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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182>

상고대사(上古代史)에서 밝혀진 우리역사(歷史)

세계시원국(始源國)인 우리역사 제대로 알아야 한국인이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11-21 16:17:35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미국의 복음서 저자인 R. A Torry(1856~1928)는 “인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고 말했다.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찬란한 우리나라 역사와 정통문화가 세계정상임을 바로 아는 것이다. 
 
G. 하비와 H.로이드(Gabriel Harvey, Humphrey Lloydis)는 “자기조국을 모르는 것보다 더한 수치는 없다”고 말했다. 2010년 9월 C20(Culture 20) 폐막토론회의에서 한국의 문화는 세계정상으로 ‘질투를 느끼게 하는 문화’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한국인은 이를 모른다.  
 
이탈리아 대표 비토리오 미소니는 “한국인은 자신의 나라를 더 자랑스럽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업자 한국인을 자주 만나지만 그들이 자국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역사 문화를 너무도 모르고 있다.
 
78만년 전 지구는 북극과 남극이 뒤바뀌고, 5만년 전 대빙하기는 4번 이상으로 사막화가 되자 지구의 생명이 28%나 동사(凍死)하고 1만4000년 전~1만년 전 지구 인구는 400만~1000만으로 추산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은 2만~1만 8000년 전 북반구에도 30%의 두꺼운 얼음으로 덮혀 약1만2900년 전 1200년간의 혹한기를 거친 것으로 보고 있다. 북아메리카 중심부는 얼음두께 4Km, 유럽은 2~3Km로 맘모스 등 동식물이 고갈되고 인류도 급격히 감소했다고 한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은 아프리카가 빙하 냉기류(冷氣流)를 차단하는 높은 산맥이 있어서 살 수 있었고 그 외 남유럽, 중동, 인도, 동아시아는 옛 우리 땅 정도라 했다. 이는 1851년 ‘미국지질학협회’가 참여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보는 관점이다.
 
호주 <시드니대학고고학센터>는 1만년 전 서한국(西韓國;中原) 드넓은 평원(平原)과 제주도는 대륙의 일부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지진(地震), 화산(火山)이 없어 세계최대 공용알 화석지(보성선소해안, 시화호, 해남 군위)가 우리나라였다.
 
1990년 콜로리라도 고생물학자(古生物學者)인 M. 라클리 교수는 “한국은 고대 수도(首都)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러시아의 역사학자 푸틴은 러시아는 환국이었다. 오늘은 우리나라의 상. 고시대의 우리역사를 고고학적으로 일부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상고시대(上古時代) 우리역사 면모(面貌)
 
일반적으로 인류의 시원은 아프리카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학설도 여러 개로 갈린다. 빙하기(氷河期) 때 강우량(降雨量)이 10분의1로 줄어들어 아프리카가 사막화 되고, 해수면(海水面)이 140m나 낮아져서 제주도와 지금의 중국대륙에 걸어서 다녔다. 
 
제주도 고산리(高山里)에는 상고시대 유적 옥(玉)이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아프리카에서 150명~200명 이내의 사람이 출발했다고 한다. 별을 보고 동진해 갔다고 하는데 발해(渤海)까지 갔다고 했다. 이곳도 사막화(砂漠化)가 이어져서 먹을 것이 있는 곳은 강이나 호수에 먹을 것이 있기 때문이다.
 
상고시대 장흥리신부리 2만5500년~1만8000년 전 마제석기, 숫돌이 나온다. 서양에서는 왕가에만 숫돌이 있다. 또 세계최초의 자(尺) 눈금돌 20.6cm~0,4cm도 단양(丹陽)수양계 2尺가 나왔다. 10만개 이상 나왔다고 했다. 마제석기(磨製石器) 돌검(劍)은 우리 땅에서만 나온다.
 
서양에서는 신석기시대를 1만 년 전이라 하나, 캘리포니아대 브라운교수는 마지막 빙하기가 2만~1만8000년전이라 하면서 우리나라는 1만8000년 전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로 벼농사도 이때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8000년 전 요서, 요동, 한반도 북부는 동일문화권이었고 한국은 구석기가 없었다. 이 땅의 신석기시대 불(火)과, 철기문명국인 우리는 대륙을 지배했다. 
 
서양은 농경시대 2000년 전이라 구분했다고 했는데, 하바드 대 스펜서 웰스 교수는 “인류(人類)가 한 지역에 정착해 농사(農事)를 시작한 것은 불과 1만년 전이라 했다. 그런데 우리는 1만년보다 5000년이 빠른 1만5000년에 벼농사를 했고, 답(畓)이라는 글자도 우리만이 갖고 있다. 지나(支那)와 일본(日本)에는 답(畓)이 없다.
 
콩두(豆), 태(太) 원산지 만주, 두만강이고 서양인은 인디언 콩이라 한다. 미국에 심었기에 서다. 건너간 한국문화다. 제(齊;685~643)나라 환공(桓公)은 만주에서 콩을 가져다 보급했다. 여가 문화를 이해 못하면 우리는 세계로 뻗어 나갈 수가 없다. 우리의 위대함은 찬란한 역사가 있음에서다. 70년대 동경에서는 [조선역사 5000년전(朝鮮歷史5千年展)]이 열렸는데 제일 먼저 등장하는 7점이 숭실대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8000년전의 빗살무늬 토기였다. 당시 전시된 신라금관을 보며 모든 관객이 놀라고 있었다. 
 
