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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170>

고려 이성계장군 때 요(遼), 심(瀋), 고려영토 회복했다

고려영토를 한반도로 말하는 사학자(詐學者)들은 사라져야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8-08 14:37:36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지나(支那)의 역사왜곡은 당(唐)나라 때부터 심해지더니 이후 가장 심한 때가 명(明)나라와 송(宋)나라 때이다. 물론 원(元) 요(遼), 금(金), 청(淸)등이 없는 바 아니나 그들은 우리의 역사를 처음부터 도용(盜用)하고 조작하고 왜곡한 것이 다 드러나고 있어서 숨길 수가 없다. 
 
그들은 황제(黃帝) 헌원(軒轅)을 자기들의 시조(始祖)라 말하나 지나 역사는 우리의 조상을 자기들의 시조라 하며 일관되게 유지해 온 것이다. 그리고 헌원으로 부터 요순(堯舜)시대를 거쳐 하(夏), 은(殷), 주(周)의 시대가 이어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면서 삼황(三皇)과 오제(五帝)의 여덟 분을 자기들의 조상이라 하나, 사서(史書)마다 각각 지칭하는 바가 다소 차이가 있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따르면 삼황(三皇)은 복희(伏 羲), 신농(神農), 황제(黃帝)등 세분을 말하고  오제(五帝)는 남송(南宋)때 호굉(胡宏)이 쓴 황왕 대비(皇王大妃)는 복희, 신농, 황제, 당요(唐堯), 우순(虞舜)등을 지칭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지나는 사실에 근거한 역사가 아니라 우리 것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것으로 조작하고 각색해서 세상에 자기들의 역사라고 내놓은 것이 거의 전부이다. 지나 역사를 연구하면 할수록 그들의 역사에는 상고사가 없고 고대사도 우리역사를 도용하고 있음을 본다. 
 
그런데 자학반도식민사관자(自虐半島植民史觀者)들은 지나와 일본이 조작하고 왜곡한 역사를 추종하며 연구는 뒷전으로 이러한 것을 알면서도 국가관이나 민족의 정체성(正體性)과 자긍심(自心)을 키우기는커녕 우리역사를 지나와 일본이 조작하고 왜곡한 역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은 이해 할 수 없다. 이런 사학자(詐學者)는 사라져야 역사가 바로 선다.
 
광복되어 73년이 지나는 오늘날까지 이런 정신나간 자학반도식민사관자들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아는 것도 아니고 지나나 일본 역사도 아닌 허구역사로 우리민족의 민족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못 갖게 해 열등의식과 패배감을 조장할 뿐이다. 우리나라 역사가 제대로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학계에서 스스로 물러나거나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시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의 역사는 바로 설 수가 없다.
 
오늘은 고려시대(高麗時代)와 조선조시대(朝鮮朝時代)에도 우리 영역이 반도가 아닌 것을 전회에 이어 사료와 현대과학의 고증을 통해 입증하려 한다.
 
반도사관의 효시(嚆矢)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식민사관은 일제암흑기에 일본제국학자들이 우리역사를 축소 왜곡해 식민사관을 심었다고 필자 역시도 말해왔다. 물론 일제에 의해 우리의 정체성을 말살(抹殺)하고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을 조장하며 자주성과 단결심을 와해시키는 논리로 우리가 약소민족으로 언제나 침략을 당해 자주성이 없고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으로 나누어 이론 전개를 하고 있음을 본다.
 
일제(日帝)는 자율성의 부재를 강조하기 위한 논리(論理)로서 반도성논(半島性論)을 제시했다. 그것은 우리의 무대가 반도(半島)이기 때문에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틈바구니에서 시달리는 수난이 역사가 불가피한 운명처럼 설명했던 것이다. 
 
그들은 우리역사를 말살하며 상고사는 아예 없는 것으로 하고 고조선도 2000년 이상을 잘라버리고 고려시대에 고구려(高句麗) 평양(平壤),국내성도 명확하게 모르게 했다. 
 
그러나 김부식등 삼국사 편찬자들은 고구려 평양성이 ‘북조경내’에 있다고 했다. 어찌 고려땅에 있다고 하지 아니하고 ‘북조경내’라 하였을까? 이는 선비족이 세운 위(魏)나라의 강역 내를 북조경내(北朝境內)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요사(遼史) 암연현의 표현에서 해주 서쪽에 평양성이 있었다는 기록과 일치하는 것이다. 금복개해, 즉 금주, 복주, 개주, 해주(요동반도)의 서쪽의 지역으로 북조경내에 있다는 것은 한반도에 있다는 것이 아님으로 분명히 요하의 서쪽에 고구려 평양성이 있다고 한 것으로 이는 우리역사를 바로 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내용인 것이다. 
 
그런데 식민사관은 우리민족의 자주성을 말살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잃게해 열등의식(劣等意識)과 패배의식(敗北意識)을 조장(助長)시켜 온 국민의 의식은 패배감을 조장할 뿐만 아니라 주인의식의 결여로 침체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 사관을 이 땅에 뿌리를 내린 것은 ‘제왕운기(帝王韻紀)’의 기록을 검토하면 시발점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 첫 부분에서 ‘삼면이 바다로 싸였고 북쪽만 연결되어 있다는 시(詩)가 한반도 강역을 기준으로 하는 사관이 시작된 근거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이보다도 김일연과 신채호의 시각이 더 문제라 사료된다.  
 
왜냐하면 김일연(金一然)이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동이전을 이용해서 삼한을 선8도에 극한한 것과 신채호(申采浩)의 한국사연구초(韓國史硏究秒)에서 보듯 ‘동서양자상환중(東西兩字者償還考證)으로 글자를 바꿔서라도 우리역사를 반도로 한 것은 우리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잘못인데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문제였다. 
 
