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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리학자 김태규 칼럼니스트
이른바 ‘우루과이 라운드’를 통해 등장한 세계무역기구(WTO)는 그 이후 2001 년 카타르의 도하에서 개최한 추가무역협상이 회원국 간의 이해관계 불일치로 인해 사실상 실패했다.
이후 세계 경제와 무역은 이해가 일치하거나 절충이 가능한 나라들 간에 이루어지는 자유무역협정(FTA)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국가 간의 자유무역협정은 그로서 그 국가들 간의 경제통합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타 국가에 대해서는 일종의 배타적인 지역경제 블록이 형성된다.
무역으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는 이에 全方位(전방위)적으로 FTA를 추진하거나 체결해가고 있다.
물론 가장 찬반논란이 많았던 것은 한미 FTA 였다는 것은 더 이상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체결된 한미 FTA 의 내용 그 자체는 사실 큰 문제가 없다. 상당히 공평한 내용이라 하겠으며 쌍방 모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체결 대상국이 ‘미국’이라는 점에서 국내정치적으로는 엄청나게 소란스러웠다. 우리 내부의 반미 좌파와 그에 편승한 야당의 반대 때문이었다. 유럽연합과 체결한 FTA 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는 것을 봐도 그렇다.
한미 FTA 는 그러나 국내의 정치싸움보다는 목하 펼쳐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의 아시아/태평양 패권 경쟁에 있어 훨씬 큰 비중을 갖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앞선 글에서 미중간의 패권 경쟁은 和戰(화전) 양면을 보인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너무나도 깊숙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중국이 이처럼 번영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대중국 투자와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중국은 무려 3조 3천억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외화를 보유하게 되었고 최근 비중을 줄이고는 있지만 절반 이상은 미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로 운용 중이다.
그 결과 만일 중국이 미국 국채를 시장에서 매도해버리면 미국 금리가 급상승해서 미국 경제는 커다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말도 무성하고, 또 달리 미국을 떠나 지금 한창 비틀거리는 유로화에 투자할 수도 없으니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반론도 무성하다.
언제든지 휴지가 될 수도 있는 달러나 유로화 비중을 줄이고 대신에 그 돈으로 석유를 비롯한 자원이나 하이테크를 보유한 외국 업체들을 인수하는 것 역시 좋은 방안일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역시 미국의 경우 국익에 중요한 기업을 중국에 넘길 순 없다는 반발도 엄청나게 거센 바람에 쉽지가 않다.
사실 중국이 엄청난 외화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국도 골치 아프고 미국도 골치가 아픈 것이다.
미국의 국채를 비롯한 유가증권에 대한 외국인 보유규모는 무려 13 조 달러에 육박한다.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는 사실 고스란히 국채 발행으로 이어졌는데 이를 사 준 것이 다른 나라들인 셈이다.
미국의 한해 GDP 가 15 조 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외국인 보유 13 조 달러는 상당히 큰 액수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적자 재정의 미국 정부를 지탱해주고 있는 원천은 중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인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약점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 강점일 수도 있다. 한마디로 기축 통화 달러의 미국이기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은 이처럼 거래를 통해 상호 이익을 보았으며 그간 중국의 발전을 감안하면 중국의 이익이 더 컸다고 하겠다.
그러니 미국이나 중국 모두 상대를 섣불리 위협하거나 제압하기가 어려운 입장에 처해있음도 사실인 것이다. 또 그렇기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경쟁은 과거 냉전 시절의 소련에 대한 관계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앞서 얘기했던 FTA를 통한 배타적 경제블록 형성에 대한 얘기로 이제 돌아가자.
중국은 이미 동남아시아 각국의 공동체인 아세안과는 2010 년 초에 이미 FTA를 발효한 바 있다. 이어 이 지역으로의 철도와 도로도 건설해주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를 포함해서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키르키스탄, 타지키스찬, 우즈베키스탄과 상하이 경제협력기구(SCO)를 결성하고 주도적 역할을 맡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경제협력기구가 아니라 중국의 서부 배후 지역에 대한 안전을 도모하고 자원을 채취할 수 있는 전략적 도구의 의미를 지닌다.
