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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걸(蘇山)의 우리땅 간도대륙

블라디보스토크 역과 연해주 항일투쟁의 요람 신한촌 답사기

연해주 항일투쟁의 중심에서 선열들과 애국지사들께 묵념을 올리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9-15 16:15:36

▲ 이일걸 한국간도학회 회장
연해주의 가을 날씨는 매우 쾌청했다. 아침식사 후 버스에 승차하여 블라디보스토크 역을 방문했다. 1956년 이후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브스키 역에서 블라디보스토크 역까지 9334km를 주파하는데 6박7일간이 소요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시발지로써 블라디보스토크 역에는 큰 의미가 있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아시아의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중국 북부와 바이칼 호, 이르쿠츠크, 노보시비르스크, 옴스크, 예카테린부르크, 우랄산맥을 넘어 모스크바까지 이어지나 길게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핀란드의 헬싱키까지 연장된다. 동서양을 연결하는 교통수단이다. 항공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동서양을 잇는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었다.
 
고색이 창연한 블라디보스토크 역사를 지나 ‘시베리아 황단열차 기념탑’에서 탐사회원들은 기념사진을 찍기에 분주하였다. 옆에는 2차 세계대전 시기에 사용했던 증기기관차가 위치하여 횡단여행의 즐거운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특히 증기기관차를 배경으로 탐방회원들이 줄지어 찍은 단체사진은 연해주 여행의 백미였다.
 
그러나 시베리아 황단열차는 80년 전인 1937년에 연해주 동포 20만여명이 하루아침에 횡단열차 짐칸에 실리어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스탈린 치하의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던 쓰라린 역사에 대한 정당한 보상조차도 소련에 요구하지 못한 한·소 수교 시의 못난 위정자들의 역사의식을 크게 비판했던 일도 이미 28년이 지났다.
 
당시 그들이 내걸었던 세칭 ‘북방정책’은 자신들의 개인적인 업적쌓기에 바빠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 당한 동포들과 그 후손들의 생존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허울뿐인 구호였다. 이와 같은 실익이 없는 정책의 결과는 1년 뒤에 나타났다. 구소련의 몰락으로 인해 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살고 있던 동포인 고려인의 입장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지금까지도 그들은 잃어버린 고향을 두고 낯선 타지에서 차별받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정책결정자들은 강제이주 대가로 ‘고려인자치주 요구’를 왜 하지 못했을까.
 
우리 일행은 블라디보스토크 역을 떠나 아르바트 거리를 지나 주 정부청사가 있는 혁명광장을 둘러보고 연해주 동포들이 살았던 ‘신한촌’으로 향했다. 최초의 연해주 이주 한인은 1863년의 함경도 주민 13가구로 그들은 연추(煙秋)의 지신허 마을에 자리 잡았다. 이후 한인들의 이주자가 늘어나자 1874년 블라디보스토크 시의 서남쪽 아무르만변 부근에 한인촌이 형성되어 개척리(開拓里)로 불렀다. 1911년 러시아는 개척리에 기마병영지를 획정하여, 한인촌의 콜레라를 근절한다는 이유로 개척리의 약 500호의 한인들을 강제 철거시켰다.
 
개척리 47년 거주 역사를 뒤로 하고 한인들이 이주한 곳이 바로 ‘신한촌’ 마을이다. 신한촌은 제법 높은 언덕의 구릉지에 세워진 모습이다. 옛 개척리에 있던 한인사회의 운영기관들을 다시 설립하였으며, 계동학교를 옮겨서 한민학교로 개명하고 교육시설과 교육기능을 확충하였다. 학교 정문 현관에는 태극 문양을 새겨 넣어 민족의식을 함양하는 한편 신한촌 한민회를 조직하여 자치기반을 다졌다. 이와 같은 신한촌의 새로운 활기로 인해 많은 항일투쟁 단체들이 결성되었으며, 1910년 일제의 국권찬탈로 인해 간도, 미주, 본국 등 각지의 애국지사들이 연해주의 신한촌으로 모여 들었다.
 
이와 같은 신한촌의 항일투쟁 열기는 연해주 항일투쟁의 중심이 되었으며, 한인회는 블라디보스토크 지역 1만여명의 한인을 관장하였다. 더불어 교육기관으로는 대학까지 설립하였고 ‘해조신문’ 등 4개의 언론기관과 ‘애국혼’ 이라는 잡지까지 발행하여 신한촌의 영향력은 연해주 전체에 미쳤다. 13도 의군 양성, 성명회(聲明會)의 한국병탄조약 무효선언, 반일 궐기 투쟁, 권업회 결성 등이 신한촌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국내외에 세워진 망명정부 중에서도 가장 먼저 수립되었다.
 
