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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걸(蘇山)의 우리땅 간도대륙

낙양고묘박물관·중악묘·소림사·용문석굴을 방문하다

중국에서 발견한 고구려 고분벽화의 유산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8-09 17:41:57

▲ 이일걸 한국간도학회 회장
오늘은 중국에 온지 나흘째다. 일찍 일어났다. 아침식사를 하고 8시에 낙양성(洛陽城)에 도착하였다. 성을 둘러싼 해자(垓字) 위의 다리를 통해 낙양성에 들어갔다. 오랜 세월의 연륜을 말해주는 목조 건축물과 길 양편에 다닥다닥 붙은 상점들이 눈에 띄었다. 다리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낙양은 9왕조가 도읍했다고 하여 ‘구조(九朝)의 도시’라고 부른다. 도시의 이름이 말해 주듯이 낙하(洛河)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서안(長安·장안)이 정치의 도시라면 낙양은 예술의 도시라 부른다. 전국시대에 노자·두보·이백·백낙천 등의 문인들과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활약하였다. 또한 북위시대에 조성하기 시작한 용문석굴(龍門石窟)로 유명하다.
 
갑작스레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황급히 승차하여 낙양고묘박물관으로 향했다. 지하 1층에는 전한·후한·서진·북위·당·북송 등의 시대에 존재했던 중국의 시기별 장례 형태를 알려주는 여러 가지의 무덤과 사리함 등을 볼 수가 있었다. 또한 무덤의 벽에 새겨진 벽화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벽화 수준은 고구려의 절반의 수준에 미치지도 못하였다. 일설에는 이 중국의 고분벽화 그림은 고구려 멸망 후 잡혀온 고구려의 도공들이 그렸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고분 벽화가 중국의 고분벽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중원의 고분벽화 수준이 고구려의 벽화 수준에 따라오지 못할 수준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식민사학자들은 한국의 그림과 벽화가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낙양고묘박물관을 나오니 장대 같은 소낙비가 퍼붓는다. 간신히 버스에 올라 중악묘(中岳廟)로 향하니 벌써 10시가 넘었다. 1시가 넘어 중악묘에 도착하였다. 중악묘는 중악 숭산(嵩山)을 모시는 신전이다. 중화문(中華門)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대표적인 건물로는 천중각(天中閣)·숭성문(崇聖門)·화삼문(化三門)·준극전(峻極殿)·침전(寢殿)·어서루(御書樓) 등이 있다.
 
중악묘는 동악 태산(泰山)의 대묘(岱廟)와 함께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며 규모도 매우 크다. 준극전은 북경 고궁의 태화전과 매우 비슷한 건물이다. 중화문에서 어서루까지는 1.3km의 거리이다. 준극전에는 도사 한 분이 관광객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계속 내리던 가랑비는 멈추지도 않는다. 중악묘를 관람한 우리 회원들은 소림사(少林寺)로 출발하였다.
 
오후 3시 40분에 소림사 주차장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우산을 쓰고 소림사 경내로 들어갔다. 소림사 관광은 두 번째다. 1993년에 홀로 정주·낙양·서안 지역을 여행 한 이후 처음이다. 감회가 새로웠다. 소림사는 인도의 고승 보리달마(菩提達磨)가 9년 동안 면벽좌선(面壁坐禪)했던 곳이다. 또한 소림사 주변에는 소림사의 스님들에게 전해지는 소림권법을 교육시키는 학교도 무수히 많다.
 
시인 정 선생과 함께 내려오다 동편의 작은 문을 보고 들어가니 관음각(觀音閣)이었다. 건물 전체에서 역대 스님들의 서예 작품과 석비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소림사의 동쪽 관음각 건물에 비장된 역대 스님들이 남긴 글씨와 그림과 석비는 대략 300점이 넘었다. 작은 글씨로 새긴 석비들은 풍상에 마모되어 읽기도 힘들었다.
 
이들 소림사 스님들이 남긴 석비와 작품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스님들의 작품을 사진기에 담느라 늦기도 하였다. 주차장에 이르니 비가 개이면서 서쪽 하늘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나타났다. 5시경에 용문석굴로 출발하였으며 30분 후 도착하여 늦은 관람이라고 해서 벌금을 물었다.
 
용문석굴은 막고굴(莫高窟)·운강석굴(雲岡石窟)과 더불어 중국 3대 석굴이며 나로서는 두 번 째의 방문이다. 주변의 환경이 25년 전보다 많이 변화하였다. 석굴 앞의 비포장도로는 포장되었으며 즐비했던 상점들이 없어지고 깨끗한 주차장이 생겼다. 이하(伊河)의 동·서쪽 기슭인 용문산(龍門山)과 향산(香山)에는 석굴 1352개와 불감 785개가 있으며 10만개의 석불이 있다. 북위가 494년 대동에서 낙양으로 천도한 후에 운강석굴에 이어 건설하기 시작하여 이후 400년 동안 석굴을 팠다.
 
주요 석굴 중 제1동인 잠계사동(潛溪寺洞)은 641년 태종의 넷째 아들 위왕 태(泰)의 발원으로 조영되었다. 제2·3·4동인 빈양삼동(賓陽三洞)은 북위 선무제의 발원으로 505년에 건설을 시작했으며 중동은 북위 말까지 십수년이 지나 완성하였다. 남동은 북제~수나라, 북동은 수~초당까지 공사를 하였는데 무려 80만명이 동원되었으며 용문석굴 중 가장 볼만 한 곳이다. 중앙의 위쪽에 있는 봉선사동(奉先寺洞)은 당 시기에 축조되었으며, 동굴 중앙의 17m 높이의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의 좌상은 측천무후를 본떴다는 전설도 있다. 만불동(萬佛洞)은 1만5000개의 작은 불상이 있다.
 
용문석굴에서도 가장 오랜 석굴 중의 하나인 고양동(古陽洞)은 북위 시기의 육조체 해서로 특징짓는 조상명(造像銘)인 용문이십품(龍門二十品)이라는 비문이 유명하다. 25년 전 이곳에서 육조체의 전범으로 보이는 묘지명의 탁본을 하나 발견하여 구입하였는데 귀국하여 여초(如初) 은사님께 보이니 진품이라고 하셨다. 향산사(香山寺)는 백거이(白居易)가 자주 찾았던 절로 백거이는 사후 이 절에 묻혔다.
 
우리 일행들은 용문석굴의 답사를 위해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관람하고 또한 사진 찍기에도 바빴다. 연세가 많으신 회원들이 도로를 따라 가면서 쉬기도 하면서 이하를 가로지르고 동쪽의 향산 아래로 이동하였다. 주차장까지 30분 정도 걸으면서 서쪽의 용문산에 조성된 석굴들의 모습을 다시 보았다. 짙푸른 녹색 빛의 둥근 용문산과 이하의 푸른 물빛과 조화된 석불들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용문석굴의 중심은 봉선사동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윽고 버스에 승차하여 숙소인 정주시의 중주국제대반점(中州國際大飯店)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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