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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시영 서울복지재단 비전기획관
“서울시 장애인복지과에서 복지재단으로 옮긴 지는 4개월 정도 됐다. 서울시에서 출연한 기관으로 2003년도에 만들어진 곳이다. 보건복지부는 서울 뿐 아니라 지방과 농촌을 아우르는 복지 정책을 담당하고 있어 지역마다 맞춤형 정책을 펼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천만 서울시민 복지 증진을 위해 연구·개발 활동과 함께 시범사업까지 운영하며 씽크탱크로서 역할하고 있다.”
90여명이 근무하는 서울시 복지재단 직원들은 대부분 석·박사로 이뤄졌다고 한다. 유 기획관은 유일하게 공무원 신분으로 조정업무를 맡기 위해 파견됐다.
아버지 사업 실패…대학 진학 포기
유 기획관은 한 살이 되던 해에 소아마비를 앓아 목발이 있어야 이동할 수 있는 지체장애자이다.
어린 시절에는 집안 형편도 좋았고 남들하고 같이 생활하면서 그는 자신이 장애자라는 사실을 잘 느끼지 못할 정도로 큰 불편 없이 살았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막연히 남들에게 봉사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의사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끼고 의대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그 꿈은 좌절되고 말았다. 그가 고등학교 2학년일 당시 그의 아버지는 옻칠 분야의 인간문화재 전수생이었는데 사업에 실패하며 집안 형편이 어려워진 것이다.
“아버지는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실 뻔 했지만 이미 실패를 한 상황에서 공방이나 판로 등 요건을 구비하지 못해 그마저도 이뤄지지 못했다. 7남매 중 장남이었던 나로서는 가정 형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대학 진학에 대한 고민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학교를 다니면서 단 한 번도 결석한 적이 없었던 그는 며칠간 만화방에 드나들기도 했다고 한다. 교육열이 높으셨던 어머니는 그에게 “너라도 대학을 가라”고 말씀하셨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단칸방에서 식구 모두가 잠을 잤다. 동생 중 한명은 초등학교 등록금을 못 내 선생님께 야단맞고 학교까지 가지 않으려고 했다. 어머니가 아는 집에서 얻어 온 누룽지로 아침을 때우고 점심은 걸렀다. 저녁은 밀가루 수제비로 만족해야 했다”
“중앙대 약학대학 장학생으로 가라는 추천도 있었지만 가족들의 어려운 상황을 보면서 도저히 4년 동안 대학을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했다면 좀 더 가족에게 보탬이 됐을지도 모르지만 당시에는 눈앞의 상황만 보였다”
그는 결국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아버지가 일하던 분야와 관련된 직장을 들어가게 된다. 몇 년 간 그 일을 하면서 아버지 사업을 이어가고자 혼자 제품을 만들다 옻에 옮아 1주일간 고생하기도 했다.
성실한 공직 생활, 점차 능력 인정받아
▲ 지난 2007년 3월 9일 시각장애체험 행사에서 오세훈 시장과 함께 찍은 사진
그가 공무원이 된 것은 안정적인 직장을 얻으라는 어머니의 권유에서였다. 이에 유 기획관은 25세에 9급 공무원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하게 됐지만 공무원 사회도 녹록치 않았다고 한다.
“공직 사회가 머리로 하는 것보다 오히려 몸으로 뛰어야할 일들이 많았다. 장애를 가진 나로서는 남들처럼 밖에서 활동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업무 배분에 있어서도 제약이 생기기 일쑤였다. 특히 장애라는 이유 때문에 보직이나 승진에서 걸리는 부분이 있어 ‘평범하게 생활해서는 안 되겠구나’하는 위기감을 느꼈다”
남들보다 좀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부각시켜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성실성’을 무기로 삼았다. 다른 사람보다 일찍 출근해 늦게 퇴근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어떤 해는 6개월 정도 12시 이전에 집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당시 일찍 들어가면 10시였다. 그 정도로 열심히 일을 했고 그 때문인지 동료들 가운데서 비중 있는 일을 맡게 됨에 따라 점차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주임급에서 요직이라고 평가되는 서울시 기획담당관실 기획주임까지 지내며 탁월한 능력을 펼치게 된다.
