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눌지왕과 백제 비유왕의 나제 혼인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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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화친 체결 배경엔 고구려를 공동으로 막자는 제안
백제·신라 왕실 여성 서로 주고받으며 겹사돈 맺어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7-29 08:40:15

‘나제동맹(羅濟同盟)’은 신라 눌지왕과 백제 비유왕이 화친을 맺으며 체결한 동맹이다. 동맹은 상호 직접적인 군사지원을 전제로 한다. ‘삼국사기’ 눌지마립간 기록이다. ‘17년(서기 433년) 7월, 백제가 사신을 보내 화친하기를 청해 이에 따랐다(百濟遣使請和從之). 18년(434년) 2월 백제왕이 양마 두 필을 보내 왔다(百濟王送良馬二匹). 9월 또 흰 매를 보내 왔다(又送白鷹). 10월, 왕이 황금과 명주로써 백제에 답례했다(王以黃金明珠報聘百濟).’ 그런데 기록에는 신라와 백제 양국이 혼례품으로 추정되는 선물만 주고받았을 뿐, 누가 누구와 혼인한 것인지 혼례 당사자에 대한 언급이 없다.

나제 화친의 동상이몽

‘신라사초’ <눌지천왕기>이다. ‘17년(433년) 수계 계유 7월, 비유가 그 아우 호가부(好嘉夫)를 보내 미녀 일곱을 바치며 말하길 “어린 조카(小侄-비유왕)가 새로 섰으나 상국(上國·신라)을 받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가 여동생(妹)를 바치니 이로 하여금 구궁(九宮)을 채운다면 심히 다행입니다. 원컨대 묵은 감정을 풀고 서로가 돕고 보호해 북노(北虜·고구려)를 막음이 어떠하신지요”라고 했다. 왕(눌지왕)은 야인(野人)을 정벌하고자 한 까닭에 그 화친을 허락했다(毗有遣其弟好嘉夫獻美女七人曰小侄新立無以奉上國謹以妹獻以備九宮則幸甚願解宿感而互相持護以禦北虜如何王欲伐野人故許其和).’

이는 화친 체결의 배경 설명이다. 비유왕은 고구려를 공동으로 막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눌지왕은 다른 생각을 한다. 백제의 힘을 빌려 야인(왜인)을 막고자 한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다. 목적은 같으나 목표는 다르다. 특히 ‘고구려사략’에서는 장수왕이 나제화친을 폄하하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장수대제기’ 기록이다. ‘21년(433년) 눌지가 비유와 다시 화친했다. 간사한 무리(奸輩)들이 이랬다저랬다 하기가 무상하니 저희들끼리 병 주고 약 주고 하였다(二十一年訥祇與毗有復和奸輩之反復無常自作其糵也).’

비유왕이 눌지왕에게 시집보낸 여동생은 소시매(蘇時昧)이다. 비유왕은 백제 해씨왕조(온조계)를 무너뜨리고 부여씨왕조(구태계)를 개창한 시조격의 군주다. 비유왕은 부여기마족(부여백제)의 한반도 잔류세력으로 상좌평 여신(餘信)에 의해 옹립된다. ‘삼국사기’는 비유왕을 ‘구이신왕의 장자(尒辛王之長子)’ 혹은 ‘전지왕의 서자(腆支王庶子)’로 기록해 계보 상으로는 해씨왕조에 편입하고 있다.

비유왕의 여동생 소시매(蘇時昧)는 소(蘇)씨 여성이 낳은 딸이다. 당시 딸의 경우 어머니 성씨를 따르는 풍습이 있었다. 소씨는 신라시조 박혁거세를 옹립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진한 6촌의 소벌도리(蘇伐都利) 집단의 직계후손이다. 비유왕이 눌지왕에게 자신을 낮춰 ‘어린 조카(小侄)’라 표현한 것은 어머니가 바로 신라출신 여성이기 때문이다.

혼인동맹의 실체

눌지왕도 비유왕에게 왕녀를 시집보냈다. ‘눌지천왕기’기록이다. ‘18년(434년) 목구 갑술 2월, 비유가 또 숙부 이신(伊辛)을 보내와 설화마(雪花馬) 2필을 바치고 왕녀를 맞이해 정비로 삼길 청했다. 왕(눌지왕)은 딸들의 얼굴이 예쁘지 않아 근심하였는 바, 어린 딸 주씨(周氏)가 나이 13세로 얼굴이 예뻤는데 스스로 가길 청했다. 왕은 크게 기뻐하며 성대하게 치장해 보냈다(十八年구木狗甲戌二月毗有又遣其叔伊辛來獻雪花馬二匹請娶王女爲正妃王以王女色不美憂之少女周氏年十三而色美願自往王大喜盛飾以送之).’

눌지왕이 비유왕에게 보낸 왕녀는 어린 딸 주 씨(周氏)이다. 주씨는 눌지왕의 후궁 용명(龍明·실성왕 딸)이 낳은 공주다.

이로써 두 나라의 혼인동맹은 완성된다. 비유왕은 여동생 소시매(蘇時昧)를 눌지왕의 비로 보내고, 눌지왕은 딸 주씨(周氏)를 비유왕의 비로 보낸다. 백제와 신라는 왕실여성을 서로 주고받으며 겹사돈을 맺는다.

눌지왕의 딸 주 씨 이야기

그런데 ‘신라사초’에 눌지왕의 딸 주(周)씨에 대한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비유왕은 주씨가 너무 어린 탓에 가까이 하지 않는데 뜻밖에도 주씨가 백제 신하와 놀아났다. 하는 수 없이 비유왕은 눈물을 머금고 주씨를 신라로 돌려보냈다. 이에 격분한 눌지왕은 동맹파기를 운운하고 비유왕은 별도로 두 차례 사신을 파견하며 주씨를 다시 백제로 데려왔다.

그리고 주씨는 442년(눌지왕 26년·비유왕 16년) 비유왕의 아들을 낳는다. ‘눌지천왕기’이다. ‘26년(442년) 수마 임오 2월, 주씨가 비유의 아들 문주(文周)를 낳았다. 비유가 명주와 양마를 바쳤다(二十六年水馬壬午二月周氏生毗有子文周毗有獻明珠良馬).’

주씨가 낳은 아들은 백제 22대 문주왕이다. 문주(文周)의 이름에 ‘周’자가 들어간 이유는 주씨가 낳은 아들이기 때문이다. 눌지왕의 비가 된 소시매 역시 444년(눌지왕 28년) 아들 하나를 낳았다. 무공(武公)이다(蘇時昩生子武公).

어찌 보면 혼인동맹은 최상의 선택카드이다. 서로의 핏줄을 담보하니 쉽사리 배신할 수 없다. 혹여 혼인한 왕녀가 아들을 낳으면 다음 왕위를 이을 수도 있다. 결코 손해 볼 일도 나쁠 것도 없다.

눌지왕의 나제동맹은 왕실간 왕녀를 주고받은 혼인동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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