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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 같은 황경선 선수 딸딸이 아빠입니다”

[인터뷰]황도구씨(아버지)…인대 끊겨도 싸우는 태극낭자 키운 父情

김진수기자(jinsuac@skyedaily.com)

기사입력 2012-08-11 06: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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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주국의 자존심을 걸고 나선 태권도 선수들의 태극 발차기가 결국 그 이름 값을 했다. 첫 출전한 이대훈 선수가 아쉽게도 은메달을 획득했지만 아직은 앳된 스무살이기에 앞으로 금메달 가능성이 충분한 값진 메달이었다. 이번에는 태극낭자 황경선이 나섰다. 그녀는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여자 67Kg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에도 황 선수는 특유의 강인한 투혼을 발휘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런던 하늘에 애국가를 울렸다. 황 선수는 베이징 올림픽 당시 무릎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인 상황에서 준결승과 결승을 치르면서 금메달을 따 ‘맹수 같은’ 태극낭자의 기량을 한껏 분출했었다. 태권도가 지난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당시 그녀는 14살에 불과했다. 그러나 4년 후 황경선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첫 출전해 동메달을 땄고 이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에는 이처럼 부상투혼으로 금빛 발차기를 뽐냈다. 황경선은 이번 런던올림픽에 출전에서도 금메달을 따냄으로써 3회 연속 금메달리스트라는 영예를 안았다. 태권도 종목에서 3회 연속 올림픽 출전과 메달리스트는 황경선이 유일하다. 이 같은 그녀의 투혼에는 어려서부터 강인하게 키운 ‘아버지의 정’(父情)이 있었다. 두 딸을 모두 운동을 시킨 배경에는 위험하고 아슬아슬했지만 강인하게 키우고 싶었던 아버지의 속 깊은 사랑이 자리했다. 그녀는 이런 부정의 뜻을 저버리지 않고 이미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 올림픽대회 등의 금메달을 휩쓸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해 놓았다. 태권도에서 그랜드슬램에 이어 최초로 3회 연속 출전 및 메달리스트 영예를 거머쥐기까지 땀과 눈물의 과정을 그녀의 아버지 황도구씨를 통해 들어봤다.

 ▲ 황경선 선수 아버지인 황도구 씨
태권도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국가대표 선발전이 세계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세계 선수들의 기량이 많이 올랐지만 아직은 국내 선수들이 세계수준 이상이기 때문이다.
 
황경선은 국내의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올림픽 3회 연속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세운다. 이는 태권도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그만큼 태권도 국가대표 선발전은 치열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버지인 황도구 씨는 “제가 딸이 두 명 있는데 경애(언니)와 경선이가 태어난 시절에는 각종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사회가 떠들썩했습니다. 그래서 만일 딸이 태어난다면 누구보다 강인하게 키우기 위해 꼭 태권도를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즈음에 경애와 경선이가 태어났네요(웃음)”
 
 ▲ 황경선 선수

황경선은 1986년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서 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그의 언니와는 세살 터울이다. 자매는 어릴 때부터 황씨의 생각대로 본의 아니게 태권도를 시작하게 된다. 
 
그녀의 유년시절때 집은 안동에서 경기도 남양주시로 이사를 하게 됐고 이곳에서 황경선은 본격적인 태권도를 배웠다.
 
“경선이가 여섯 살부터 태권도를 시작했습니다.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어릴 때는 남자처럼 바가지 머리모양을 하고 다녀 얼핏 보면 남자아이처럼 생기기도 했었죠(웃음)”
 
똑같이 어렸을 때 태권도를 배웠지만 두 자매는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양정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부터 관심분야가 달라지게 된다. 언니는 태권도보다 육상에 관심이 많았고 황경선은 태권도의 매력에 푹 빠져 버린 것이다.
 
“경애(언니)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높이뛰기와 100m 달리기 종목에 두각을 보였습니다. 경선이도 육상대회에 나가 우수한 성적을 거뒀지만 태권도를 더 좋아했고 각종 대회마다 상위권의 성적을 거뒀어요”
 
황경선의 첫 공식 데뷔전은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전국 어린이 태권왕’ 선발전 이었다.
 
6학년 까지 참석이 가능한 대회에 200여명이 넘게 참석했고 이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 초등학교 시절 황경선 선수와 어머니

“교내 및 지방대회에서도 참석을 했지만 전국대회는 첫 경기였습니다. 이곳에서 당당히 3위를 기록했었죠. 이어 5, 6학년 때도 같은 대회에 연속으로 참여해 각각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녀는 10살 때 1품, 19살 때 2단, 22살에 공인 3단을 획득했다. 
 
학창시절 ‘태권도, 공부’ 모두 1등
 
황경선은 초등학교를 비롯해 동아중학교 시절에도 꾸준히 태권도를 했고 동시에 공부도 열심히 했다고 한다. 반장 및 부반장도 맡으며 학급을 이끌었고 타의 모범이 되기도 했다.
 
“경선이가 여자이지만 남자 못지않은 성향이 있었어요. 비록 마음은 여리지만 악착같은 지구력과 끈기도 있었고, 또 본인이 하고자 하면 꼭 해야만 하는 성격이었죠. 공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규수업 만큼은 열심히 들었어요. 그래서 공부도 잘했고 항상 반장, 부반장을 도맡아가며 학급을 이끌었습니다”
 
 ▲ 학창시절 황 선수가 받은 상장들.

