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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의 유력 대통령 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현직 정보기관 수장인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나란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입건됐다. 둘 다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사정기관과 정보기관 총수에 임명된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전례 없는 일이다. ‘고발 사주’냐 ‘제보 사주’냐가 피소 이유다.
고발 사주는 2020년 손주성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황희석·최강욱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총 11명을 고발하는 고발장을 김웅 국민의힘 의원을 통해 당에 전달했다는 내용으로 윤석열 후보가 배후에 있다는 의혹이다. 제보 사주 의혹은 박 원장이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 개입하기 위해 ‘검찰 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인 조성은 씨와 만나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주장이다.
윤 후보 캠프는 9월 박 원장과 조 씨, 성명불상자 등 3명이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언론사에 제보를 모의했다며 공수처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조 씨가 인터넷매체 뉴스버스에 고발 사주 의혹을 제보하는 과정에 박 원장이 배후에 있었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고발 사유는 국정원법·공직선거법·정보통신망법 위반이다.
실제 조 씨는 고발 사주 의혹을 뉴스버스에 제보하기 직전 박 원장을 만난 게 확인됐다. 뿐만 아니라 조 씨는 SBS에 출연해 “9월 2일이라는 날짜는 우리 원장님이나 제가 원했거나 배려 받아서 상의한 날짜가 아니다”라고 발언해, 제보 전에 박 원장과 상의했음을 사실상 고백했다.
박 원장은 또 윤석열 후보 연루 의혹이 제기됐던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사건을 언급하며 “나가면 나한테 다 죽는다”, “내가 다 알고 있으니 편하려면 가만히 계시라고 전하라”로 말했다. 국회의원 재직 시와 국정원장으로 취득한 정보로 야권 대선 후보를 겁박한 것이다. 엄격한 정치중립이 요구되는 국정원장으로서 정치개입 논란을 자초한 실언이다.
박 원장은 애초부터 국정원장으로 적합한 인물이 아니다. 김대중정부 때 비밀특사로 북한과 접촉하며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거액을 제공한 것을 비롯해 여러 번의 불법 행위로 법의 심판을 받았다. 정관계 인사들에게 무차별 로비를 벌여 문제가 된 가짜 수산업자에게 선물을 받았고, 극비를 요하는 방일·방미 일정을 노출하는 등 정보기관 수장으로서 적절치 못한 행동으로 툭하면 구설에 오르내리고 있다.
공수처의 수사 형평성도 문제가 되고 있다. 윤 후보 측이 문제 제기한 ‘제보 사주’는 3주가 지나서야 겨우 수사에 나선 반면, 더불어민주당의 ‘고발 사주’와 관련해서는 4일 만에 김웅 의원 자택과 사무실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속전속결로 진행하고 있다. 손준성 검사와 미래통합당 법률지원단장을 맡았던 정점식 의원의 자택과 사무실도 압수수색을 끝냈다. 윤 후보는 9월 9일 이미 피의자로 입건했다.
문제는 박 원장이다. 정보기관 수장이 금기 사항인 정치 관여 혐의로 피소됐으니 국정원장으로서 낯을 들 수 없게 됐다. 불법감청으로 임동원·신건, 댓글공작으로 원세훈, 청와대 특수활동비 제공 혐의로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원장이 줄줄이 유죄가 된 마당에 박 원장마저 구속된다면 해외토픽 감이다. 국가적 수치다.
국정원장이 정치에 관여한 혐의로 수사를 받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박 원장은 정보수장으로서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정보기관이 정치인의 도구가 되면 나라가 위험에 빠진다’는 메이어 다간 이스라엘 모사드 전 국장과 같은 소신은 없더라도 최소의 공직자 윤리를 어겼으니 자진 퇴진만이 답이다. 도덕성 추락으로 리더십을 잃은 김명수 대법원장에 이어 국가의 또 하나의 축이 무너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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