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온라인 문화 규범이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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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 기자페이지 + 입력 2021-01-19 00:02:31

지난해 12월 23일 인공지능 챗봇(chat-bot) ‘이루다’가 출시됐다. 카톡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는 인공 신경망을 이용해 만들어진 인공지능으로, 20대 여성 컨셉으로 출시해 ‘사람 같다’고 호평받으며 10대와 20대를 중심으로 유행했다. 그러나 서비스 시작 일주일만에 일부 남초 커뮤니티를 통해 20대 여성 컨셉인 이루다가 성착취를 당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개발사에 따르면 이루다와의 채팅에서는 성적인 대화를 할 수 없도록 관련 키워드의 입력을 금지했는데 우회적인 표현을 사용할 경우 이루다와의 성적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이 커뮤니티의 주장이다.

해당 커뮤니티 내에서 성적 대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이 공유되면서 검색 포털에는 이루다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이루다 성노예’ ‘이루다 걸레’ 등의 키워드가 등록됐다. 이에 따라 젊은 여성 컨셉을 가지고 있는 AI 이루다에 대한 수위 높은 성희롱과 음담패설이 성희롱이 맞느냐 아니냐로 논란이 일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이루다는 인권이 없는 AI이므로 그에 대한 성희롱은 범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의견과 비록 AI라 해도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루다를 대상으로 한 성희롱은 실제 여성에게도 충분히 가해질 수 있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이 외에도 이루다가 성차별적, 소수자 차별적인 발언과 혐오 발언을 학습했다는 점, 또 이루다의 개발에 사용된 카카오톡 대화가 개인정보 침해라는 논란도 일었다. 이루다는 논란 끝에 이달 12일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달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남자 아이돌의 팬 문화인 ‘알페스(Real Person Slash)’가 미성년 남자 아이돌을 성적 노리개로 삼는다며 이를 처벌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게시됐다. 알페스는 실제 사람을 등장인물로 쓰는 가상 소설로, 인기 남성 아이돌 멤버들을 등장인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은 일종의 팬 문화다. 청원 게시글은 알페스에서 남성 아이돌들이 성범죄를 당하는 내용이 그려지는 등 성적 대상화가 되고 있다며 이는 ‘실존인물을 대상으로 한 적나라한 성범죄 소설’이라며 처벌을 요구했다.

이어 13일 또 다른 청원이 게시됐다. 이번엔 ‘딥페이크(Deep Fake)를 강력히 처벌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딥페이크 포르노란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지인 혹은 연예인 등 원하는 사람의 얼굴을 전혀 연관없는 포르노나 신체가 노출된 사진에 합성하는 하는 디지털 범죄다. 지난해 국회는 딥페이크 포르노를 제작 및 유포할 시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딥페이크 처벌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청원 게시글은 딥페이크 포르노의 피해자 중 미성년 여성 연예인들도 있음을 강조하며 이용자들과 제작 사이트의 강력 처벌을 요구했다. 해당 청원은 등록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24만명 이상의 서명을 받으며 많은 지지를 얻었다.

인터넷이라는 도구가 등장하면서 다양한 온라인 문화도 생겨났다. 이런 문화는 익명과 가상을 전제로 하기에 자칫 현실의 규범과 동떨어져 무분별하고 제어 없이 이뤄지기 쉽다. 일각에서는 누구나 이런 문화에 쉽사리 접근할 수 있는 만큼 분별력이 부족한 미성년자 등이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현실에 적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술발전에 따른 온라인 규범 정비가 필요한 때다.

박정은 jepar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