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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현지시간) 미국 연방대법원이 대통령 행정명령 제14160호(자국 영토 내 출생자 국적 자동 부여 제한) 효력금지 가처분 적용 범위에 한계를 둔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이로써 약 160년 역사의 미 속지주의가 사실상 기로에 섰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큰 승리”로 받아들여진 가운데 이날 공익 로펌 ‘헌법책임센터’ 성명에서 스미타 고쉬 변호사는 “위헌적 행정 관행들에 맞서기 더 어려워지고 더 오래 걸리게 만들 것”이라며 대통령 행정명령에 제동을 걸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타격이 될 것으로 짚었다.
트럼프 정책에 맞서 온 ‘공공권익프로젝트’의 조너선 밀러 변호사는 도시·카운티·주가 더 많은 집단 소송을 제기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전처럼 타인·타주 소송 결과에 따라 혜택을 입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1월20일 트럼프 취임 당일 제14160호 행정명령에 서명하자 몇 시간 후 민주당 우세지역인 22개 주·샌프란시스코시·뉴욕 등지의 인권 단체들이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수정헌법14조에 의거해 해당 행정명령을 ‘위헌’으로 몰아가는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6:3 보수 우위인 연방 대법원이 개별 연방 판사가 연방정부 정책의 효력을 미 전역에서 중단하는 가처분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행정명령) 효력정지 가처분 범위 제한’이란 판결이 소송을 제기한 개인·조직·주(州) 등 원고에만 적용된다는 뜻으로, 어느 한 곳 결정이 나면 미 전역에 보편 인용되던 기존 관행이 뒤집어진 셈이다. 향후 출생시민권 문제에 국한되지 않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법원 결정이 행정부 정책에 대한 사법부의 견제 기능에 큰 변화가 왔다고 봤다. 행정명령을 발동해 추진한 각종 정부보조금 폐지 결정, 전쟁 시 적용하는 법률을 활용한 이민자 추방, 특정 로펌에 대한 징벌적 조치 등에 제동을 걸기 힘들어진 것이다.
한편 국내외 주류 매체에선 사법부의 행정부 견제 장치 중 하나가 약화될 가능성을 강조할 뿐 트럼프의 관련 행정명령 배경엔 무심해 보인다. 불법이민자들 자녀들이 신생아 포함 연간 몇백만 명씩 늘어나면서 이에 따른 의료·교육 등 대책 마련은 어떻게 납세자들 부담을 가중시켰나, 한 불체자 가정의 부모형제 간 시민권 유무가 어떤 인권문제를 야기해 법적·행정 집행 곤란을 초래했나 주목한 보도는 드물다. 이른바 ‘원정출산’에 악용돼 온 속지주의 허점 역시 완전히 무시돼 있다.
속지주의를 제한한 트럼프 행정명령에 2월 퓨리서치 조사 결과는 반대 56%, 찬성 43%였으나, 이달 ‘불법이민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미 출생자 자동 시민권 부여’ 여론 조사에선 찬성 50%, 반대 49%로 나타났다. 트럼프 정책 찬성 쪽이 늘어났음을 보여준다. 나이·인종·이민 배경에 따라 갈리는 경향 또한 뚜렷하다. 30세 이하 이민 2세에게 ‘찬성’ 우세인 것은 미국에서 이미 안정된 삶을 이룬 히스패닉계 이민자들이 불체자 문제에서 트럼프 지지가 높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에 사회학자 존 스크랜트니 캘리포니아대(UCSD) 교수의 설명이 새삼 주목된다. 그가 2015년 8월23일 폴리팩트(사실 검증 사이트) 인터뷰에서 “유럽 국가들이 미 대륙을 식민지화하면서 속지주의를 통해 인구 유입을 장려했으며 각국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발달시켜 왔다”고 말한 것인데, 미 속지주의 전통 및 비교법적 맥락을 말할 때 흔히 인용된다. 요컨대 미국에선 해방된 노예와 그 후손의 법적 지위를 규정하고자 수정헌법 제14조(1868)가 탄생했고 이것이 이후 이민정책의 근간이 됐으나 재해석 내지 행정명령을 통해 조율돼야 할 환경을 맞이한 것이다.
스크랜트니 교수는 속지주의를 택한 국가들 대부분 “식민지에서 독립국가로 거듭난 나라”라며 “많은 경우 속지주의가 건국 당시 목표에 부합했으나 그런 시대가 이제 지났다. 쉽게 바다 건너 이주할 수 있는 대량 이주 시대, 개인이 시민권(국적) 전략을 짤 수 있는 시대”라고 말했다. 속지주의가 악용되기 쉬운 시대임을 시사한 대목으로 읽힌다. 대표적인 악용 사례가 ‘출산관광’, 일명 ‘베이비 앵커’(아기로 발뚝박기)다.
한국에선 ‘원정출산’, 중국에선 ‘푸메이찬즈’(赴美産子)로 불린다. 불법이민자들의 미국 내 신생아 문제 처리 만큼의 국가적 부담은 아니지만 범죄와 불법에 엮이기 쉽다고 지적된다. 자식에게 미국 시민권이 자동 부여되도록 오로지 출산을 위해 관광비자(B1·B2)로 입국한 건수가 미 이주연구센터(CIS) 추산 매년 약 3만3000건(2016~2017)을 기록한 적도 있다. 관련 시장 규모는 3억 달러(4000억 원 이상)에 달하며 2032년까지 약 4억6000만 달러 수준으로 성장할 기세였으나, 이 모든 게 트럼프 정책 기조 아래 옛말이 될지 모른다.
루이지애나·캘리포니아·플로리다 등 일부 주 중심으로 고급 ‘출산호텔(산후조리원)’ 등이 성행해 왔다. 2020년 12월 롱아일랜드에선 청구된 의료보험 99건 중 119명 신생아가 포함된 사기 조직이 기소됐다. 1월 AP뉴스는 캘리포이나에서 대형 출산관광 비즈니스 조직을 단속해 주범에게 41개월 징역이 선고된 소식을 전했다. 100여 명 이상의 임산부를 도와 온 이 조직의 건당 수수료는 최소 4만 달러(약 5480만 원)였다. 출산관광에 ‘비자 사기’ ‘의료비 사기’가 끼어들 뿐 아니라 미 납세자의 부담을 증가시킨다. 일부 출산관광 서비스 조직이 병원 비용에서 2만5000달러 이상을 감면 받아 주정부로부터 환급받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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