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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산서성을 중심으로 대제국 형성했던 고구려

단군조선·배달국 중심지도 산서성 중남부…위대했던 한민족 역사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9-09 13:18:24

▲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대한민국 국민들은 고주몽의 고구려 건국 이전 우리 민족은 위만조선과 한사군으로 이어지는 이민족의 지배를 받았다고 배웠다. 그 이전 단군은 신화고 우리 민족의 시원지는 백두산이며 대대로 주 활동무대가 만주와 한반도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환단고기』를 신봉하는 재야사학들도 <삼성기전>의 기록에서 “환웅(桓雄)씨가 3천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정상의 신단수(神壇樹) 또는 백산(白山)과 흑수(黑水) 사이 신시(神市)에 도읍하고 나라이름을 배달(倍達)이라 했다”며 태백산 또는 백산을 백두산(白頭山)으로 흑수를 흑룡강(黑龍江)으로 해석하고 있는 실정이다.
 
<단군세기>에는 “개천 1565년(기원전 2333년) 상월(上月=10월) 3일에 이르러 신인왕검(神人王儉)이 불함산의 신단수(박달나무) 터에서 아사달을 도읍으로 정하고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 불렀다”는 기록의 아사달을 백두산 또는 만주 송화강변 하얼빈으로 비정하고 있다. 참고로 아사달과 신시 모두 신단수가 언급된 것으로 보아 아사달은 신시 부근으로 보인다.
 
또 <단군세기>를 보면 “갑술 67년(B.C 2267) 왕검께서는 태자 부루를 파견하여 우사공(虞司空=순)에게 오행치수의 방법을 전하고 나라의 경계를 정하니 유주(幽州)와 영주(營州)가 속해 분조(分朝)를 두고 다스렸는데 우순(虞舜:순임금)에게 그 일을 감독케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태백일사>의 “요임금의 덕이 날로 쇠퇴하자 천왕(단군)은 마침내 우순(虞舜=순임금)에게 명해 함께 요임금의 당(唐)나라를 쳐서 병력을 파견해 주둔시키면서 땅을 나누어 다스리도록 하니 요임금이 마침내 힘이 달려 순임금에 의지해 생명을 보전하고 나라를 양보했다”와 같은 내용이다.
 
그런데 요임금의 도읍은 평양(平陽)으로 산서성 남부 임분(臨汾)이고 순임금의 도읍은 그 서남쪽 황하변에 있는 포판(蒲坂)이다. 현재 재야사학계의 비정대로 만주 하얼빈에 있는 단군왕검의 명령을 받은 순임금이 산서성 서남부까지 가서 요임금을 평정했다는 것이 과연 가능했을까.
 
위 배달국의 신시를 현재의 태원으로 보는 첫째 이유는 신시는 천지가 있는 백산과 흑수 사이다. 현재 천지 부근에 흑수가 흐르는 곳이 아래 3군데 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주 백두산과 흑룡강 △섬서성 태백산과 흑수 △산서천지와 태원 동쪽에 있는 수양(首陽)현을 흐르는 흑수가 바로 그것이다. <신당서 열전동이>에 기록된 압록수(분하)의 발원지인 말갈의 백산에 바로 산서천지가 있다.
 
둘째 이유는 위 <단군세기>와 <태백일사>의 순임금에 대한 기록이 성립하려면 단군왕검의 조선과 요임금의 당나라가 있었어야 했다. 만일 아사달이 신시(태원) 부근이었다면 산서성 남부에 있는 요임금의 평양과 순임금의 포판과는 지척이지 않은가.
 
▲ 압록수는 산서성 분하, 태원은 백산과 흑수 사이. [사진=필자 제공]
 
 
추가적으로 셋째 이유는 신라 때 때 박제상(朴堤上)이 쓴 <부도지> 제17장에 “요가 무리를 모아 묘예를 쫓아내었는데 그 후예 임검씨(왕검)가 여러 사람을 이끌고 부도를 나간 기회를 이용해 그를 습격하니 묘예가 마침내 동·서·북 삼방으로 흩어졌고 요가 곧 9주의 땅을 그어 나라를 만들고 당도를 세워 부도와 대립했다”고 적혀 있다.
 
즉 단군왕검이 비운 부도와 구주(九州)의 땅이 바로 산서성 남부 평양(平陽=臨汾) 일대다. 이 기록은 배달(倍達)국의 제후였던 요가 임의대로 제왕을 참칭하고 반란을 일으켜 왕검이 있던 부도를 무단 점령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부도를 잃어버린 단군왕검은 800인의 무리를 이끌고 아사달에 가서 나라(朝鮮)를 세웠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4번째 이유는 바로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속담 때문이다. 고구려의 중심이 산서성 중남부였다면 당연히 이전의 단군조선과 배달국의 중심도 산서성 중남부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그럼 고구려가 한반도에 없었다는 말입니까. 한반도에서 출토된 고구려 유물은 뭡니까. 고구려가 중국의 산서성에 있었다면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 아닙니까”는 우문(愚問)을 던지곤 한다.
 
그때마다 필자의 대답은 이렇다. “그게 바로 ‘지금의 중국 땅에서 일어났던 역사는 모두 중국사’라는 동북공정에 낚인 겁니다.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이 아니라, 산서성을 중심으로 해서 동쪽으로 한반도까지 뻗친 대제국이었습니다. 중국이 지명이동을 통해 작았던 자기네 역사강역을 엄청나게 부풀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우리의 위대했던 역사가 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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