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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 성수동 거리. 주말인 8일 오후, 유동 인파로 붐비는 골목 한가운데 형형색색의 인형과 키링이 바람에 흔들린다. 가게 앞 진열대에는 토끼귀를 단 ‘라부부(LABUBU)’ 캐릭터의 웃는 얼굴이 줄지어 매달려 있다. 가격은 1만 원대이다. 정품으로 구매하면 2만 원 이상이다.
불과 몇 달 전, 이 캐릭터의 피규어는 리셀가가 100만 원을 넘어섰다. 리셀 열풍에 더해 명동·홍대·건대 거리마다 ‘라부부 천국’이 된 지금, 열풍은 싸구려 비닐 포장에 담겨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정품이에요?” 기자의 질문에 상인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요즘 다 이렇게 써요. 싸고 귀여운데 가격도 저렴하고 품질도 정품이랑 다를 게 없어요.” 가격표에는 ‘1만원 원’이 적혀 있었다. 정품 대비 절반 이하 가격 수준이다. ‘중국산 짝퉁’ 라부부가 서울 거리를 점령한 모습이었다. 실제 잠실·명동·홍대·강남·건대 등 유동 인구가 많은 상권마다 스탠딩 키링 전시대에 이른바 ‘노브랜드 라부부’가 걸려 있고, 이의 모습을 고안 한 가방·헤어핀·휴대전화 케이스·텀블러까지 등장했다.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정품 대신 1만 원 이하의 라부부’가 실시간으로 쏟아진다.
문제는 이 귀여움이 ‘독’이라는 점이다. 5일 관세청은 올해 상반기 국내 반입된 지식재산권 침해 제품(짝퉁) 중 라부부 키링 250점을 무작위 검사한 결과, 절반 가까운 112점(44.8%)에서 납·카드뮴·가소제(DEHP) 등 유해물질이 기준치를 초과했다고 밝혔다. 특히 일부 제품에서는 국내 안전기준의 344배에 달하는 가소제가 검출됐다. DEHP는 인체 내 호르몬 균형을 교란해 정자 수 감소, 불임, 발암 가능성까지 유발할 수 있는 물질이다. 취재 중 만난 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납이나 프탈레이트, 카드뮴 같은 중금속은 인체에 들어가면 단기간에 배출되지 않고 장기적으로 축적돼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고 말했다.
잠실 지하상가의 한 액세서리 매장 앞, 대학생 김 모(23) 씨는 친구와 함께 새롭게 유행하고 있는 유사 라부부 모양의 키링을 고르고 있었다. 라부부가 유행하자 이의 모습을 딴 출처와 저작권 불명의 유사 아이템도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정품은 어디서 사는지도 모르겠고, 짝퉁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유행이라서 고르고 있었다”고 기자에게 밝혔다. 키링에는 포장지는 커녕 제조국 표기도 없었다. ‘Made in China’라는 글귀가 선명한 꼬리표만 붙어 있었다. 남대문 도매상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알리익스프레스 등을 통해 개당 2000원 안팎에 직구하는 것이 트렌드다. 원가 1000원대의 짝퉁 인형이 2000원에 도매가로 팔리고 다시 5000~1만 원의 소매가로 온·오프라인을 오가는 유통고리다.
실제 문제는 짝퉁 라부부만에만 국한되지 않고 있다. 실제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적발된 해외직구 짝퉁 제품은 34만 건으로 전년 대비 27% 증가했다. 이 중 절반 가까이가 액세서리류다. 공식 수입이 아니어도 세관 통과만 하면 ‘비공식 유통’으로 분류돼 단속망을 피하고 있다.
법무법인 온다의 이동호 변호사는 “짝퉁 ‘라부부’ 제품은 단순한 모조품이 아니라 명백한 저작권 침해 행위”라며 “원작자의 디자인과 형태를 무단 복제하거나 판매하는 것은 저작권법 제136조에 따라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식 라이선스를 보유한 팝마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불법 행위로 온라인몰과 거리 판매상 모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소비자 역시 가품을 구매하거나 유통하면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열광의 정점 지나 ‘소비의 거울’ 되다
짝퉁이 거리를 뒤덮었지만, 라부부 열풍의 본질은 여전히 ‘심리’에 있다. 한때 MZ세대의 ‘잇템’으로 불리던 라부부의 인기는 불과 넉 달 만에 96% 급감했다.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7월 최고점(100)을 찍었던 검색량은 11월4일 기준 4로 떨어졌다. 한때 100만 원을 웃돌던 리셀가도 10분의1 수준으로 추락했다. 2만1000원짜리 ‘라부부 자아 키링’은 6월 109만9000원까지 치솟았다가 11월엔 13만 원으로 급락했다.
