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고아 초등생에 구상금 청구 바로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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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등 취약계층 상대 訴제기 전에 소송관리위서 심의
금융위, 청와대 청원게시판 파문 후속조치로 사전심의 확대

한원석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0-11-08 13:00:58

▲ 앞으로 보험회사가 미성년자 등 취약계층을 상대로 구상권 청구를 하기 전에 소송관리위원회(소송관리위)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지난 3월 한 보험사가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고아 초등학생을 상대로 수천만원의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한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다. ⓒ스카이데일리

앞으로 보험회사가 미성년자 등 취약계층을 상대로 구상권 청구를 하기 전에 소송관리위원회(소송관리위)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한 손해보험사가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고아가 된 초등학생을 상대로 수천만원의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해 논란을 일으킨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다.

금융위원회(금융위)는 보험사의 소송관리위에서 사전심의 범위를 미성년자 등 취약계층을 상대로 한 구상소송과 소멸시효 경과 채권에 대한 구상소송까지 확대한다고 8일 밝혔다.

소송관리위는 보험사가 소비자를 상대로 한 소송 제기 여부를 심의하는 내부 기구다. 현재 보험사는 소비자를 상대로 한 소송 남용을 예방하기 위해 △소송관리위 사전심의 △임원 이상의 최종 결재 △준법감시인 합의 등 내부통제 장치를 운영하고 있다.

소송관리위 사전심의 부문에서 △채무부존재 확인소송 △지급보험금 반환청구소송 △보험계약 무효 확인소송 등 소비자 상대 소송의 제기 여부를 심의하고 있다. 하지만 구상금 청구소송은 그동안 심사대상에서 제외돼 있었다.

구상금 청구소송이란 자동차보험, 화재보험 등에서 음주, 뺑소니 등 제3자의 행위로 사고가 발생한 경우 보험사가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우선 지급한 후 이를 환수하는 소송을 말한다.

이러한 한계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금융당국은 보험사의 소송관리위 심의대상에서 미성년자, 한정·금치산자 및 경제적 취약계층에 대한 구상금 청구소송을 포함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소멸시효가 경과한 채권에 대해서는 취약계층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소비자를 대상으로 심의하기로 했다.

구상금 청구소송에서 소송 제기 결정권자를 현장 부서장에서 임원 이상으로, 준법감시인 합의는 임의사항에서 필수사항으로 바꾼다. 금융위 관계자는 “위원회 심의 후 소송제기 여부를 최종 결정할 때 임원 이상의 결재 및 준법감시인 협의 등을 거치도록 해 소송 제기의 적정성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도록 할 것이다”고 말했다.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이호연 기자] ⓒ스카이데일리

또한 보험사의 소송 현황 비교·공시도 확대된다. 현재 반기별로 생보·손보협회 홈페이지에 보험회사별로 보험금 지급관련 소송제기 건수와 보험금 청구건 대비 소송 제기 비율 등을 비교․공시하고 있다. 하지만 보험회사의 구상금 청구소송은 비교·공시에서 제외된 상태다. 금융당국은 이러한 좁은 비교·공시 범위를 소송관리위 개최 및 소송심의 건수, 심의결과 등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금융당국은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내부 통제를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우선 미성년자, 장애인, 기초생활수급권자 등 실질적으로 채무상환 능력이 없는 채무자에 대해 채무를 감면한다.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대출채권과 동일하게 원칙적으로 소송 등을 통한 시효연장을 제외한다. 일부 무리한 추심사례 재발방지를 위해 시효완성 구상채권에 대한 채무면제 및 면제사실 통지·공개를 내규화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소송관리위원회 심의대상 확대 및 취약계층 보호장치 강화에 대한 개별 보험사 내규개정을 연내 협의·추진하겠다”며 “소송현황 비교·공시 확대를 통해 보험업 감독규정 및 시행세칙, 협회 공시규정 등 개정을 내년 상반기 중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조치는 지난 3월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고아가 된 초등학생에게 소송을 건 보험회사가 어딘지 밝혀달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오면서 사회적 논란이 일어난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 청원에 따르면, 2014년 교통사고로 인해 한 초등학생의 아버지가 사망하자 사망보험금 1억5000만원이 어머니와 아이에게 각각 6:4의 비율로 지급됐다. 후견인인 80대 할머니에겐 6000만원만 주어졌고, 아이의 어머니는 베트남인으로 현재 연락두절 상태여서 당사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9000만원은 보험사가 가지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한 재벌그룹 계열 손해보험사가 5년이 넘은 이 사건 치료비와 합의금으로 쓴 돈 5300만원 중 절반인 2600만여원을 초등학생에게 청구한 점이다. 이에 보험사가 지급할 돈은 비율 따져가며 일부만 주고 구상권은 보육원에 있는 고아에게 100% 비율로 청구했다며 국민적인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윤승준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한원석 기자 wshan@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