복지 부서로의 이동 “비로소 장애인 이해”
▲ 지난 2008년 11월 6일 서울시청 내 ‘연금매장’ 오픈 당시 유시영 기획관
1998년 8월 기획·총무·감사 분야에서만 일을 하던 유 기획관은 돌연 복지 분야로 자리를 옮긴다. 지금은 복지 분야가 사회 이슈가 될 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 해는 공직생활을 한 지 20년째였다. 3년 8개월 동안 기획주임을 하면서 ‘다른 사람보다는 내가 더 똑똑해’라고 생각하는 교만해진 자신을 발견했다. 승진만이 내가 나아갈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부서 이동을 결정하고 지원했다”
“과거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며 살겠다는 생각이 반영된 결정이었지만 상사가 ‘섭섭한 부분이 있었냐’고 오해하기도 했고 동료 중에는 ‘무슨 잘못을 해서 쫓겨난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그가 복지 계통으로 지원하면서 처음 담당한 일은 장애인 복지였다.
“처음에는 낯선 분야의 일을 한다는 것에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곧 내 결정이 옳았음을 알게 됐고 그동안의 공무원 생활을 뒤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었다.
그는 장애인 복지 관련 일을 하면서 장애인을 이해하게 됐다는 점이 가장 기뻤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이 장애인이나 노인 등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도 그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나도 장애자임에도 불구하고 시각 장애, 청각 장애, 정신 장애 등 다양한 장애를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청각장애인의 경우 겉으로 보면 비장애인과 같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수 만개의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는데 반해 그들이 수화로서 전달할 수 있는 단어는 고작 800여개에 불과하다. 이런 부분들을 사람들은 몰라주는 것이다”
장애인의 무리한 정책 요구…사무실 점거되기도
▲ 유시영 기획관이 서울시 복지재단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모습
하지만 장애인 복지 문제를 다루면서 어려움도 많았다. 특히 장애인 관련 행정을 집행하면서 장애인 당사자들과의 싸움이 그를 힘들게 했다고 한다.
“국가 정책에 필요한 예산은 한정되어 있는 반면 복지계층은 다양하다. 노인 복지, 청소년 복지, 아동 복지 등 지원해야 할 곳은 많은데 한정된 자금을 가지고 운영하다 보니 의견 충돌이 생기는 것이다”
특히 전동휠체어와 보조기구들이 나오면서 장애인들이 사회로 많이 진출하고 있어 요구는 더욱 늘어났다. 실제로 2003년도 9월 지하철 역에 엘리베이터를 전부 놔달라는 장애인들에게 서울시 장애인복지과가 점거되기도 했다.
“서울시가 연차적으로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었다. 나는 재정적인 이유로 서울시를 대변해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설득해야 했다. 그 당시 10여명의 장애인들이 자신들을 끌어내지 못하게 쇠사슬을 감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장애인들을 위해 일하려고 했는데 막상 그들과 싸우는 입장이 된 것이다”
그는 이 일을 겪으면서 뒤로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한다.
“어떤 분들은 ‘같은 장애인이면서 왜 이해를 못해 주냐고’ 따지기도 하셨다. 하지만 장애인들만의 복지만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고아들, 노인분들도 같이 살아야 하지 않은가. 단지 사람 숫자로만 예산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적더라도 예산이 100이 필요한 곳이 있는 반면 사람 수가 많아도 20 정도가 필요한 곳이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노하우 바탕으로 장애인 멘토 역할하고 싶다”
▲ 유시영 기획관이 활동 중인 ‘서울시청 수화동아리’
유 기획관은 장애인 관련 봉사 활동도 몇 년째 이어오고 있다. 특히 그는 현재 ‘장애인 재활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퇴직 후 장애인에 대한 멘토 역할을 하며 여생을 보내는 것이 바램이라고 한다.
“소아마비로 인해 몸이 기울어져 생활하다 보니 척추가 휘었다. 젊어서는 근력이 있어 버텼지만 나이가 들면서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이런 간단한 사실을 미리 알려 주었더라면 지금 이런 고통은 받지 않을 것 아닌가”
그는 ‘내 몸을 잘 유지할 수 있는 방법’, ‘남들을 이해하며 주장을 펼치는 방법’ 등 생활적·직업적인 면에서 지식을 나누어 주는 일에 힘쓸 계획이다.
“일부 고학력을 가진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장애인이 빈곤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삶에 대한 의지가 꺾여있다. 식사를 제공하고 청소해 주는 일도 중요하지만 장애인들이 혼자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복지정책이 나아갈 방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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