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핀테크 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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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원석 기자페이지 + 입력 2020-12-03 00:02:42

금융가에서는 이주열 한국은행(한은) 총재의 발언이 화제다. 이 총재가 지난달 26일 열린 한은 기자간담회에서 평소의 선비 이미지를 벗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날 이 총재는 10분 넘게 금융위원회(금융위)에 대한 작심 비판을 펼쳤다. 최근 국회에 상정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때문이다.

이 총재가 문제 삼고 있는 법안 내용은 빅테크·핀테크 내부 거래를 금융결제원 시스템에서 처리하도록 하고, 이 업무를 금융위가 관리·감독하겠다는 부분이다. 금융사들의 지급·결제 시스템을 운영·관리하는 금융결제원은 한은 관할인데, 금융위가 빅테크·핀테크 규제를 핑계로 금융결제원 탈취를 시도하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실제로 금융결제원은 1986년 한은과 시중은행들이 출자해 만든 지급·결제 전문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이 총재가 사원총회 의장을 맡고 있다.

한은에선 한은 총재가 수장을 맡은 기관을 금융위가 감독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개입하겠다는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총재도 “중앙은행에 대한 과도하고 불필요한 관여다”라면서 “빅테크에 대한 리스크 억제를 하겠다는 게 개정 목적인데 징계권 등 각종 제재권을 가지고 포괄적으로 감독하겠다는 것은 지나치다”고 날을 세웠다.

이 총재는 지급·결제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건 최종 대부자(금융시장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최종적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기관) 기능을 가진 중앙은행의 태생적 업무이자 고유 기능이라면서 “다른 나라에서도 예외가 없다”고 강조했다. 결제 불이행 사태가 생기면 금융 시스템이 마비되고 경제가 혼란에 빠지는데, 이런 일이 없도록 어느 나라건 돈을 찍어내 긴급 수혈할 수 있는 중앙은행이 지급·결제 업무를 맡는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금융결제원이 비영리 사단법인이이서 정부조직이 아니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자칫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질 것을 의식했는지 “권한의 문제가 아니라 중앙은행 고유의 기능 책임에 대한 문제다”라고 다시 강조했다. 결국 11시 20분에 시작한 이 총재의 기자회견은 12시 반 가까이 돼서야 끝났다.

이에 대해 금융위 측은 갈수록 커지는 빅테크 업체들의 자금세탁 관여 여부와 금융업무 제대로 하는지를 보려면 내부거래까지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만약 지급결제 시스템에 사고가 발생한다면 현재도 민법상 사단법인의 주무관청으로써 감독권을 갖고 있는 금융위가 책임을 지게 돼 있는데 이에 대한 감독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앞으로 빅테크 영역이 커질텐데 지급·결제 업무를 한은이 독점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도 나온다.

결국 한은과 금융위 갈등이 커지자 윤관석 국회 정무위원장은 ‘금융결제원 업무 중 한국은행과 연계된 업무는 금융위의 감독·검사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부칙이 더해진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금융위와 한은 간의 갈등을 절충하기 위한 안이라는 평가지만, 큰 틀에서 보면 관리·감독의 총 권한이 금융위에 있다는 점에서 한은의 반발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두 기관 간의 고래 싸움에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의 연내 통과는 힘들어졌다. 핀테크 업계에서는 ‘법안 처리가 늦어질수록 불확실성이 커진다’며 결국 피해는 업계가 입을 수밖에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핀테크 산업은 혁신 속도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한은의 입장이 설득력이 있더라도 금융위와의 갈등은 외부에서 봤을 때 자칫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 소지가 농후하다. 금융위도 문재인 정부 초반 금융감독원 예산권을 놓고 기획재정부와 갈등을 벌인데 이어 이번에는 한은과의 갈등으로 점수를 잃었다는 평가다.

중국의 경우 우리와 달리 알리페이 등 각종 비은행 결제회사의 자금 흐름을 관리·감독하겠다는 취지에 따라 2018년 온라인 청산 전담기구인 ‘왕롄’을 도입했다. 우리나라의 혁신이 늦어질수록 우리 기업들의 발전은 더뎌질 수밖에 없다. 이는 차후 해외시장 진출에도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중국보다 뒤쳐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올해 안으로 전자금융법 개정안은 통과돼야 한다.

[한원석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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