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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G8 주요 8개국가들이 아사상태에서 연명하고 있는 그리스의 유로존(17개국) 잔류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을 낳고 있다. 우선 유로존의 말썽국가이자 글로벌 경제의 시한폭탄인 그리스를 왜 과감하게 내치지 못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가장 크다.
그리스는 외부의 수혈이 없으면 즉각 디폴트 상태에 빠질 상황임에도 유로존 탈퇴움직임을 공공연하게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유로존과 국제 금융기관들은 그리스의 초긴축을 전제로 지원하는 ‘조건부 연명작전’에 나서고 있다.
긴축강요에 반발하고 있는 그리스는 마치 시한폭탄을 들고 조건부가 아닌 무조건 도움을 요청하는 ‘막가는 협박공세’에 나선 모양새다. 더 이상 재정을 아껴쓸 수 없으니 이리저리 찢기는 처참한 부채국이 아니라 체면을 살려주는 이른바 ‘웰빙 부채국’ 지위를 유지케 해달하고 떼를 쓰는 형국이다.
이는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당시 알짜 기업들을 모두 팔아치우고 집집마다 금모으기 운동에 나섰던 일을 생각하면 상상 자체가 안 되는 일이다. 고양이 앞의 쥐처럼 IMF와 선진국 입김에 벌벌 떨었던 우리와는 달리 그리스는 그 반대의 당당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주요 이권과 이슈를 정리할 G8이 이 같은 ‘악동 그리스’에 무력하게 대응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를 않는다. G8은 주지하다시피 과거 서방선진 7개국(G7)에 러시아가 추가로 참여한 주요 정상들의 모임이다. 미국·일본·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 등 이른바 최고 부자국이자 경제 우등생들이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러·중·프·영의 5개국이 핵패권을 전면에 내세워 전 세계 군사·정치적 이권에 대해 무력을 통한 정리작업을 하는 사령탑이라면 G8은 경제문제에 관한한 이와 비슷한 최종 합의 내지 묵인을 상호 승인하는 비공식 8인 원탁회의다. 국제기구도 아니고 공식 협의체도 아니지만 그 이상의 막강한 글로벌 합의권력이 사실상 만장일치로 이곳에서 이뤄진다.
이런 G8이 그리스를 용서한 것일까. 아니면 측은지심으로 품에 앉고 가려하는 것일까. 겉으로는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인다.
회의장소인 캠프데이비드는 역사적으로 글로벌 이슈를 재단하는 장소였다. 그곳에서 그리스를 유로존 내에 잔류시키기로 결정했다면 그리스 압박정책이 다소 유연해질 수 있다는 의미로 보여진다. 강력한 조건부(긴축) 수혈 정책이 일단 완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는 G8의 결정을 보면서 진짜 의도를 숨긴 채 자로 잰 듯한 강대국들의 합의내용에 소름이 돋는다. 겉으로는 그리스를 구제하기 위한 애정표현 같은 표현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 반대인 탓이다.
물론 지금은 그리스가 자폭을 하도록 놔둘 상황이 아니다. 스페인 은행들이 유럽은행에 갚아야 할 채무가 그리스보다 여섯배 가까이 많다. 이미 스페인 은행들이 뱅크런 사태를 맞으면서 디폴트에 근접해 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G8 회원국인 이탈리아는 그리스 자폭시 같이 망해야 할 다급한 처지다.
그리스발 뇌관이 폭발하면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연쇄 대폭발을 일으켜 이미 디폴트 수준인 포르투갈, 아일랜드를 순식간에 집어 삼키면서 최후 버팀목인 독일과 프랑스마저 벼랑 끝으로 내몰아 종국에는 유로존 전체가 망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비 유로존인 미국과 러시아도 그 불똥을 피하기 어렵다.
따라서 G8은 그리스를 달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고, 총선에서 제2당으로 급부상한 그리스 급진좌파연합도 이를 알고 악동을 자처하고 있는 형국이다. G8의 결정은 이처럼 자신들의 이권이 침해받지 않는 대전제 아래 은밀하게 행동을 통일했다.
씁쓸한 대목을 보자. G8은 그리스 산업을 일으킬 근본대책에는 관심이 없고 일시적인 땜질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식물경제가 된 그리스를 ‘죽’으로 연명하는 전략만 고심하고 있을 뿐 진정으로 그리스 산업을 회생시킬 방안에는 관심들이 없는 태도라는 것이다. 막가는 그리스에 철저히 감정이 상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G8은 적당히 그리스를 살려가면서 언젠가는 파멸의 결정을 내릴 장막을 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실제로 G8 정상들은 글로벌 경제기조를 자유무역주의에 둔다고 선언했다. 우리의 경우도 전 세계 국가 중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FTA 영토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 기조는 틀리지 않지만 그리스 같은 아사상태의 국가는 다르다. FTA가 곧 독약이라는 것이다.
그리스 경제는 지금 자유무역 보다는 경쟁력 있는 산업을 보호해 주면서 자생력을 기르도록 하는 것이 회생의 관건이다. 자유무역을 할 능력이 거의 없는 그리스에 기존의 무역환경을 강요한다면 이리저리 뜯겨 종국에는 남는 것이 없게 된다. 연명전략이 당장은 좋아 보이는 일종의 희생양 전략이다.
G8은 그리스 문제와 함께 북한 대응카드도 내놨다. 북한이 모든 핵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증명 가능하게 그리고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방법’으로 포기해야 한다는 공동성명이 그것이다. 핵과 관련된 모든 일에서 발가벗고 손들라는 의미다. 만약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유엔 안보리를 소집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군사행동도 할 수 있다는 최후통첩과 다르지 않다.
언제 어느 때든 가능해진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이 명분과 함께 합법적 지위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군사적 대북 압박 또는 군사행동은 북한을 없애는 것 보다는 그리스처럼 존립시키는 전제하에 이뤄지는 희생양 전술이다.
북한 경제는 그리스 이상으로 이미 아사상태를 넘었다. 왕조적 독재가 아니라면 이미 쓰러졌을 상황이다. 이런 북한의 식량인권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정치적 쇼에 충실한 G8의 결정은 강대국들의 이권교류라는 또 하나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그리스와는 대처방식이 정 반대인 협박성 밀어붙이기 전략을 취해 차별적 대우 같지만 진정성 있는 북한 구제프로그램에 관심이 없는 강대국들의 오만함이 묻어난다는 부분에서 같다.
G8은 지금 자신들의 독점적 경제지위와 군사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구태의연한 희생양 전술을 여전히 동원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제1의 기축통화인 달러화와 제2의 기축통화인 유로화가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그것을 위한 희생양 전술은 단견이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유로존의 붕괴는 곧 서방경제권의 몰락임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지키는 방법이 마치 망해가는 부자가 억지로 움켜잡는 식이다. 나아가 글로벌 경제축의 이동을 보지 않는 듯해 안타깝다. 미국을 포함한 ‘범 서방경제권’ G8은 지금 한국과 중국 및 동남아시아 등으로 옮겨오고 있는 글로벌 경제의 축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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