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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걸(蘇山)의 우리땅 간도대륙

민족의 뿌리 찾아 나선 몽골 알타이산맥 탐험

우리 고대사의 비밀을 밝혀줄 몽골 적성총을 찾아 떠나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10-11 17:50:55

▲ 이일걸 한국간도학회 회장
몽골 서부 알타이산맥 답사단 구성은 몽골 적석총 이야기가 발단이 되었다. 2017년 중국의 중원지역인 정주, 낙양, 서안, 안양, 제남 등을 답사한 후 몽골 여행을 다녀온 ‘고조선유적답사단’ 안동립 회장과의 대화 중에 몽골 적석총 이야기를 안 회장이 하기 시작하였다. 몽골에서 집안의 장군총 같은 적석총 돌무덤을 수천 개를 보았다는 것이다. 수 차 고구려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평소 관심을 가진 나는 고구려 적석총의 뿌리를 알고 싶었다.
 
지금까지 고구려 적석총의 뿌리를 명확하게 연구한 논문은 보이지 않는다. 고구려 지역에 산재된 수만 개의 적석총은 어떤 경로를 통해 고구려의 주요 매장 문화로 자리 잡았는지를 연구하고 싶었다. 또한 우리 민족의 기원에 대한 여러 가지 학설, 즉 시베리아설, 몽골 바이칼호 유래설, 남방유래설, 한반도 자생설 등이 제기되었지만 정확한 근거들이 매우 미흡하였다.
 
이에 필자는 오래 전부터 고구려 적석총의 뿌리와 유래를 고찰하면 우리 민족 기원의 뿌리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으며, 이에 대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수천 년 동안 비바람을 맞아가며 묵묵히 견딘 고구려의 적석총만이 그 의문의 우리 고대사의 비밀을 밝혀줄 것으로 믿었다. 더구나 고구려 유적답사단을 여러 차례 이끌고 다녀오면서 간도 지역의 고구려 국내성이라고 알려진 집안을 답사할 때마다 의구심이 갔던 세 가지 사실은 항상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첫째, 4세기 광개토대왕 이후 동북아의 패자였던 고구려가 과연 압록강가의 협소한 집안으로의 후기 수도를 천도한 사실이 정말일까라는 의문이었다. 둘째, 집안의 우산 아래 덩그러니 지대석도 없이 홀로 서 있는 거대한 ‘광개토대왕릉비석’의 자리가 본래의 자리일까라는 의구심이었다. 혹시 다른 곳에 세웠던 비석을 옮겨온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이었다. 셋째는 아시아의 피라미드라는 거대한 ‘장군총’은 누구의 무덤이며, 집안과 환인에 존재하였던 수 만 개의 적석총의 진짜 인물들과 적석총의 실체는 누구일까 하는 것이었다.
 
광복 75년이 넘었어도 일제식민사관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역사계의 현실은 실로 암흑 속의 미로에 갇혀있는 상황이다. 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가 왜곡‧조작한 우리의 역사를 진실인양 국민들을 가르친 지 오래 세월이 지났지만 ‘식민사학’이라는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동안 내가 품었던 집안의 국내성에 대한 의구심은 풀렸다. 최근에 고구려 후기 수도라고 내세웠던 대동강가의 평양이 장수왕이 천도한 고구려 수도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장수왕이 천도한 고구려 후기 수도는 요하 부근의 요양(遼陽)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따라서 집안이 고구려의 국내성이라는 사실도 허구임이 밝혀진 것이다. 또한 고구려 최초의 수도로 삼았던 졸본성의 존재도 환인지역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이와 같은 우리 고대 역사의 왜곡‧조작은 1920년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와 ‘조선교육연구회’가 편찬한 심상소학일본역사보충교재교수참고서에서 비롯되었으며, 1925년 설치한 ‘조선사편수회’가 1932년부터 발간한 조선사 35권에서 ‘타율성론’, ‘정체성론’, ‘반도사관론’ 등 일체의 ‘일제식민사관론’을 적용하여 우리 역사의 진실을 왜곡‧조작했다.
 
광복 이후 70여 년 동안 일제식민사관을 앵무새처럼 국민들을 교육시킨 강단사학을 비판하면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일제식민사학 추종하는 교과서 거부 운동’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와 같은 우리 역사의 식민사학 피해는 매우 크며 그 뿌리가 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나는 안동립 회장의 몽골적석총 이야기에 그만 빠져들었다. 그리고 빠른 시기에 몽골답사여행을 추진하자고 채근하였다. 이에 안 회장은 나에게 답사단장을 맡아달라고 해서 쾌히 받아들이고 답사 참여 회원을 모집하니 25명의 답사단이 구성되었다.
 
특히 나의 친구 세 명과 몽골 울란바토르 대학의 양혜숙 박사도 참여토록 설득하였으며, 몽골사가 전공인 양 박사가 통역을 맡도록 하였다. 그리고 6월18일부터 28일까지의 9박10일 간의 일정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4륜구동 6인승 2대와 5인승 2대 및 3인승 1대, 화물차 1대, 몽골인 6명이 포함된 총 31명의 답사단이 구성됐다.
 
답사단을 5개조로 나누고 각 조장을 임명하였다. 답사 총 이동거리는 약 2560㎞이며, 숙박시설은 여관 2일, 게르 3일, 호텔 2일로 숙박하기로 예정하였다. 2일간의 텐트 숙박이 문제였기에 몽골의 낮밤의 온도 차가 큰 점을 감안해 침구 및 겨울옷도 준비했다.
 
드디어 6월18일 인천공항에서 답사단은 오후 5시경에 만나 각 조별 휴대물품을 확인한 후 출국수속을 마치고 대한항공 편으로 오후 7시35분에 이륙하였다. 3시간 후 밤 10시35분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했다. 답사 준비 차 먼저 도착한 신 사장과 양 박사 및 승용차 6대를 운전할 젊은 몽골인 6명을 처음 대면했다.
 
캄캄한 밤중에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한 답사단이 각 조별로 할당한 식량, 반찬, 간식류, 텐트 기구 등을 배당 받아 승용차에 싣는 작업 시간이 두 시간이나 소요되었다. 자정을 넘기고 겨우 1시가 넘어 출발할 수 있었다.
 
울란바토르 변두리 시내의 주유소에서 승용차에 주유를 하고, 별도의 연료통에도 휘발유를 가득 실었다. 몽골 사막에서는 주유소가 없기 때문이었다. 캄캄함 밤이라서 도로가 포장도로인지 비포장도로인지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울란바토르 시내 도로 상황도 매우 좋지 않다고 하였다. 따라서 출근시간에는 교통 체증이 심하기 때문에 새벽에 출발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우리 답사단은 465㎞ 거리에 있는 첫 목적지인 ‘아르웨이헤이르’를 향해 승용차 헤드라이트를 켜고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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