(며칠 전 상하이에서 개최된 회의에서 중국의 호금도는 ‘100 억 달러를 회원국들에게 쏜다’는 발표도 했다.)
중국은 이처럼 상하이 협력기구를 통해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나름의 군사 강국인 러시아와도 서서히 동맹 관계로 들어서고 있다. 나아가서 ‘아세안 플러스 쓰리’를 통해 주요 회원국의 자리를 확보했다.
중국은 장기적으로 대한민국은 물론 일본까지도 경제 블록 등의 방법으로 연결함으로써 아시아 내에서 미국을 서서히 몰아내고자 한다.
다시 말해 아시아인들끼리의 일이니 바다 건너 미국은 이제 좀 빠져주시지 하는 것이 중국의 장기적인 전략인 것이다.
이런 중국의 구상이 현실화된다는 것은 미국으로선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 지역에서 미국이 물러난다면 그것은 미국의 쇠락을 노골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일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에 아시아/태평양, 즉 태평양을 둘러싼 환태평양 경제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아세안 회원국이 아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 TPP)이다.
2010년부터 미국은 오스트레일리아, 페루, 베트남, 말레이시아를 참여시켰고 다시 캐나다와 일본, 필리핀, 대한민국, 타이완 등에 대해 참가하라는 나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미국은 베트남과 급속히 관계를 개선하고 있고, 미얀마와도 관계를 텄다. 이 바람에 아웅산 수치 여사는 과거에 받은 노벨 평화상을 직접 수상하게 되었다. 이 모두 아세안 일대에서 중국이 함부로 맹주 역할을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일련의 견제전략이라 하겠다.
또 현 오바마 정부 들어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뻔질나게 인도를 드나들었는데 이 또한 중국을 배후에서 견제하기 위함이다.
이 모두 미중 간에 벌어지고 있는 패권 경쟁의 일부 모습들이다.
중국은 아시아 국가 간에 경제 블록을 만들어서 그 맹주 노릇을 하겠다는 것이고, 미국은 환태평양 국가 간에 경제 블록을 만들어서 중국을 견제함과 동시에 여전히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행세하겠다는 의도이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패권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경제 강국으로 자리를 잡은 대한민국의 선택 또는 동향은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있어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겠다.
이런 상황에서 체결된 한미 FTA 는 그것이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중국의 전략적 실패이자 미국의 전략적 성공을 알리는 일대 凱歌(개가)였던 것임을 말해준다.
대한민국이 양자택일의 입장에서 결국 중국이 아니라 미국을 택한 것이 바로 한미 FTA 였다.
한미 FTA를 시작한 것은 당초 反美(반미) 성향에서 국익을 위해 돌아섰던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천안함 사건에서 중국이 북한에 대해 공식적인 비판을 포기하자 이명박 정부는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미국과의 FTA를 체결시켰던 것이다.
중국은 우리 정부를 달래기 위해 이면에서 많은 노력을 했지만 현 시점에서 그렇다고 북한을 공식 비난할 순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 역시 이런 중요한 사안에서 미국을 택함으로써 미국의 현 오마바 정부로부터 적지 않은 것들을 얻어낼 수 있었다. 도요타 자동차 사건으로 일본을 마구 패대기친 미국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그 어떤 문제도 쉽게 타결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FTA 가 결정적인 변수였던 것이다.
물론 정부는 중국은 물론 일본과도 FTA를 추진 중에 있지만, 미국과 FTA를 앞서서 선도적으로 체결한 것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놓고 펼쳐지는 미중 간의 패권 경쟁에 있어 대단히 큰 영향을 주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의 위상은 결코 쉽지가 않다. 두 강대국 간에 벌어지고 있는 패권 경쟁에서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지 하는 문제 말이다.
이렇게 미중 간의 패권 경쟁에 대해 여러 차례에 걸쳐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그런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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