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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데일리 기자수첩

CJ대한통운의 사과, 말보단 실천할 때

오창영기자(cyoh@skyedaily.com)

기사입력 2020-10-26 00: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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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창영 기자 (산업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된 이후 우리의 일상은 크게 바뀌었다. 얼굴을 마주하고 이뤄졌던 대다수의 소비 행위는 코로나 감염을 막기 위한 비대면 방식으로 대거 전환됐다. 이에 온라인 주문을 통한 배송 사업을 영위해 온 택배 업계는 다른 산업계와 다르게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식재료와 생필품, 의류 등 대부분 품목의 온라인 주문량이 폭증하면서 그렇잖아도 힘든 직종으로 손꼽히던 택배 노동자의 노동 강도는 더욱 심화됐다. 하루에 할당된 물량을 처리해야 하다 보니 하루에 20시간 가까이 배송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살인적인 일정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는지 운명을 달리한 택배 노동자들이 하나 둘 늘어나게 됐다.
 
택배 노동자 사망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크게 늘자 그동안 묵묵히 상황을 주시해 온 택배 회사들이 움직였다. 한진택배에 이어 국내 택배업계 1위인 CJ대한통운도 책임을 통감한다는 내용이 담긴 사과문을 지난 22일 발표했다. 더불어 택배 종사자 보호 대책도 함께 내놨다.
 
박근희 CJ대한통운 대표는 “최근 택배 업무로 고생하다 유명을 달리한 택배 노동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도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전한다”며 “연이은 택배 노동자들의 사망에 대해 회사를 맡고 있는 대표이사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코로나로 물량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현장 상황을 세밀하게 챙기지 못했던 부분은 없었는지 되묻고 살피고 있다”며 “대표로서 책임지고 이번 대책이 확실히 실행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박 대표의 사과문 발표 이후 CJ대한통운은 택배 노동자들의 작업시간과 강도를 대폭 낮출 수 있는 종합 대책을 내놨다. 택배 분류 작업에 별도 인력 4000명을 투입하기로 하고 자동화시설을 확대해 작업 강도를 낮추기로 했다.
 
CJ대한통운은 당장 다음달부터 택배 노동자들의 인수 업무를 돕는 분류 작업 인력을 4000명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현재 택배 현장에는 자동분류설비인 휠소터(wheel sorter)가 구축돼 있는데 분류 작업 인력 추가로 택배 노동자들의 작업 시간을 더욱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CJ대한통운의 설명이다. 인력 추가로 매년 500억원 가량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분류 작업 인력 투입으로 택배 노동자들은 오전 업무 개시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시간 선택 근무제도’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지역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오전 7시부터 12시 사이에 업무 개시 시간 조정이 가능해져 전체 근무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택배 노동자들의 산재보험 가입 여부도 직접 조사하고 산재보험 가입도 의무화할 계획이다. 또 상생협력기금을 조성해 택배 노동자들의 복지 확대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박 대표는 “CJ대한통운은 택배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경영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현장 혁신 및 관련 기술 개발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CJ대한통운이 택배 노동자 근무 환경에 대해 개선 의지를 내비친 것은 택배 노동자인 고 김원종(48)씨가 숨진 지 2주 만의 일이다. 지난 8일 서울 강북구에서 택배 업무를 수행하던 김씨는 배송 중 호흡 곤란을 호소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CJ대한통운이 택배 노동자 사망 사건에 대한 사과문과 대책을 발표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발표 시점이 한 박자 늦은 감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사과문·대책 발표에 하루 앞선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CJ대한통운 강남물류센터를 직접 시찰하자 그제서야 CJ대한통운이 택배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당초 국회 환노위 소속 국회의원들은 박 대표를 비롯해 한진택배와 쿠팡 대표 등을 국감 증인으로 신청해 택배 노동자 문제를 다루고자 했다. 그러나 이스타항공의 전 경영자였던 무소속 이상직 의원 증인 신청 등을 두고 잡음이 일면서 결국 불발됐다.
 
이를 대신해 환노위는 21일 CJ대한통운 강남물류센터를 현장 시찰하고 박 대표, 택배노조 등과 함께 비공개 간담회를 15분간 진행했다.
 
환노위는 분류 작업을 택배 업체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동화된 시스템을 통해 분류를 하더라도 오분류되는 물량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탓에 이들 물량은 택배 노동자에게 오롯이 전가되기 때문이다. 이에 CJ대한통운은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등 택배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를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또 택배 노동자 근무 환경도 대폭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CJ대한통운이 내놓은 대책에 따라 향후 택배 노동자들의 삶은 기존에 비해 크게 개선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대책을 내놓기까지 시간을 너무 허무하게 흘려보낸 것 같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택배 노동자가 사망한 후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지 않고 있던 CJ대한통운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현장 시찰에 나서자 뒤늦게 사과문을 발표하고 대책을 내놓은 것은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와 택배종사자들의 문제에 선제적으로 조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지금도 늦지 않았다. 말뿐인 사과가 아니라 대책을 실천해 택배 노동자 근무 환경 및 처우 개선을 위해 적극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다.
 
[오창영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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