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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와 공감’은 지난 2003년 시에 대한 열정을 지닌 12명의 멤버들로 시작됐다. 현재는 조수옥 시인(63)을 필두로 초창기 멤버 8명이 남아 활동 중이다. 그들은 10년 넘게 함께 하면서 ‘詩와 공감’ 결성 이후로 5명이 등단에 성공했다. ⓒ스카이데일리
“시인은 세상의 그늘진 것들을 모두 들여다 볼 수 있어야죠. 그래야 시를 통해 그 아픔을 표현하고 공감하는 것 아니겠어요”
하상수 시인은 시인의 소명을 이렇게 표현했다.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 시인을 비롯해 소수 인원으로 10년 이상 함께 시를 쓰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詩(시)와 공감’ 동인들이다.
시와 공감은 지난 2003년 기성 작가와 시인 지망생 12명이 모여 결성됐다. 중간에 스쳐지나간 인연들도 제법 있었다. 대개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섰지만 오래 견디지 못한 채 시와 공감과 멀어졌다.
현재 시와 공감은 조수옥 시인(63·남)을 필두로 박순희(48·여), 박정주(54·남), 박종석(49·남), 오한나(47·여), 조삼현(59·남), 정형일(51·남), 하상수(52·여) 등 8명의 회원이 남아있는 상태다. 모두 시작 때부터 함께해 온 멤버들이다.
8명의 회원 중 창단 전에 등단한 조수옥 시인을 제외하면 나머지 7명 중 5명이 시와 공감 활동 이후로 등단하게 됐다.
동인 하상수 시인은 “멀리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동인들과 함께였기에 큰 힘이 됐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긍정적인 영향들을 주고받았던 겁니다. 멀고 힘든 길을 손잡고 함께 갈 수 있는 도반(道伴)이 있어 큰 힘이 됩니다”
밤잠 줄이고 본업과 병행, 시 위한 고독의 길…“육체 고되나 정신은 충족”
이곳 멤버들 모두 본업이 따로 있다. 고료만으로 생업을 이어가는 시인은 극소수인 만큼 이들도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며 나름의 방법으로 시를 쓰고 사랑하는 법을 익혀가는 것이다. 박순희 시인은 시를 쓰는 것이 바쁜 현실 속에서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치유의 시간이라 소개하기도 했다.
“직업을 갖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남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 왔어요. 하지만 존재 자체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됐죠. 허무하더군요. 가정과 사회에서의 역할에 충실할수록 나라는 존재감이 미약해지는 것 같았어요. 제 자신을 찾을 수 있게 해 준 것이 바로 시입니다”
▲ 통상적으로 고료를 받아 생활할 수 있는 시인은 매우 한정적이다. 그런 만큼 ‘시와 공감’ 멤버들은 모두 각자의 본업이 따로 존재한다. 대부분 교사, 공무원, 강사 등의 직업군에 종사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시보다 소설을 먼저 쓰기 시작했다는 조삼현 시인은 산문과 달리 짧고 간결하게 응축해 느낌이나 생각을 표현한다는 시의 매력에 빠져 시인이 된 케이스다. 그는 지난 2008년 ‘월간 우리 시’ 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뒤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서울남부구치소에서 재직 중인 그는 지난해 ‘어느 수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첫 시집으로 냈다. 조 시인은 본업과 시 쓰기를 병행하는 것이 육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정신에게는 달콤한 휴식과도 같은 시간이라 강조했다.
“본업과 시를 병행하기 위해서는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죠. 잠자리에 들기 전 썼던 문장을 고치고 또 쓰는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어느 새 날이 밝아요. 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한 행을 보고 있으면 비록 육체는 고되지만 정신적 충족감은 말 할 것이 없죠”
시와 공감 멤버들의 평균연령은 52.8세다. 최고 연장자인 조수옥 시인은 지난 1997년 충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 ‘어둠 속에서 별처럼 싹이 트다’, ‘거꾸로 서서 굴리다’, ‘오지’ 등을 발표했다.
