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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복수 대신 백제왕을 용서한 광개토대왕

호태왕, 압록수 건너 백제 토벌…조부의 원수를 포용하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1-11 18:34:37

▲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비문의 6년(396, 병신) 기사에는 광개토대왕(호태왕)이 친히 백제를 정벌하면서 함락시킨 58개성의 명칭이 열거돼 있다. 이어 도성까지 내달아 아신왕의 항복을 받고 인질들을 데리고 개선했다는 공적이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해석) “그러나 적은 굴복하지 않고 기운을 내서 싸우려고 나서므로 왕이 크게 진노하시어 아피수(阿被水)를 건너가 성에 바짝 접근해 마구 공격했다. 적이 퇴진하자 급히 그 성을 포위하고 닥치는 대로 공격했다. 백잔왕이 곤핍해져 남녀 생구 1000인과 세포 1000필을 내어 바치고 무릎 꿇고 스스로 ‘지금부터 영원히 노예가 되겠나이다(永爲奴客)’라고 맹세하니 태왕께옵서는 지난 죄과를 용서해 은혜를 베풀어 받아들이기로 하고 앞으로 성의를 다해 순종하는지 여부에 따라 징벌의 정도를 정하기로 했다. 이번에 모두 백잔의 58성 700촌을 얻었으며 백잔왕의 동생과 대신 10명을 데리고 도성으로 돌아왔다”
 
고구리는 25년 전인 371년에 백제에게 큰 치욕을 당했다. 호태왕의 조부 고국원제가 근초고왕이 보낸 백제군이 쏜 화살을 맞아 전사한 것이 그것이다. 당시 백제는 고구리가 소유하고 있던 요서·진평 등 고토를 수복했는데 그때 가깝게 있는 시국처 대방도 포함됐다.
 
온조가 아버지 고주몽의 곁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와 나라를 세운 이래 고구리와 백제는 한 집안으로 여겨 서로 전쟁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고국원제 때인 352년(임자) 2월에 선제공격해 대방과 관미령(関彌岺)에서 백제군을 대파하고 대방왕과 1만의 포로를 사로잡는 전과를 올렸다. 백제의 371년 평양성 공격은 그에 대한 보복으로 고토수복이 목적이었다.
 
뒤를 이어 등극한 소수림제가 부황의 원수를 갚으려고 출동하려다가 중단했다. 377년(정축) 10월에 3만의 병력으로 평양성을 침입한 백제군을 정벌했다. 고국양제 때인 386년(병술) 8월과 이듬해(정해) 9월에는 국지전을 벌려 서로 일진일퇴했다.
 
호태왕 즉위 이후로는 백제가 연전연패했다. 392년(임진) 7월에 호태왕이 친히 관미성을 공격해 함락시켰다. 이듬해 8월과 394년 7월의 관미성과 수곡성에서도 백제가 패했다. 395년(을미) 8월에 백제는 패수에서 8000의 군사가 참수되는 대패를 당했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11월에 도발했다가 이번에 응징을 당한 것이다.
 
계속 도발했던 백제왕이 항복하자 호태왕은 조부를 죽인 철천지원수의 증손자인 아신왕의 지난 죄과를 용서하고 은혜로써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순종 여부에 따라 징벌의 정도를 정하기로 하고 인질을 데리고 돌아온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 게다가 아신왕의 항복은 <삼국사기> 기록에 없는데 어찌 믿을 수 있을까.
 
▲ 구리시에 서있는 광개토호태왕의 동상과 공적비석. [사진=필자 제공]
 
호태왕은 피의 복수에나 집착하는 소인배가 아니라 영락대통일을 이루려는 위대한 군주답게 넓은 아량으로 포용한 것이다. 조부의 원수나 갚겠다고 백제왕을 죽여 봤자 남는 것은 백제백성들의 원한과 증오뿐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연개소문이 항복한 당태종을 살려 보낸 것과 같은 개념일 것이다.
 
<고구리사초략>에는 “6년 병신 3월, 상이 몸소 수군을 이끌고 대방과 백제를 토벌해 10여성을 함락시키고 그 동생을 인질로 잡아 돌아왔다”고 백제의 아신왕이 항복했다는 기록 없이 간단하게 기술돼 있다. <삼국사기>에는 호태왕의 백제도성 정벌 기록 자체가 없다. 그리고 고구리인이 호태왕비석에 직접 새긴 역사는 변조되지 않은 참역사로 봐야할 것이다.
 
당시 왜는 사신을 보내 호태왕에게 토산물과 미녀 5명을 바치고 선록(仙籙) 책을 구해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왜가 백제와 연합해 함께 고구리를 공격했다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은 아무런 근거 없는 낭설임이 입증됐다.
 
위 6년 비문에 언급된 아피수(阿被水)는 압수 즉 압록수(鴨綠水)로 산서성을 가로지르는 분하로 보인다. 그 이유는 호태왕이 정벌한 남소성의 위치가 곡옥(曲沃)현 부근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나머지 성들도 거기서 백제의 도성에 이르는 축선 상에 있는 성들일 것이다. 아신왕이 항복한 백제의 당시 도읍지는 과연 어디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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