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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어느 명상 마을에서 만났던 한덕운 씨의 부음(訃音)이 왔다. 본인은 이미 이승의 사람이 아니었을 터인데, 그의 이름과 사진이 박힌 SNS로 소식이 왔다. 휴대 전화기 시스템만 놓고 보면 본인이 본인의 부음을 알린 격이다. 처음에 나는 그의 부친이 돌아가신 것으로 착각했다. 부고(訃告) 맨 윗단에 적힌 고인의 이름을 보면서도, 흰 이가 가지런한 그의 웃음만 떠올리면서 시선을 죽 내렸다. 이분 아버님이 여태껏 살아계셨나? 하면서. 맨 밑단에 부음을 알리는 사람의 이름이 낯설어서 다시 맨 윗줄로 올라와봤다. ‘고인(故人)’ 이라고 쓰인 단어 옆에 세미 콜론 그리고, 그의 이름 석자가 쓰여 있었다. 고인 한덕운. 부고자(訃告者)는 그의 아들이었다.
지난해 12월에는 30대 후반 여성 제자의 부음을 받았다. 그것도 이미 장례를 지낸 후, 몇 주 후에야 알았다. 그해 6월까지도 나한테 명상 수업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그녀 표정과 목소리를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승을 하직했단다. 그녀와 나는 5개월 정도 무소식이었다. 그 동안에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망연자실했다. 그 몇 달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거야? “본인이 절대로 주변에 알리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해서 말씀드리지 못했어요.” 그녀와 함께 수업 받았던 사람이 이제야 말했다. “그럼 수업할 때도 한창 병중이었네요?” “네, 그때도 그랬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그렇게 쾌활하려고 애썼죠. 병에 관해선 말도 못 꺼내게 해서….”
두 사람의 부음만이 아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멀고 가까운 주변 친지만 해도 열 분이 넘는 인연과 작별을 했다. 그런데도 이 두 사람이 선명히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각별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더해 이 분들로부터 특별 ‘메시지’를 받은 느낌 때문이다. 어느 죽음인들 애통하지 않으랴만, 두 분은 비교적 젊은데다 한창 활동 중이었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소식이 끊겼는데도 이런 이별까지 감당해야 할 줄은 상상할 수 없었다.
되돌아보면 그 두 분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의 병증에 대해 인정하지 않은데다 주변에 함구했다는 점이다. 물어볼 순 없었지만, 스스로 부정하고 싶은 생각이 크지 않았을까. 그 또한 이해가 될 법한 것이, 한 분은 물 좋고 산 좋은 산림욕장에서 날마다 산을 타며 일하는 게 주요 업무였고, 또 한분은 누가 봐도 건강한 육신을 갖춘 요가 선생님이었다. 누구도 그 분들의 건강을 의심하려야 의심할 수 없었다. 그 분들은 무엇보다도 병원에서 위중상태 판정을 받고서도 힘겨워하는 모습을 감춰왔다.
조금은 왁자지껄한 것도 괜찮아
괴로움이나 상처를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한다는 공식은 없다. 괴로움이야말로 냉혹할 정도로 각자 몫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건, 서로 손을 맞잡아 본 것으로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내가 그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그에게 나의 손이 따뜻하냐고 묻는다. 그는 나의 손 상태를 어느 정도까지 정확히 알 수 있을까. 내 손을 잡았을 때 그의 손이 차가우면 내 손은 따뜻했을 것이고, 그의 손이 따뜻하게 느껴졌다면 나의 손이 차가웠음을 의미할 뿐이다. 상대적이다. 어느 누구도 차가움과 뜨거움의 기준이 될 수 없다. 결국은 ‘내 손에 비해’ 당신 손이 따뜻하다, 라는 게 정답에 가깝다. 괴로움이든 기쁨이든, 모든 감각이나 감정, 생각 따위는 같은 원리다. 정해진 기준 없음. 철저히 각자 몫이다.
우리는 비밀 왕국처럼 각자로 존재하지만 내면에서 들끓는 여러 에너지가 완벽하게 차단되는 건 아니다. 그것은 마치 담장 안쪽 공기가 허공의 바람이 되기도 하고 수증기와 뒤섞여 빗물이 되어 담장 밖을 넘어서는 것과 같다. 인간의 감각기관으로는 잘 알아차릴 수 없는 에너지들이지만 이것들의 속성은 ‘이동성’과 ‘자유’다. 생각이나 기억도 에너지장이라고 볼 때, 에너지는 시공간을 사통팔달로 소통한다고 봐야 한다. 당신이 말을 하고, 무언가를 바라보고, 눈물 짓고, 침을 흘리는 이유도 흐름의 원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말하라. 그것 또한 흐름의 원칙이다. 말하지 못하게 하는 조직이나 집단은 그래서 곪고 썩는다. 그런데 말이 너무 많으면, 내면이 말라붙는다. 말라붙을 정도로 흘려버렸기 때문이다. 자기자신도 마찬가지다. 내 안의 고통에 대해 숨기거나 감추는 것은 차단행위다. 신체 통증에 대한 자세도 마찬가지다. 수용전념치료 요법으로 널리 알려진 스티븐 헤이스는 저서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에서 온갖 고통에 대한 경험 회피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반면에 어떤 고통이든 그것을 ‘기꺼이 경험하려는 의지’와 ‘고통을 바라보거나 그에 대한 생각과의 융합’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채택하고 익숙해진다면, 고통에 대한 인내력이 현저히 증가하고, 고통에 대한 무능력이나 병가 기간이 감소한다고 말한다.
각자 다른 두 분의 부음을 받고, 황망함에 이어 떠오른 한 생각이 ‘그렇다면 코로나 19의 고통은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말없이 떠난 그 분들을 보내면서 문득, 우리 시대와 대비한 것이 엉뚱한 비약이라는 생각이 스치긴 했지만, 황망하다는 감정선에 걸려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분들의 의사는 알 수 없으나, 나는 그들로부터 ‘특별 메시지’를 접수한다. 갈수록 막막해질 수 있는 이 상황, 어떻게 이 사회적 고통을 건너갈 것인가.
식당들은 문을 닫고, 오피스텔의 소상공인들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매출 성적에 망연자실해 있다. 개인이건 집단이건 자칫하면 이성을 잃을 수 있는 조건이 무르익어가는 기분이다. 이 고통을 잘 운용하기 위해 각자가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 두려움, 근심, 막막함, 좌절감, 불편함 따위 감정들이 오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그 감정을 기꺼이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힘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당분간 ‘코로나 19’라는 고통과 동행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서로 각자의 아픔을 드러내고, 누군가는 그것을 들어주고, 누군가는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불안하면 불안하다고 말하고, 암울하면 암울하다고 표현하는, 조금은 왁자지껄한 시대가 되기를 바란다. 하루빨리 식당 사장님들의 생기발랄한 목소리를 듣고 싶지만, 지금은 그마저 욕심같다. 그런 욕심을 바라보면서 나의 불안도 바라보면서, 가야겠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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