황경선은 태권도 못지않게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정규 수업만 마치고 나머지는 태권도를 했지만, 집에서는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했고 성적 또한 우수해 우등상과 모범상을 받기도  했다.
 
물론 태권도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중학교 시절 출전한 대회에서 대부분 1위의 성적으로 입상했고 최소 3위 이상 성적을 거뒀다는 게 황씨의 설명이다.
 
“그때 경선이가 태권도에 남다른 특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마침 태권도가 시드니 올림픽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저는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했죠”
 
 ▲ 중학교 시절 참석한 태권도 대회에서 1등을 하고난 뒤 학교에서 마련한 카퍼레이드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제 주위에서 딸들을 운동시킨다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더군다나 남자들 종목 같은 태권도라 부상 위험이 많이 따르기 때문에 주위에서 더욱 말렸죠”
 
황씨의 결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남자라면 상관없을 수도 있지만, 사춘기 시절에 여자아이에게 행여나 얼굴 및 신체 부상으로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저 역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경선이가 태권도를 좋아했습니다. 실력도 동급 기준에서 전국 1등을 도맡아 했고 본인 스스로도 만족을 했었던 상황이구요. 그래서 말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 황경선 선수의 방
 ▲ 그녀는 어릴때 부터 각종 대회 및 합숙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녀는 소년체전을 비롯해 태권도협회장기, 태권도연맹회장기, 문화관광부장관기 등 출전한 경기에서 은메달 2번을 빼고 전부 금메달을 딸 만큼 태권도 협회로부터 관심을 받기도 했다.
 
“중학교에 다닐 때 이상호 코치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이 경선이 태권도 실력을 향상시켰고 스승이었죠.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초등학교부터 시작된 태권도로 인해 소풍, 수학여행 한번 간적이 없었고 방학 때도 신나게 뛰어 보지 못한 것이 부모로서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아테네 올림픽 처녀 출전해 동메달 획득
 
서울체고 1학년 시절에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발군의 기량을 떨쳤다. 황경선은 3진으로 첫 시니어 국가대표로 국제대회에 출전을 하게 된 것이다.
 
“주니어와 시니어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고1은 주니어 국가대표로 출전할 수 있었지만 경선이는 한 단계 위인 시니어 선발전에 출전해 17세의 나이에 3진으로 국가대표에 당당히 선발됐습니다”
 
하지만 성적은 기대만큼 좋지 않았고 그녀에게도 슬럼프가 찾아 왔다.
 
이 시절 전 현직 국가대표인 차동민, 임수정 선수 등이 그녀의 서울체고 동기였다. 이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가면서 훈련했고 그렇게 슬럼프를 극복해 갔다.
 
고2 때에는 기량이 한층 향상돼 2진으로 선발되기도 했다. 태권도 1진은 세계 메이저급 대회에 나갈 수 있고 2진~4진은 하위급의 국제대회에 각각 참석이 가능하다.
 
 ▲ 황 선수의 부모가 런던 올림픽 경기를 시청하고 있다.

“경선이가 고1 시절과는 달리 고2 시절에는 국제대회에서 입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질 않았죠. 본인 스스로가 가장 힘이 들었을 텐데 그 와중에도 부모를 위해 생일선물도 챙겨주고 정말 든든한 딸이었습니다”  
 
하지만 고3 시절이후 부터 황경선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당당히 1진으로 선발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처녀 출전해 당당히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어 2005년 한국체대 1학년 때에는 스페인 마드리드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 스페인 마드리드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황 선수가 경기를 하고 있다(좌 파란색)

또 2006년 도하(카타르) 아시안 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따는 등 출전하는 대회마다 1위의 성적을 거뒀다.
 
이어 다음해 열린 2007년 베이징 세계선수권,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각각 금메달을 휩쓸어 황경선은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특히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획득한 금메달은 그녀가 부상투혼을 발휘해 얻은 것이어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 황도구씨가 부상투혼을 발휘해 금메달을 목에 건 신문기사 내용을 가리키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 8강에서 크로아티아의 산드라샤리치 선수와의 경기였습니다. 경기도중 무릎인대가 끊어져 심한 고통을 참아내며 경기에 임했었죠. 결과는 4:1로 승리를 했지만 진통제를 맞고 4강전에 출전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현지에서 지켜본 그의 부모는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황씨는 "그녀가 4강에 이어 결승전에서 승리를 하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들도 아닌 딸이 태권도를 통해 성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큰 부상이 없었다는 게 다행입니다. 부상까지 참아가며 우승을 거머 쥔 그 집념이 제 딸이지만 정말 대견스럽네요”
 
 ▲ 황경선 선수와(원) 태권도 협회 관계자들
 
대학을 졸업한 황경선은 고양시청 소속으로 런던에 입성했다.
 
그녀는 아테네 올림픽,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세번째 올림픽이다.
 
올림픽 3회 연속 출전기록은 우리나라 태권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며 동시에 금메달 2연패와 함께 세번 연속 메달을 획득한 선수 역시 처음이다.
 
“고향시청 계약이 2014년 12월31일까지입니다. 황 선수가 선수생활을 이어가겠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부모 입장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해 학업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를 계기로 집에도 자주 들려 얼굴도 보며 같이 지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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