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의 미디어와 정치] EU 미디어 자유법과 정부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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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자유 위협 요소로 국가권력·대형 플랫폼 지목
전 정권이 만든 열독률 등 광고 지원 기준 불투명·불공정

황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3-28 06:31:30

온라인 플랫폼 급성장으로 미디어 영역 붕괴를 가장 우려하고 규제에 앞장서고 있는 곳은 유럽연합(EU)이다. EU 집행부는 최근 몇 년 간 온라인 공간에서 확산되고 있는 가짜뉴스에 대해 강력한 규제 의지를 표명해 왔다. 특히 가짜뉴스에 대응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기존 매체, 특히 공영 미디어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13일 유럽의회는 2002년 EU 집행위원회가 미디어 다원주의와 독립성 보호를 목적으로 제안했던 ‘유럽 언론 자유법(European Media Freedom Act·미디어 자유법)’을 통과시켰다. 티에리 브레통 EU 집행위원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민주주의 시장인 EU의 미디어들이 수익 감소와 함께 초대형 온라인 플랫폼·각국의 모자이크 규제들 때문에 자유와 다원주의를 위협받고 있다”고 법 제정의 취지를 밝힌 바 있다.

EU 집행위원회에선 특히 글로벌 플랫폼들의 독점 구조를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지목했다. 이 때문에 EU의 플랫폼 규제 공세는 매우 공격적이다. 이미 7일 인종·성·종교에 대한 편파적 내용이나 테러·아동 성학대 관련 콘텐츠의 온라인 유포를 금지하는 ‘디지털 서비스법(DSA·Digital Service Act)’과 온라인 플랫폼 이용에서의 차별금지 및 접근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디지털 시장법(DMA·Digital Markets Act)’을 먼저 의결한 바 있다.

두 법안 의결 직후 EU 집행위원회는 틱톡을 비롯한 8개 빅테크 플랫폼들에게 유해 콘텐츠 차단과 개인정보 이용 및 독과점 지위 남용과 관련된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그리고 25일에 애플·알파벳·메타의 시장독점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통상 법안 통과되고 3개월 정도 지나야 실행 조치들이 이루어지던 관행을 감안하면 매우 파격적이다.

이 같은 파상적 규제 공세 대상이 주로 미국의 글로벌 플랫폼들이라는 점에서 EU 차원의 견제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형 플랫폼들이 마치 거대한 공룡처럼 정치·경제·문화 등 거의 모든 영역을 빨아들이면서 민주주의 기본 원칙인 다원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인식이 반영되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EU의 미디어 자유법은 플랫폼 사업자의 미디어 시장 침식을 견제하여 기성 미디어를 보호하기 위한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법에서는 미디어 자유를 위협하는 요소로 국가권력과 대형 플랫폼을 지목하고 있다. 미디어가 정권의 선전 도구화하는 것과 플랫폼이 미디어 시장을 침범하면서 반사회적 콘텐츠가 범람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대안으로 공영 미디어(public media)의 재정 안정 필요성과 정부 광고(state advertising)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 재원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정부 광고의 공정한 집행을 위해 ‘수용자 측정 시스템의 객관성’을 규정하고 있다. 정부 광고의 비중이 커지면서 이를 이용한 국가의 미디어 통제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EU의 미디어 자유법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한국의 정부 광고는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늘어나 지난해에는 1조4000억 원이 넘었다. 이 때문에 정부 광고를 대행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은 국내 4위의 광고대행사 위치에 올라 있다. 지난 정권이 우호적인 매체들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 광고 분배 기준을 바꾸려 했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정부 광고 지원 대상 선정 기준으로만 활용해 왔던 ABC제도(발행부수공사) 대신 ‘열독율 조사’와 질적 평가 요소들을 합해 차등화된 지원 기준으로 변경한 것이다. 그 결과 발행 부수가 적은 매체가 최상위에 위치하기도 했다. 정권 교체 후 열독율 조사 절차와 분석·통계처리 과정에서의 의혹들이 제기되면서 지금도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10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수사 결과도 발표되지 않고 사법절차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EU 미디어 자유법의 취지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한국의 정부 광고 시스템은 대단히 불투명하고 불공정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정부가 운영시스템을 투명하게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이를 위해서는 열독률 조사와 관련된 의혹들이 먼저 밝혀져야 할 것이다. 집행기관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어야 정부 광고의 취지에 맞는 언론의 공영성과 공익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를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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