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을 호령한 정복군주 동성왕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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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을 호령한 정복군주 동성왕⑥

신라와의 복잡한 혼인관계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0-10-22 10:15:51

『삼국사기』에 따르면 동성왕은 서기 493년(동성15) 신라귀족 이찬(2관등) 비지(比智)의 딸을 비로 맞이한다.(王遣使新羅請婚羅王以伊飡比智女歸之) 이 시기는 동성왕 치세에서 최고의 절정기에 해당한다. 동성왕은 488년과 490년 두 차례에 걸친 북위와의 전쟁을 모두 승리로 이끌며 대륙 산동성 일대를 백제영토로 편입한다. 또한 489년 대왕에 오르며 강력한 중앙집권의 단일지도체제를 확립한다. 당시 동성왕의 백제는 가장 방대한 영토와 강력한 전제군주체제를 갖춘 대제국이다.

백제-신라 혼인동맹의 오해

그렇다면 어떻게 신라는 귀족출신 여성을 동성왕의 비로 보냈을까? 혹시 동성왕이 다스리는 백제의 위상이 한층 높아져 어쩔 수 없이 보험을 든 것일까? 우리는 이를 백제-신라간 혼인동맹으로 이해한다. 이유는 『삼국사기』가 남긴 백제-신라간의 유일한 혼인기록이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혼인동맹은 왕실의 왕녀를 주고받는 혈연적 결합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동성왕의 경우는 왕실여성이 아닌 귀족여성이며 또한 쌍방이 아닌 일방이었다.

혼인동맹의 효시는 434년 백제 20대 비유왕과 신라 19대 눌지왕이 체결한 ‘나제(제라)동맹’이다. 비유왕은 여동생 소시매(蘇時昧)를 눌지왕의 비로 보내며, 눌지왕은 딸 주(周)씨를 비유왕의 비로 보낸다.

이 성과는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남벌전쟁때 발현된다. 당시 신라 20대 자비왕은 지원군을 보내 장수왕의 추가적인 남진을 억제한다. 이때 신라에 파견된 훗날 백제의 22대왕이 될 문주왕이 지원군을 얻어내는 과정에서 신라귀족 보신(宝信)의 딸 보류(宝留)와 혼인한다. 문주왕은 눌지왕의 딸 주씨가 낳은 아들이기도 하다.

이후 문주왕의 뒤를 이은 23대 삼근왕은 또다시 신라귀족 보기(宝器)의 딸 수기(首器)를 비로 맞이한다. 그러나 문주왕, 삼근왕이 연거푸 단명하자 뒤를 이은 동성왕이 보류와 수기를 거둔다. 동성왕은 지아비(문주왕·삼근왕)를 잃은 두 신라여성을 자신의 비로 삼는다.

동성왕의 혼인은 계혼

특히 동성왕은 수기(首器)를 통해 1남 2녀를 얻는다. 아들 도마와 딸 손아, 운아이다. 동성왕은 무척이나 수기를 사랑한 것이다. 『신라사초』에는 서기 492년 수기가 29세로 갑자기 죽어 동성왕이 신라 21대 소지왕에게 수기(首器)를 대처할 새로운 여성을 요구한 것으로 나온다.(牟大妃首器卒年二十九其二女曰遜兒運兒一子曰都馬王爲之擧哀牟大請繼婚命朝霞采其可者) 이때 소지왕이 선택한 여성이 바로 이찬 비지(比智)의 딸이다. 이름은 요황(瑤黃)이다.(將以比智女妻牟大故也比智女瑤黃謁王及天宮于龍宮)

결과적으로 동성왕이 맞이한 신라귀족 이찬 비지의 딸 요황은 수기(首器)가 죽어 이를 대처한 계혼(繼婚)이다. 따라서 동성왕과 요황의 혼인을 또 하나의 나제동맹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이다. 이는 『삼국사기』가 이전 신라여성이 백제왕실에 시집 온 내용은 모두 삭제하고 요황의 경우만 달랑 남겼기 때문이다.

493년 신라귀족 출신인 요황이 동성왕의 비가 되면서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의 공격에 공동 대응한다. 이듬해인 494년 견아성(현 충북 괴산) 전투에서 백제는 신라에 군사를 보내 지원하고, 또 이듬해인 495년 치양성(현 황해도 배천) 전투에서 신라는 백제에 군사를 보내 지원한다.

참고로 『신라사초』 기록에는 동성왕의 직계자녀가 적잖이 나온다. 확인된 이름만 9명이다. 아들은 소말지, 도마, 순기 등 3명이고, 딸은 소아, 원지, 마지, 손아, 운아, 백수 등 6명이다. 모두 신라출신 부인들을 통해 얻는 자식들이다. 또한 동성왕의 부인들 중에는 신라출신뿐 아니라 백제귀족 출신 여인도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출산했다고 보면 동성왕의 직계자녀는 상당한 숫자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성왕은 자신의 직계자녀로 왕위를 잇지 못한다.

『삼국사기』가 쳐놓은 역사의 가림막이 너무 짙다.

정재수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