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활비 의혹, 전수조사 수용하면 끝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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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정치전문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0-11-11 00:02:09

1980년대 암행어사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선풍적 인기를 끈 바 있다. 탤런트 이정길‧임현식 등이 출연한 이 드라마는 갖은 악행을 일삼던 고을 수령을 암행어사가 일망타진하는 내용으로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그런데 창작물에 등장하는 위풍당당한 모습과 달리 암행어사는 3D직종 중에서도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극한직업이었다.

우선 암행어사는 임금 직속 비밀감찰관으로서 활동 자체가 1급 기밀이었다. 동선이 유출될 경우 암행 자체가 불가능해지기에 이들은 극소수의 수행원만 거느린 채 움직였다. 자연히 국토의 70％를 차지하는 산지에 숨은 산적들에게 좋은 표적이 됐다.

감찰 과정에서도 암행어사들은 위험에 놓였다. 비위를 행한 지역 수령들이라고 해서 손 놓고 오랏줄을 받을 리는 없었기에 갖은 루트로 암행어사 동선을 파악하고 때로는 암살도 기도했다. 실제 성공한 사례들도 있어서 영조실록에는 독살이 사인으로 추정된 전라도 암행어사 홍양한, 고종실록에는 의문사한 경상우도 암행어사 조병로의 이야기가 나온다.

감찰이 끝나도 끝난 게 아니었다. 치열한 당파싸움 속에 암행어사들은 자신이 파면했던 관리들로부터 훗날 집단탄핵을 당하는 등 혹독한 정치보복을 겪었다. 실례로 다산 정약용은 파직 당시 경기도 관찰사였다가 복직 후 영의정에까지 올랐던 노론벽파의 거두 서용보로 인해 18년 동안 귀양생활을 해야만 했다.

고생한 만큼 보수가 좋냐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라서 암행어사는 정규 관직이 아니었기에 녹봉이나 업무추진비가 공식 지급되지 않았다. 순조 시절 평안도 암행어사를 지낸 박내겸은 자신이 저술한 서수일기에서 “조사를 끝내고 관청에 공개행차하자 기생‧관리들이 ‘어사또 용모가 지난번 구걸하러 왔던 길손과 흡사하다’고 말하며 웃었다”고 밝힐 정도였다. 이들은 명색이 비밀감찰관이었기에 신분을 밝히고 관미(정부미)를 요구할 수도 없었다.

산적에게 죽을 뻔하고, 유지에게 암살당할 뻔하며, 권력자에게 보복당하고, 주린 배로 구걸하면서까지 부패척결에 앞장섰던 암행어사들이 기댈 건 오로지 ‘특수활동비(특활비)’였다. 조선판 특활비는 암행의 원천이었으며 조선왕조 500년의 근간이 됐다. 비록 쥐꼬리만한 액수였지만 이마저도 없었다면 부패척결은 불가능했고 조선왕조도 단명을 면치 못했을 것이라는 게 학계 시각이다.

오늘날의 특활비 존재이유도 조선시대와 다르지 않다. 특활비는 ‘수사기밀 등 특수활동’이 집행목적이다. 한마디로 암행어사처럼 은밀히 부정부패를 다스릴 필요가 있을 때 영수증 없이 쓸 수 있도록 특별히 마련한 돈이 특활비다.

그런 특활비가 고위공직자들의 ‘눈 먼 돈’으로 전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다. 법무부는 대검찰청(대검)에, 대검은 법무부에 유용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공직기강 확립을 위해 주머니를 털어 특활비를 마련해줬던 국민은 도리어 공직사회 부패에 특활비가 쓰인다는 의혹 앞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헌법 7조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못 박고 있다. 공복(公僕)인 공무원은 주권자인 국민에게 한 치의 숨김도 없이 예산집행 내역을 보고할 의무가 있다. 법무부와 대검은 물론 청와대 등 모든 공직사회를 대상으로 특활비 전수조사를 하자는 야당의 목소리를 여권이 수용해야 하는 까닭이다.

[오주한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오주한 정치전문기자 jhoh@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