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풍경 낯선 여행] 천변 매화 궁궐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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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변에 조성된 하동매화거리
창덕궁 낙선재 가득 채운 매화향

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3-16 13:22:31

남녘으로부터 꽃 소식이 올라오고 있다. 벚꽃에 한발 앞서 봄을 알리는 매화는 사군자 그룹에 속한다. 추위를 무릅쓰고 피어나는 모습이 선비의 절개에 빗대어지는 것이다.

매화는 흰색 꽃이 주를 이루지만 꽃받침이 분홍색이다 보니 멀리서 보면 연분홍 꽃무리로 보인다. 개중에 붉은색 꽃을 피우는 종류가 있어 ‘홍매화’라 한다. 그런가 하면 흰 매화 가운데 꽃받침이 녹색인 부류를 ‘청매화’라 한다.

기차를 타고 남쪽 도시까지 내려가는 꽃놀이 여행도 좋지만 잘 살펴보면 서울 시내에도 매화의 정취에 푹 빠질 수 있는 곳이 꽤 있다.

섬진강 매화 서울로 주소 옮기다

▲ 용답역에서 신답역 어귀까지 청계천 물줄기를 따라 매화 꽃길이 조성돼 있다. 임유이 기자

지하철 2호선 용답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매화 향이 코끝을 찌른다. 용답역에서 신답역 어귀까지 청계천 물줄기를 따라 매화 꽃길이 조성돼 있다.

섬진강 유장한 물길은 아니지만 졸졸졸 흐르는 청계천 물소리에, 푸른 수양버들의 정취가 더해지니 초봄의 정취를 느끼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청계천 매화거리 입구에 ‘하동매실거리’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서울 한복판에 하동매실거리가 웬 말일까? 사실 이곳은 2006년 경상남도 하동군이 350주의 매실나무를 천변 1.2km 구간에 식재한 것이 기원이다.

태생은 섬진강변이지만 20년 가까운 세월을 청계천변에서 보낸 나무들이다. 거친 시멘트 옹벽도 더 이상 낯설지 않고, 소란스러운 차 소리와 사람 소리에도 익숙해졌으니 이제는 ‘서울나무’라고 해도 될 듯싶다.

청계천 매화거리는 청순한 백매화가 주를 이루지만 신답역에 가까워오면서 드문드문 홍매화가 눈에 띤다. 백매화는 기품 있고, 홍매화는 요염하다. 백매화는 주로 어두운 시멘트 옹벽을 배경으로 도열해 있고 홍매화는 대나무숲 사이사이 피어있어 흑백·청홍의 대비가 두드러진다.

3월 중순을 지나고 있음에도 청계천 매화나무들은 아직 꽃망울을 다 터트리지 않은 상태다. 남쪽 도시보다는 한 템포 느린 박자로 봄의 속살을 보여줄 심산인 것이다.

청계천변에는 하동매실거리 외에 담양대나무숲과 구례산수유거리도 있다. 서울시에서 서울을 정원도시로 만들겠다는 포부로 곳곳에 꽃나무를 식재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아직 멀었다. 천변에는 빈 곳이 많다. 이왕이면 전국의 꽃을 가져다 심어 청계천을 지역 꽃 전시장으로 발전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궁궐 매화 품격도 남달라

창덕궁 낙선재에는 화초·석물·꽃담으로 치장된 아름다운 화계(花階, 계단식 화단)가 있어 봄이면 꽃대궐을 이룬다.

낙선재는 조선 왕실 가족이 1989년까지 실거주한 곳으로 궁궐 내 침전건축으로는 이례적으로 단청을 하지 않고 사대부 주택 형식으로 건축되었다. 이곳 매화는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목재의 차분한 질감이 매화의 고결함을 제대로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또한 꽃과 배경 사이에는 무채색 기와가 있어 아득한 깊이를 만들어 낸다.

낙선재 앞뜰에는 청매화가, 낙선재 위쪽 비원 앞에는 홍매화가 피어 난다. 이곳 홍매화는 꽃잎이 여려 겹인 만천홍매화다. 개화는 홑겹 쪽이 빠르다.

낙선재는 단청 없이 수수하게 지어지긴 했지만 조선 후기 건축 장인들의 축적된 기량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다른 곳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문양의 창호 장식이 적용됐다. 방마다 제각기 다르게 만(卍)·아(亞)·정(丁)의 창호 살을 사용했으며 당초무늬·박쥐무니·마름모고리무늬로서 개성 있고 아름답게 표현했다.

매화가 필 무렵 창덕궁 미선나무도 흰 꽃을 피워 올린다. 미선나무가 자리한 곳은 창덕궁 진입로 구역인 금천교 부근이다. 미선나무꽃은 언뜻 하얀 개나리꽃을 연상시키지만 매화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향기가 좋다. 미선이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부채’라는 뜻이다. 둥글고 납작한 열매가 선녀의 부채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한편 창덕궁은 서울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규모로 따지면 경복궁에 밀리지만 궁궐 건축의 전통을 이탈하지 않으면서 원래의 자연 지형을 존중하고 창조적 변형을 가했다는 점에서 가산점을 받았다. 건물부터 후원까지 조선 후기 축조 당시의 모습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창덕궁의 자랑이다.

임유이 기자 lye@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