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헌의 스포츠 세상] 섬마을 야구부 덕적고 ‘제2의 섬개구리 만세’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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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위기 벗어나려 창단, 현재는 좁은 기숙시설에서 생활
51년 전 소년체전 신안 사치분교 농구부원들 신화가 생각나

박병헌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7-05 06:31:30

전국에서 유일한 섬마을 야구부가 있는 인천 덕적고가 얼마 전 교육당국에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를 지어 달라고 요청했다는 짤막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서해에 위치한 덕적도는 인구가 2000명도 채 안되는 아름답고 작은 섬이다. 인천에서 쾌속선으로 1시간40분 거리에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속한다. 일제강점기 전에는 ‘덕물도’라 했는데 한일합병 이후 일본인들이 거주하면서 ‘주민들이 어질고 덕이 많다’ 해서 덕적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국내 프로야구 인기에 편승해 덕적도에 야구부가 생긴 것은 2021년 10월이다. 2년도 채 안된다. 덕적고 야구부 학생들은 덕적도 진리에 있는 옛 덕적면 관사 3개 동을 2025년 2월까지 3년간 무상임차 해 쓰고 있다. 1990년에 지어진 이 관사는 시설이 낡고 공간이 좁아 선수들이 숙식을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적지 않다.

현재 야구부원은 모두 29명이라고 한다. 관사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32명이어서 수용 여력도 거의 없는 형편이다. 관내에 있는 유일한 고등학교인 덕적고는 내년부터 신입생이 추가로 입학해 야구부원이 더 늘어나면 관사 공간이 부족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야구부원이 30명 이상으로 늘어날 게 확실하다. 팀 창단 1년도 채 안된 지난해에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16강전에 진출하는 등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던 덕적고다.

덕적도에는 2020년 초·중·고 통틀어 학생이 58명에 불과해 읍·면 및 도서 지역 소규모 학교 통폐합 권고 기준인 60명에 미달했기 때문에 폐교 위기에 몰렸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게다가 2021년 덕적고 신입생은 1명이었다.

덕적도가 폐교 위기에 처하자 발 벗고 나선 것은 주민들이었다. 학교를 살리는 게 섬 분위기를 살리는 일이었다. 야구부 창단 건의서를 덕적고에 전달하고, 마을 복지기금 일부를 야구부 창단 기금으로 마련했다. 이런 노력 끝에 덕적고는 2021년 9월 인천시 교육청으로부터 야구부 창단을 승인받을 수 있었다. 학교와 삶의 터전인 섬을 살리겠다는 주민들의 노력과 희생이 꽃을 피우며 야구부가 창단될 수 있었다.

야구부가 생기면서 학생 수는 거짓말처럼 늘어났다. 첫해 야구부원 21명이 뭍에서 전학 왔다. 지난해에도 야구부 신입생 6명이 입학해 총 27명이 됐고, 더불어 덕적초·중·고 학생 수는 81명으로 늘어 폐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외딴 섬의 야구부가 학교를 살리고 섬에 활기를 불어넣은 셈이다.

덕적도 주민들은 야구부원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야구를 할 수 있도록 다시 팔을 걷어붙였다. 이번엔 연간 야구부 운영비 3억 원 마련이 목표이지만 빡빡한 살림 속에 목표를 이루는 게 쉬워 보이지 않는다.

폐교 위기를 넘긴 덕적고 야구부 얘기를 하다 보니 1972년 전남 신안군 사치분교 농구부의 동화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섬개구리 만세’가 문득 떠오른다.

목포에서 서쪽으로 23km 떨어진 사치분교의 농구부 이야기는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나라도 튼튼”이라는 소년체전의 창설 취지에 딱 맞는 스토리다. 전국소년체육대회는 몸도 튼튼하고 마음도 튼튼한 어린이들의 잔치로 멋지게 시작됐다. 소년체전의 원년이었다.

사치분교에 부임한 젊은 부부 교사는 농구가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뻘에서 뛰놀게 하며 농구를 가르쳤다. 집안의 농삿일을 돕느라 바빠서 학교에 나오지 않는 날들이 많았던 아이들이다.

부부 교사는 아이들에게 농구 기술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함께 놀면서 협동하고 서로를 배려할 줄 아는 스포츠 교육을 시킨 것이었다. 아이들은 팀웍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느끼며 농구를 익혔다. 이기고 지는 것보다는 성취감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협동심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기량이 다져지진 않았지만 아이들은 소년체전 전남 대표선발전에 참가하느라 섬을 떠난 그 자체가 행복이었다. 전라남도 대표로 뽑혀 서울로 올라 온 아이들 눈에는 모든 것이 그저 신기하고 얼떨떨하기만 했다. 촌스럽기 그지없는 아이들은 열심히 경기한 결과 어쩌다 한 번 이겼는가 싶더니 이기고 또 이겨 결승까지 올랐다.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이들에게 승패는 이미 의미가 없었다.

사치분교 농구이야기는 전국의 언론을 탔다. 소년체전의 소식이 꿈 많은 소년·소녀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한 사치분교 섬개구리들은 전국의 소년·소녀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 준 주인공이었다.

덕적고 야구부 선수들도 섬 안에서 꿈을 먹고 자라고 있다. 비록 좁은 기숙사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는다면 제2의 ‘섬개구리 만세’를 부를 날이 멀지 않았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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