여기에 성호(星湖)이익(李瀷)은 사대주의자(事大主義者)로, 이를 ‘가소롭다’고만 해 우리가 유연제노오월의 사실을 따져봐야 함에도 이를 따지지 않았고, 자학반도식민사관자들이 지나의 25사(史)나 8사(史)를 연구나 검토도 하지 않고 왜곡한 위서(僞書)만 보고 고집하는 것과 맥락이 같은 것이다. 
 
자학반도식민 사(詐)학자는 고려시대 평양 국내성도 모르고 있다
 
자학반도식민사학자들은 지금도 고려시대에 평양 국내성도 명확하게 모르고 있음을 본다. 그들은 지금의 대동강이 패수(浿水)라 하는가 하면 평양과 장안에 대해 두 성이 동일한 것인가, 아니면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에 관한 것도 알 수가 없다고 하고, 더구나 살수도 모른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삼국사기 잡지 제6의 지리 평양성 부분을 소개하면, 한서(漢書)에는 “낙랑군에 속한 현으로 불이현이 있다“고 했고, 총장(總章) 2년에 영국공(英國公) 이적(李勣)이 왕의 칙명에 의해 고구려의 모든 성에 도독부와 주현을 설치했다고 하고 있다. 
 
목록에는 “압록강 이북에서 이미 항복한 성이 열하나인데 그 중 하나가 국내성이며 평양으로부터 국내성 까지는 17개 의역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성도 역시 북조(北朝)경내에 있었으나 다만 어느 곳인지 알 수 없을 뿐이다. 이곳은 대륙이다.
 
김부식(金富軾) 등 삼국사 11명의 편찬자들은 고구려 평양성이 ‘북조(北朝)경내’에 있다고 했다. 어찌 고려 땅에 있다고 하지 않고 ‘북조경내’라 했을까? 이것은 아시아에서 김부식등이 살던 고려 이전에 북조로 표시하는 역사적국가는 강수가 있는 남쪽의 송제양진의 있고, 그에 대칭해 북쪽 선비의 위(魏)나라 강역내를 북조경내로 표현한 것이다. 또 만약 송나라와 요나라를 남북조로 보았다고 할 수도 있다.
 
고려영역이 금주, 복주, 개주, 해주(요동반도)가 고려 강역이었다는 기록으로 봐서 분명히 요하의 서쪽에 고구려 평양성(平壤城)이 있었다는 표현이라고 봐야 한다. 
 
이것은 요사 암연현의표현에서 해주 서쪽에 평양성이 있었다는 기록과 일치되는 기록인 것이다. 금복개해(요동반도)의 서쪽 지역으로 북조경내에 있었다는 것은 한반도 쪽에도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니므로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이곳은 고려영역이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동이전에서 동이국의 배열도에 지명을 삽입하고 송나라 이후의 아시아 지도에 대입해 보면 고구려 위치와 같은 결과이므로 고구려 평양을 찾는데 매우 중요한 기록인 것이다. (以上은 吳在成「九犂系 高麗)史연구」24~35參照, 引用하다.)
 
자학반도식민사학자 중에는 고구려의 다른 수도(首都)에 대해 어느 말이 옳은지 모르겠다는 표현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연구부족이라고 보고 있다. 고구려의 수도는 8번이나 옮겼기에 평양성을 찾는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글을 맺으며
 
고구려의 수도는 필자가 알기로도 도읍지는 졸본(卒本), 눌현, 국내성(國內城), 환도성(丸都城), 돈황성(敦皇城), 평양성(平壤城), 장안성(長安城)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많이 옮겼는지는 더 많은 연구를 요한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한편 자학반도식민사학자는 장수왕(長壽王) 15년에 북의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다고 보고 있는 자가 많은데 한반도에 옮긴 적이 없다. 고구려뿐이 아니라 백제와 신라수도도 한반도에 옮긴 적이 없다. 지증왕 때인 503년에 칸에서 왕으로 호칭이 달라진 것이 반도의 신라이다. 대륙 사로신라는 반도에 온 적이 없다.
 
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는 남생, 남건, 남곤의 형제간의 분쟁과 신라 요승 신성등의 배신으로 강성한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멸망했으나 고구려의 수도는 물론 화려한 역사는 금후 제대로 연구를 통해 더 밝혀질 것이라 본다. 
 
지나는 예맥(銳麥;濊貊)과 고구려(高句麗)와 발해(渤海)에 대해 언제나 두려워한 것을 제대로 알고 우리역사를 연구해 가야 하리라 보며, 고려(高麗)도 동북아의 최강국이었음을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조선조도 반도가 아닌 남만주와 반도가 영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윤관(尹瓘)장군과 오연총(吳延寵)장군이 여진(女眞)을 평정하기 위해 출발한 지명이 장춘(長春)이다. 반도에 장춘의 지명은 찾지 못했다. 그리고 고려 장군 시절 이성계 장군도 반도가 아닌 장춘에서 1370년에 출발해 고려 땅을 회복한 것은 이를 뒷받침하고도 남는다.
 
(以上은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九犂系 高麗史」 九犂系: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朴鐘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한국인 자부심 더 알씨사랑’ ‘한국인 자부심 물이랑’ ‘한국인 자부심 더 코어랑’ ‘한국인 자부심 더 아리랑’]. 朴昌和 찬술, 金星謙) 번역, ‘숨겨진 역사를 찾아서’. 정희철 지움, ‘중국은 없다’. 朴昌和 筆寫 金星謙 번역, ‘고구리 창세기’  檀檀學會編輯, ‘桓檀古記’ 백지원, ‘고려왕조실록’.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貝塚茂樹, ‘中國の歷史’.杉山徹宗,「眞實の中國四千年史」.外 多數書冊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했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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