유통업계는 “리셀 시장의 급락은 과열된 투기 수요의 정상화”라며 “브랜드가 ‘투기성 상품’에서 ‘취향 기반 소비재’로 전환되는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라부부는 홍콩 일러스트레이터 카싱 렁이 북유럽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요정 캐릭터다. 복슬복슬한 털과 뾰족한 이빨, 장난기 어린 표정이 특징으로, 중국 완구기업 팝마트가 2019년 독점 상품화하며 세계적 히트를 이끌었다.
월드스타 블랙핑크 리사·로제, 리한나, 두아 리파 등은 라부부 피규어를 가방 장식으로 활용하며 셀럽 굿즈 이미지를 확산시켰다. 팬들은 순식간에 구매 행렬을 이뤘다.
라부부의 매력은 ‘못생겼는데 귀엽다’는 역설이다. 진화심리학의 ‘아기 얼굴 효과(baby schema effect)’가 둥근 얼굴과 큰 눈의 귀여움을 설명한다면, 사회심리학의 ‘프랫폴 효과(Pratfall effect)’는 완벽하지 않은 결함이 오히려 호감도를 높인다고 말한다.
라부부는 그 경계에 선다. 삐죽한 이빨과 엉뚱한 표정은 낯설지만 볼수록 정든다. 최근 한 실험에서는 ‘어글리 큐트’ 이미지가 반복 노출될수록 호감도가 상승한다는 결과도 나왔다. 못생김이 귀여움으로 반전되는 순간, 뇌의 보상 회로가 활성화돼 도파민이 분비된다.
팝마트코리아 측은 걸그룹 아이브(IVE) 소속사 스타쉽엔터테인먼트와의 협업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올해 3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245% 급등했고, 시가총액은 55조 원에 달했다. 팝마트는 베이징에 테마파크 ‘팝랜드(Pop Land)’를 개장하고, 영화·애니메이션 제작에도 착수했다.
예측 불가능한 쾌감, ‘블라인드 박스’의 중독성
라부부의 폭발적 성공에는 ‘확률의 쾌감’이 있었다. 어떤 모델이 들어 있는지 모른 채 구매하는 ‘블라인드 박스’ 방식은 일본의 ‘가챠(gacha)’ 문화와 닮았다. 평균 7.2개를 구매해야 원하는 캐릭터를 얻을 수 있다. 희소성과 가챠 효과가 더해져 중독성과 재미가 결합했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충동구매 욕구가 커진다는 연구 결과처럼 “이번엔 시크릿이 나올지도 몰라”라는 기대감이 도박적 쾌감으로 변했다.
SNS의 언박싱 문화가 이를 증폭시켰다. 해시태그 #라부부언박싱 아래에는 “나도 갖고 싶다”는 글이 넘쳐났고, 알고리즘은 또 다른 색상·표정의 라부부를 추천했다. ‘다 모아야 완성된다’는 수집욕은 도파민을 폭발시켰지만 짧은 쾌감 뒤엔 허탈감이 남았다.
라부부 열풍은 단순한 캐릭터 유행이 아니라, 인간 욕망의 설계 방식을 드러낸다. 예쁨과 낯섦, 희소성과 소유, 소외와 과시가 교차하는 자리에서 ‘못생긴 귀여움’은 작동했다. ‘블라인드 박스’는 욕망을 반복 구매로 전환시켰고 결국 피로감으로 되돌아왔다. 현재도 유튜브·틱톡 등 숏폼 플랫폼에는 블라인드 박스 언박싱 영상이 수시로 올라오며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기자는 취재 중 등하교길 중·고등학생들이 라부부 키링을 가방에 달고 통학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셀럽 파워에 더해진 차세대 피규어 스타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이 ‘귀여운 라부부’가 아이들에게 독(毒)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기준치를 초과한 유해물질이 포함된 짝퉁 키링을 어린이가 사용하는 것은 성장기 발달에 치명적인 호르몬 교란, 회복 불가능한 뇌 손상, 그리고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독성 물질에 아이를 직접 노출시키는 매우 위험한 행위”라고 거듭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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