창립 당시 유일한 기성시인으로서 동료 시인들을 이끌었던 그는 여전히 시와 공감에서 정신적인 지주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동아일보 ‘황인숙 시인의 행복한 시읽기’ 코너에 조 시인의 ‘우체통에게’가 소개된 바 있다.
언제 올지 모르는 편지를 묵묵히 기다리는 우체통처럼 시를 향한 시인의 마음이 그대로 표현됐다는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다음은 ‘우체통에게’ 전문이다.
기다림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 그대 몸속에 아직 차오르지 않는 / 꽃대의 빈 속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바람의 쓸쓸한 / 안부를 빈 가슴으로 적셔보는 일입니다 /
무수한 날이 별똥별처럼 떨어질 때 / 아직 봉인되지 않는 입술은 부르터 / 바람인 듯 쉬 닫히지 않습니다 /
직립의 사무침이 한 곳에서 / 기다림으로 붉게 꽃피울 수 있는 것은 / 깜깜함이 온통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그대를 들여보고 있나요 / 마음의 모퉁이를 서성이던 날들이 / 발신음으로 떨고 있지는 않나요
기다림은 비어있는 자리가 아닌 / 누군가를 위해 비워놓은 그대 손길입니다
▲ ‘詩와 공감’에서는 매주 회원들이 써온 시를 합평하고 낭송하는 시간을 갖는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모임 공간이 없어 카페, 체육관 등을 돌며 한 곳에 정착하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2013 년 군포시 산본시립도서관에서 문화강좌실을 스터디 공간으로 내주어 안정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은 왼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순희 시인, 조삼현 시인, 조수옥 시인, 하상수 시인 ⓒ스카이데일리
암흑과 같았던 등단을 위한 10년의 시간…“시인은 글로 표출치 않으면 병이 난다”
박순희 시인은 10여년 간 공부하고 도전한 끝에 지난 9월 오장환문학제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마침내 등단한 새내기 시인이다. 해당 문학제는 지난 2008년 실천문학사 주최로 시작돼 올해로 8회째를 맞았으며 신인상 수상자에게 500만원의 상금이 돌아가는 제법 규모가 큰 문학제다.
박 시인은 시로서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을 언급하며 쉽게 이룰 수 없었기에 끊임없는 도전의식이 생겼고 또 달성한 후 그 쾌감이 매우 컸다고 고백했다.
“등단하기 전까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어렵기 때문에 도전정신이 생기더군요. 하지만 무엇보다 사물과 생명에 대해 생각하고 명명하는 과정이 상당히 매혹적으로 다가왔어요.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면 시와 공감은 시인으로서 저를 꽃피울 수 있었던 공간입니다”
역시 도전정신이 불타오른다는 하상수 시인은 지난해 계간지 ‘시와 문화’를 통해 등단했다. 꾸준히 작품 발표를 이어오고 있지만 신춘문예에 대한 갈증은 아직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지난해 무등일보 최종심과 올해 심훈문학상 최종심까지 올랐으나 아쉽게 고배를 마셔야 했다.
“사람들 모두는 인간 내면의 고독과 외로움이 있습니다. 모든 예술은 결핍을 표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죠. 시인들은 결국 그 결핍을 글로 옮기는 이에요. 하지만 글로 표출하지 못할 땐 마치 신열에 들뜬 사람처럼 병이 나기 마련입니다”
시와 공감 회원들은 매주 각자가 써 온 시를 낭송한다. 낭송이 끝나면 회원들끼리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비평하는 합평(合評)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땅한 모임 공간이 없어 이곳 저곳을 전전해야 했다. 그러다 군포시가 지난 2013년 이들에게 산본시립도서관 문화강좌실을 스터디 공간으로 내주게 됐다.
또한 시 창작에 필요한 도서지원은 물론 1년 3회 강사를 초빙할 수 있도록 지원받게 되면서 시와 공감 회원들은 안정적인 토론과 학습 및 창작활동을 이어 올 수 있었다. 조수옥 시인은 향후 시와 공감이 지역사회의 문화육성에도 도움이 되고싶다는 포부를 전하기도 했다.
“소수 동인 모임에서 점차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모임으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서로의 생각과 표현을 공유하며 인문학 발전을 위해 미약하지만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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