특히 기라성 같은 민족지도자들이 신한촌에 모여 들었으며, 1907년 연해주 남부의 항일단체인 ‘동의회’를 조직하였다. 총장은 최재형, 부총장은 이범윤, 회장은 이위종, 부회장은 엄인섭, 서기는 백규삼, 우영장은 안중근이 담당하였다. 장기적이고 현실적인 항일투쟁 방략과 강구책으로 결성된 것이 ‘권업회’였다.
 
1911년 5월 21일 애국지사 57명이 ‘권업회’ 조직의 발기를 제안했으며 발기 회장으로는 최재형, 부회장은 홍범도가 선출되었다. 12월 17일 권업회 창립회의에서 도총재에는 유인석, 총재에는 최재형․김학민․이범윤이 선출되었다. 회장에는 이상설, 부회장에는 이종호가 선출되었다. 권업회에 관여한 주요 인물은 이상설, 이종호, 이동휘, 최재형, 최봉준, 유인석, 홍범도, 신채호, 이범윤, 윤해, 정재관 등이다. 권업회는 회원이 8579명에 이르렀고, 10개 이상의 지회를 결성하였으며, 10여 개의 학교를 관할하였다.
 
1919년 3․1항일투쟁이 일어나자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3월 17일 대한국민의회를 개최하여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손병희를 대통령, 박영효를 부통령, 이승만을 국무총리로 하는 각료 명단을 발표하였다. 이와 같은 연해주의 항일투쟁은 중심인물에 최재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최재형은 1860년 함경북도 경원에서 출생하였으며, 무역과 군수업으로 거부가 된 그는 연추 마을의 도헌(都憲․군수)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1909년에 대동공보 사장으로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척살을 지원하였으며, 연추에 우신학교를 설립하고 장학금을 지급하여 후배 지도자를 양성하기도 하였다. 1910년 해조신문을 인수하였으며, 1913년 권업회 회장에 취임하여 권업회의 재건을 시도하였다.
 
1919년에는 상해임시정부로부터 초대 재무총장으로 추대되었다. 1920년 4월 일본군이 블라디보스토크, 니콜스크-우수리스크, 하바로프스크에 출병하여 방화를 하고 한인들을 체포, 학살하자 최재형은 피신하라는 가족들의 요청을 거절하고 우수리스크의 자택에서 체포당하여 외곽 사베스카야 언덕에서 순국하였다. 당시 같이 체포된 애국지사는 김이직, 엄주필, 황경섭 등이었다.
 
이와 같이 연해주의 항일투쟁의 중심지였던 신한촌도 1937년 스탈린의 한인강제이주 조치로 폐허가 되었다. 폐허가 된 이 신한촌에 기념비를 세운 이는 해외한민족연구소의 이윤기 소장이었다. 이윤기 소장은 해외한민족연구소를 설립하여 25년 동안 해외에 있는 동포문제와 항일투쟁 및 간도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던 분으로 연구회보까지 발행하였다. 이미 용정의 항일투쟁의 요람이었던 ‘대성중학’의 1993년 복원을 시작으로 윤동주 생가 복원 및 시비 건립, 명동촌 복원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1999년 8월 15일에 세워진 기념비는 백색의 화강암 기둥이 세 개로 세워져 있었고, 앞에는 분향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기념비 앞면의 탑문(搭文)의 내용은 “민족의 최고 가치는 자주와 독립이다. 이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은 민족적 성전이며, 청사에 빛난다. 신한촌은 그 성전의 요람으로 선열들의 얼과 넋이 깃들고, 한민족의 피와 땀이 어려 있는 곳이다. (중략) 해외한민족연구소는 3·1항일투쟁 80주년을 맞아 선열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재러․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마음과 상처를 위로하여 후손들에게 역사인식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이 기념탑을 세운다”였다.
 
기념비 뒷면에는 이 비를 세우게 된 배경과 협조와 협찬 및 건립비를 후원한 단체와 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탐방 회원들은 기념비 앞에서 신한촌 개척에 힘썼던 선열들과 애국지사들께 묵념을 올리고 태극기를 들고서 단체 기념사진도 찍었다. 
 
신한촌에서 바닷가의 해양시민공원으로 내려오자 한인들이 처음 개척했던 ‘개척리’가 보였다. 푸른 하늘과 남색의 바다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데, 블라디보스토크를 개척했던 한인들의 후손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하늘엔 뭉게구름만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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