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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모스크바 외곽 크로커스 시청 공연장에서 관객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불을 지른 테러범 4명을 공개했다. 이들의 모습에는 고문의 흔적이 역력했다. 소셜미디어에는 러시아군이 네 명의 용의자를 구타하고 전기 충격기와 망치 등을 이용해 고문하는 영상이 유포되기도 했다. 그중 한명은 귀가 잘린 듯한 모습이다.
27일(현지시간) 러시아 당국은 테러로 인한 사망자가 143명, 부상자는 360명으로 늘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국민과 전 세계가 보내는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야만적 테러에 대한 분노가 크지만 테러범에 대한 잔혹한 고문은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러시아 당국, 아니 푸틴은 왜 전례 없이 처참한 고문의 흔적을 대중에 공개했을까? 일각에서는 테러를 막지 못한 푸틴정부의 무능함에 대한 국민의 비판과 분노를 어느 정도 달래려는 의도로 해석한다. 정치인들이 본능적으로 작동시키는 정치적 셈법으로 보는 것이다.
푸틴의 정치적 셈법은 이번 사건과 우크라이나를 연결 짓고 미국을 비난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사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은 러시아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지만 푸틴으로서는 재집권하는 데 도움이 됐다. 전쟁 중에 지도자를 교체하는 모험을 하려는 국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푸틴은 테러에 대한 책임을 우크라이나에 씌워 국민이 전의를 더욱 불태우도록 하고 싶었을 터이다.
테러가 발생하자마자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는 테러범들이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 조직원이라며 배후를 자처했다. 그런데 푸틴은 테러범들이 우크라이나 쪽으로 도주하려 했다면서 우크라이나를 배후로 몰아가려 했다. 물론 우크라이나는 강력히 이를 부인하고 있다.
중요한 건 푸틴이 테러 발생 2주 전 미국으로부터 관련 정보를 받았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ISIS-K 움직임에 대해 광범위한 정보망을 갖고 감시해 온 미국은 이번 달 초 모스크바가 테러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첩보를 러시아에 공유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푸틴은 미국이 러시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러시아 국민을 겁주고 크레믈린을 ‘위협’한다며 이 경고를 무시했다. 재집권에 눈이 어두워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스스로 제 발등을 찍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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