서 출생하여, 진남포에서 삼흥’, ‘돈의학교를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하였다. 190729세 구국투쟁을 위해 간도와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 가서 이범윤, 김두성과 함께 의병을 조직하였다. 또한 의병 참모중장을 담당하여 국내진공작전을 수행하여 경흥, 회령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19091월에 11명의 동지들과 함께 단지동맹을 결성하고 조국을 위해 한 몸 바칠 것을 맹세하였다. 이 해 1026일 하르빈역에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하였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의 처단과 순국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의 척살 이유를 법정에서 이렇게 밝혔다. “내가 이등박문을 쏘아 죽인 것은 전쟁에 패배하여 포로가 된 때문이며, 나는 개인 자격으로서 이 일을 행한 것이 아니오, 한국 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조국의 광복과 동양평화를 위해서 행한 것이니, 만국 공법에 의하여 처리하도록 하라.
 
중국 손문(孫文)의 만사 내용 중에는 공은 삼한을 덮고 이름은 만국에 떨치나니 백세의 삶은 아니나 죽어서 천추에 드리우리(功蓋三韓名萬國 生無百歲死千秋)라고 읊었다. 창강(滄江) 김택영의 문의병장 안중근 보국수사(聞義兵將 安重根 報國讎事)’ 내용 중에는 해삼위라 큰 매 하나 하늘 쓸고 돌더니만, 하르빈역 머리에 벼락불 떨어졌네, 육대주 영웅호걸 몇 분이나 되시는지, 모두들 가을바람에 수젓가락 떨구었으리라고 하여 진짜 육대주 영웅호걸이 안중근 의사 외에는 없었다고 하였다. 당시 한국의 내정에 간섭을 일삼던 원세개도 손문의 만사(輓詞)를 흉내 내어 安重根義士輓을 보냈다
 
특히 당시 양계초(梁啓超)가 지은 안중근 의사에 대한 숭모찬시(崇慕讚詩) 중 내용에는 다섯 발자국에 피솟구치게 대사를 이루었으니 웃음소리 대지를 진감하누나, 장하다 그 모습 영원토록 빛나리라... 창해장수 박랑사에서 진왕(秦王)을 치더니 하르빈역의 총소리는 세계를 진감하누나라고 하여 안중근 의사를 극찬했다.
 
이와 같이 당시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처단은 세계적인 대 사건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국제간의 저명인사들까지도 만사를 지어 보내왔던 영웅 안중근 의사였다. 그러나 일제는 안중근 의사의 무덤조차 비밀에 부치고 말았으니 그들이 저지른 악행은 끝이 없어 보인다. 최근 벌어진 하시마(端島) 탄광이었던 군함도 전시관의 역사왜곡사건을 보면 일본의 과거에 저지른 만행에 대한 반성이나 피해국에 대한 사과의 감정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철면피의 얼굴인 것이다.
 
우리 일행은 여순 감옥에서 출발하여 발해와 황해를 조망할 수 있는 백옥산(白玉山) 공원 광장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였으며, 오후 1시에 점심 식사를 하였다. 230분에 고려박물관에 도착하여 전시 유물들을 관람하였다. 황희면 고려박물관장은 몇 해 전부터 알고 지내는 관계이지만 오늘은 부재중이었다. 황관장은 서울 한배달 사무실에서 여러 번 고려박물관 소장품에 대한 소개를 하였다.
 
황희면 관장에 의하면 고려박물관의 소장품 대부분은 산동성과 하북 산서성 지역에서 출토된 고구려 유물이라고 하였다. 이 중 눈에 띄는 것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다. 크기가 1m 80cm이며 5~6세기 비정된다고 하였다. 우리의 국보 반가사유상보다도 더 크다. 또한 전신을 덮는 옥갑을 볼 수 있었다. 오래 전 중산국의 유물에서 옥갑을 본 기억이 났다. 황희면 관장의 견해에 의하면, 유물 발굴지로 근거할 때 당시 고구려의 영토는 지금보다도 훨씬 넓었다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현 고구려의 영토 면적에 대해서는 다시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일행은 오후 4시에 출국 수속을 밟기 시작했으며 8시에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67일간의 여행을 무사히 끝내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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