한반도에도 충북 옥천(玉川) 대천리(大川里) 오곡(五穀) 5000년~5600년 전 벼, 조, 기장, 보리, 밀 재배를 했다고 하는데 지나는 없다. 평양 삼석구역 남경유적지에서 6000년 전 벼, 조, 기장, 보리, 밀, 콩, 옥수수를 재배했다. 양자강(揚子江) 이남의 왜(倭)는 5300년 전, 지나는 3600년 전 이를 재배했다고 한다. 
 
우리 역사기록 잘못되어 있다
 
우리나라 상고사와 고대사를 제대로 아는 자가 얼마인가! 1%도 아니 되는 것 같다. 환국(桓國), 배달국(倍達國)은 거론도 않으며 유식한 사람들까지도 ‘반만년역사’라 하며 우리 국조가 단군이라 하는데 아직도 단군신화 말하는 자도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사기(史記), 건릉지(健陵誌)에는 단군(檀君)이 없다. 왜인가! 1950년대 타이완(臺灣)에서 간행(刊行)한 삼국지(三國志) 30권에는 단군이 있다. 
 
[삼국사]를 지운 김일연(金一然)은 우리 역사를 한반도로 가져 오려는 자이고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三國史)에는 단군을 지웠다. 신채호(申采浩)는 ‘동서를 바꿔서라도 반도 안에 맞추어라’ 고 해 우리역사는 대륙사(大陸史)인데 반도(半島)안에 갇혀 있다. 
 
단군왕검(檀君王儉)의 탄신내력은 대야발(大野勃)이 지은 [단기고사(檀奇古史)]에는 단군의 가계는 환웅(桓雄)의 아들로 이가 제1세 단제(檀帝)이시니 단군왕검으로 환웅의 자(子)요, 환인(桓因)의 손(孫)이라 하였다. 우리는 이 단군왕검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 
 
여기서 왕검이란? 임금이라는 말의 이두(吏讀)를 가리키는 한문식(漢文式) 명칭이다. 고조선의 임금이던 단군은 광활한 대륙과 요동땅을 통치(統治)했던 우리조상들로 실재의 인물이다. 환국과 배달국, 고조선과 단군은 엄연히 실재했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의 역사학자 구사카 히로시(日下 寬), 쓰보이 구에조(坪井九馬三)가 일본어로 번역해 1902년 도쿄대학과 1916년 경성조선연구회에서 원문과 함께 출판한 [교정(校訂) 삼국유사(三國遺事)]는 고조선의 기록 중 환국(桓國)을 정확하게 기록해놓은 [삼국유사] 정본(正本)의 증거자료이다.  
 
고조선은 배달국에서 환웅이 데리고 온 무리가 3000명의 무리는 거의 군대(軍隊)였다. 여기에는 3정승(政丞)이라 할 수 있는 우사(雨師), 운사(雲師), 풍백(風伯)과 뇌공(雷公) 등 행정적 직임(職任)을 맡은 사람들도 따로 있었다. 
 
그 당시 환웅이 거느린 군대는 소규모 군대가 아니다. 고조선 시대의 인구가 약 1000만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4300년 전 3000명은 대단한 인구이동이었다. 
 
한편 우리는 단군을 국조(國祖)로 하면서도 단군의 신상(神像)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단군신상은 일본에 있다. 가고시마(鹿島) 옥산진구(玉山神宮), 미다마진자(美玉神社)에 있는데 임진왜란 때 가지고 갔다. 이것부터 반환청구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단군왕검의 탄생내력도 모르는 무지 불식시켜야
 
고조선 단군 왕검의 출생내력도 모르고들 있다. KBS 역사스페셜을 보노라면 아직도 신화를 말하고 있는데 참으로 무지한 일이다. 단군은 서기전 2370년 음력 5월2일, 인시(寅時) 아버지 환웅과 어머니 교웅(蟲+喬 熊)간에 지금의 중국 연길시(延吉市) 하천평(下天坪)에서 탄생(誕生)했다. 이것을 모르고 있다.
 
역사학자는 물론 지식층들 조차도 이 사실을 모르는 것은 수치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단군을 국조로 하고 있는데 단군 이전에 환인과 환웅을 모르고 있다. 이것도 제대로 정립해야 한다. 우리 국조는 상고시대로 올라가야 한다. 환인과 환웅을 빼놓는 것은 상고사를 부인하는 행위다.
 
그리고 단군초상도 위엄과 존엄 그 기상이 당 태종 못지않게 웅장하게 그려야 한다. 시골할아버지 같은 지금 영정은 촌스럽기 그지없다. 이도 일제가 원한 초상이다.
 
그리고 단군신상(檀君神像)은 우리나라에 있는가? 없다. 일본이 가져갔는데 그 반환 하도록 해야 한다. 개천절(開天節)도 단군을 국조로 하면서 제사(祭祀)를 드리면서 그 신상(神像)도 없다. 그리고 그 초상(肖像)도 위엄과 장엄한 기상(氣像)과 무인적(武人的)인  위상(位相)을 갖춘 웅지(雄志) 초상화(肖像畵)로 바꿔야한다. 
 
지금의 단군왕검의 초상은 고대 영웅적기상(英雄的氣像)과 위엄이 결여되어 있으며 많은 제후국(諸侯國)을 거느린 통치자(統治者)의 위상이 아니다. 인자한 시골할아버지의 초상으로 일제강점기의 나약한 인상을 심어줄 뿐이다. 이제는 대륙을 호령한 위대한 단군왕검의 모습으로 탈바꿈 해야한다. 
 
세계시원국(世界始源國)이요, 5대문명(五大文明)을 일으킨 위대한 우리 민족의 저력(底力)과 기상을 만방에 알림으로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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